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에만 치우친 주무부처···기간산업 항공빅딜 전면에는 국토부 아닌 산업은행
의도와 관계없이 오너家 경영권분쟁 개입···이유는 충분했지만 방법만큼은 아쉬워
[시사저널e=김도현 기자] 전대미문의 바이러스가 지구를 휩쓸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다.
인류의 이동범위는 태초부터 현재까지 줄곧 확장성을 이뤘다. 걷기 시작하면서, 말을 타면서, 자동차가 개발되면서 점차 늘어났다. 항공기가 보급되면서부터는 비약적으로 늘게 됐고, 현재는 대기권을 오갈 수 있는 우주여행 시대를 준비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훗날의 혹자는 올 한 해를 확장하기만 해 오던 인류의 가동범위가 급격히 제약된 한 해로 기록할지 모른다. 멈추지 않고 넓어지기만 했던 인류가 바이러스 유행으로 이동에 제약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지역별로 국가별로 이동이 제한됨에 따라 사람들이 들끓고 여행의 설렘과 재회의 기대가 가득했던 공항은 국가방역의 최전선이 된 지 오래다.
소비와 교류가 줄어듦에 따라 갖은 분야에서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됐지만, 주요 산업군중에는 여행·항공 분야의 위축이 불가피했다. 자연히 항공사들의 피해가 극심했다. 미국의 아메리칸항공·유나이티드 항공을 비롯해 영국의 브리티시항공, 독일의 루프트한자, UAE의 에미레이트항공 등 글로벌 상위권 항공사들도 최대 수만명 규모의 감원을 단행했다.
일본도 예외는 없었다. 양대 국적기 전일본공수(ANA)와 일본항공(JAL)을 합병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단일 국적기로의 빅딜을 추진해 항공경쟁력을 끌어올리자는 취지였다. 사실 복수의 민항국적기를 운용중인 국가가 일본을 비롯해 한국·대만 등 일부 동아시아 국가들에 국한됐던 탓에 해외의 사례를 참고해 통합해야 한다는 의견에 힘이 실리는 모습이었다.
논의는 일본에서 나왔지만, 현실화는 한국에서 속도를 내는 양상이다. 코로나19 발발 전부터 자금난에 봉착한 아시아나항공의 매각이 난항을 빚자, 채권단을 대표하는 산업은행은 대한항공을 운영 중인 한진그룹에 인수를 제안했다. 한진도 자금난에 내몰리긴 마찬가지였으나, 인수자금을 지원하고 조원태 회장 든든한 우호군이 될 수 있는 산업은행의 제안을 뿌리칠 이유가 없었다.
지난 20일 제22차 대한상의 관광산업위원회 참석 후 기자들과 만난 우기홍 대한항공 사장은 한진그룹이 인수하게 될 경우 상당한 긍정적 효과가 크다고 강조했다. 이해도가 높은 경쟁항공사가 인수하게 됨으로서 인수비용을 대폭 절감 가능 하는 등 전혀 다른 업종을 영위하던 기업이 인수하는 경우보다 시너지 효과가 크다는 게 골자였다.
일본에서 시작된 국적기 통합 주장과 경쟁사의 인수가 타사보다 높은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다는 해석들에 딴지 걸 생각은 없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한 지붕 아래 놓이게 되면서 빚어질 수 있는 다양한 지적에도 공감한다. 다만, 적어도 이 같은 의사결정 과정에서 정부가 중재자 정도의 역할만 수행했다면 어땠을까.
현재 우리 기업들의 주주구성을 보면 국민연금공단이 대주주로 이름을 올린 곳이 많고, 한 차례 위기를 맞은 기업이라면 산업은행의 입김이 크게 작용하는 업체들 역시 상당하다. 특정 권력자의 의중에 움직일 기관은 아니지만, 거시적으로 행정부 소속인 이들이 민간의 사업 권력을 재편하려 하는 움직임은 결국 ‘정부의 입김’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다.
산업은행은 보도자료를 통해 코로나19로 어려움에 빠진 항공산업을 살리기 위해 자금이 투입돼야하며, 아시아나항공 인수주체가 될 한진칼을 상대로 한 유상증자 역시 재편을 통해 생존할 항공산업에 투자하는 것이라 의의를 밝힌 바 있다. 항공산업은 국가 기간산업이다. 회생이 어려운 아시아나항공이 코로나19 상태서 파산하게 될 최악에 대비하고자 함도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뒷맛이 개운하지 않은 것은 의도여부와 관계없이 분쟁을 겪고 있는 한진그룹에 산업은행이 백기사가 돼준 꼴이기 때문이며, 국토교통부의 교통정리가 부재한 상황에서 산업은행이 독단적으로 주도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회장 선임의 캐스팅보트를 쥔 산업은행, 적극적이지만 때때로 전문가들과 역행하는 판단을 기반으로 주주행사를 벌이는 국민연금, 부동산에만 매진한 탓인지 제 역할이 부각되지 못한 주무부처까지. 당장에선 최선일 수 있지만, 훗날 재림할지도 모를 독재자의 의도에 부합할 수 있는 선례가 돼준 것은 아닐지 고민해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