법원, 1심서 한진 계열사 대표와 약사에 유죄판결···형사재판과 별도 행정소송도 진행
공단 4명에 고지 등 진행, 환수 의지 강해···제약·도매·개국가도 관심
[시사저널e=이상구 의약전문기자] 면대약국 운영과 관련, 본인 약사 면허를 빌려준 약사와 한진그룹 계열사 대표 등이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아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요양급여비 1052억여원 환수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분석된다. 공단은 이번 형사재판과 별도로 행정소송도 진행 중이어서 고(故) 조양호 전 한진그룹 회장을 포함한 4명에 대한 부당이득금 환수 의지가 강한 것으로 풀이된다.
25일 법조계와 관련업계에 따르면 서울 남부지방법원 형사합의12부는 지난 20일 약사법 위반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를 받았던 정석기업 대표 원모씨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또 약사 이모씨와 남편 류모씨에겐 각각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 징역 3년을 선고했다. 단, 재판부는 법정구속을 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이번 형사재판은 지난 2018년 10월 기소된 사건이다. 이번 재판 피고였던 조양호 전 회장의 경우 지난 2019년 4월 사망으로 인한 공소건 없음으로 종결됐다.
정석기업은 한진그룹 부동산 등을 관리하는 계열사로 알려졌다. 업체 대표인 원모씨는 조 회장과 공모, 인천 인하대병원 인근에 면대약국을 개설한 후 건보공단에 청구한 요양급여비 등 1052억7849만6230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를 받아 기소된 후 재판을 받아왔다. 1052억여원은 해당 약국이 공단에 청구해 발생한 급여비용(공단부담금) 뿐 아니라, 본인부담금도 포함돼 있다.
참고로 면대약국은 약사가 이른바 ‘전주’에게 본인의 약사 면허를 빌려준 후 그 댓가로 금품을 받는 경우를 지칭한다. 약사가 아닌 전주는 해당 약국을 실질적으로 운영한다. 통상 면허를 빌려준 약사는 매달 500만원에서 1000만원가량 댓가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사례별로 다르지만 약사면허 대여의 댓가는 500만원이라는 이른바 정가가 있었다”라며 “물가가 오르고 여러 위험성 등으로 인해 500만원을 기본으로 약사 면허 대여료가 일부 오른 것으로 파악된다”고 전했다.
남부지법의 1심 판결선고가 지난 20일 진행됐고 판결문 송달 등 절차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피고인이나 검찰의 항소장이 접수되지 않은 상태로 파악된다. 업계는 항소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한다.
이번 사건의 핵심은 건보공단이 조 전 회장과 원모씨, 이모씨, 류모씨 등 4명을 상대로 요양급여비용 환수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는 점이다. 해당 약국이 급여비용 청구 자격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공단에 급여비를 청구해 수령했기 때문에 이 금액을 환수하겠다는 공단 의지로 풀이된다. 약사에게 면허를 빌려 개설한 약국은 불법이다.
실제 공단은 조 회장을 포함한 4명에게 이미 1052억여원 환수 예정을 통보한 후 결정도 고지했다고 밝혔다. 이번 면대약국 사례는 연대납부 공동불법행위에 해당하므로 4명에게 각각 1052억여원 납부를 고지한 것이다. 단, 고인이 된 조 전 회장의 경우 상속비율에 따라 고지금액이 변경될 수 있다고 공단은 설명했다. 하지만 4명은 고지금액 납부를 거부했다.
여기에 더해 조 전 회장과 원모씨는 지난 2018년 11월 공단을 상대로 춘천지방법원에 요양급여 환수처분 집행정지와 취소소송을 제기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공단은 형사재판과 행정소송에서 모두 승소하면 1052억여원을 환수받게 된다. 공단 관계자는 “법률적으로 공단이 강제적으로 부당이득금에 대한 징수를 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반드시 소송에서 이겨 공정과 정의를 실현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재판에 관심을 갖고 있는 제약업계나 도매업계 관계자들도 적지 않다. 모 제약사 관계자는 “공교롭게 이번 사건에 연루된 분이 제약사 대표의 친동생이기 때문에 해당 제약사에도 여파가 미칠 가능성이 있다”며 “공단이 고지한 환수금액이 너무 커 우려는 있다”고 전했다.
도매업계도 마찬가지다. 약국이나 병의원에 의약품을 납품하는 도매업체 특성상 그동안 몇몇 업체 대표가 면대약국을 운영한다는 소문이나 의혹은 적지 않았지만, 사안이 민감한 내용이어서 확인된 사례는 거의 없다. 한 도매업계 관계자는 “현직 도매업체 대표가 관련된 재판이어서 그동안 진행상황을 체크해 왔다”면서 “천문학적 규모의 환수금액 처리 향배에 관심이 쏠린다”고 토로했다.
개국가는 신중하면서도 면대약국 처벌에는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개국 경력 20년의 한 약사는 “특정 약국 사례에는 할 말이 없다”면서도 “면대약국은 관련 계좌를 추적해야 하는 등 확인이 힘들지만, 약업계에서 영원히 추방해야 할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복수의 제약업계와 도매업계 관계자는 “1심에서 유죄 판결이 나왔는데 2심에서 뒤집기는 쉽지 않다”면서 “결국 형사재판과 행정소송 모두 대법원까지 가지 않겠느냐”고 전망했다.
한편 건보공단은 이같은 불법 면대약국을 근절하기 위해 국회에서 특별사법경찰단 도입을 골자로 한 법안을 추진하고 있지만, 야당 반대 등으로 쉽지 않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