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철·이건희 뇌물 판례 언급···“독재시절에도 재벌 우대 요구”
“‘수동적 뇌물공여’ 허위 주장···대법 전합 명시적으로 판단”
“재벌 집유 선고하는 3·5 법칙 적용 안 돼”···‘대등위치’ 강조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 등의 요구에 수동적으로 뇌물을 줬다는 방어논리에 대해 박영수 특별검사 측은 쌍방이 득을 본 ‘윈윈(win-win)’ 사건이라고 맞받아쳤다. 특검 측은 군 독재시절에도 삼성이 우대를 요구했던 판례를 언급하며, 경제권력이 우월적 지위로 변환 상황에서 더욱 엄격한 양형기준이 적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검 측은 23일 오후 서울고법 형사1부(정준영 송영승 강상욱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이 부회장의 뇌물공여 등 사건 속행공판 양형변론에서 “대법원이 판시한 적극적, 능동적 뇌물 공여 범행에 해당한다고 봐야한다”고 주장했다.
특검은 과거 삼성 총수들이 전직 대통령에게 뇌물을 공여하고 기업 운영에 이익을 얻었다는 ‘기대 가능성’이 인정된 판례를 구체적으로 언급하며 변론을 시작했다.
특검은 故이병철 회장과 故이건희 회장이 전두환씨와 노태우씨에게 각각 뇌물을 줘 유죄 판결을 선고받은 사건에 대해 “정치권력이 우월적 위치에 있던 군 독재시기에도 재벌은 우대를 요구했다”며 “판례는 금품을 대통령에게 제공하고 기업 운영과 관련한 이익 얻은 것이 인정된 판시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뇌물에 대해서도 특검은 “이건희 전 회장은 자금을 지원하면 회사가 대통령으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 아래 뇌물을 공여했다”며 “과거 삼성그룹의 대통령의 뇌물공여 범행은 어쩔 수 없이 수동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반대 이익을 기대하면서 제공한 것으로 적극적 뇌물공여 범행이었음이 인정됐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 부회장의 사례와 관련 특검은 “확인된 증거들에 의해 인정된 것처럼 이 부회장은 정부가 사안에 따라 자신에게 청탁을 해야 하는 상대로 인식하고 있었음이 확인됐다”며 “재계서열 1위인 이재용과 박근혜 전 대통령 사이는 강요에 의해 어떤 행위를 요구할 수 있는 관계가 아니라 상호 윈윈의 대등 지위에 있었음이 명백히 확인됐다”고 강조했다.
특검은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도 적극적 뇌물 공여를 명시적으로 판시했다”며 “피고인들은 파기환송심 변론 과정에서 대법원에서 확정된 사실과 다르게 수동적 뇌물공여 등 허위 주장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이재용의 뇌물공여를 수동적 뇌물공여로 판단하거나 이런 전제로 양형심리를 하는 것은 기속력 범위를 일탈하고, 증거재판주의를 위반하는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다”며 “진지한 반성을 전제로 한 준법감시제도에 대한 양형 심리의 진정성이 의심스럽다”고도 했다.
특검은 삼성물산 회계 직원이 10억원의 횡령 범행에 이 부회장보다 무거운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받은 사례도 거론했다.
특검은 “일개 직원인 삼성물산의 회계 직원은 이재용 피고인의 횡령 금액 8분의 1정도로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며 “이재용에게 회계 직원보다 낮은 형이 선고된다면 누가 보더라도 평등하지 못하고, 법치주의가 실종됐다는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해방 이후 우리 사회는 재벌의 뇌물공여 및 횡령 범행에 대한 가벌성 또한 발전해 왔다”며 “과거 재벌들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하는 소위 3·5 법칙(재벌 총수에 대한 관대한 처벌을 일컫는 법조계 용어, 징역 3년·집행유예 5년)을 적용하면 안 된다. 이는 특권층을 인정하고 헌법상 평등원리를 해치는 위법적인 결정이 될 것이다”고 경고했다.
이 부회장은 지난 2017년 2월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 등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기소돼 4년 가까이 재판을 받고 있다. 1심에서 징역 5년을, 2심에서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대법원은 2심이 무죄로 판단한 뇌물액 50억여원을 유죄로 판단하고,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인정된 뇌물액이 총 86억원이 되면서 재수감 가능성이 커졌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액이 50억원 이상이면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형’을 선고해야 한다. 집행유예는 3년 이하의 징역형일 때에만 가능하다.
삼성 측은 이 부회장의 재산국외도피 관련 혐의에 무죄가 확정됐고 이 부회장의 뇌물공여가 수동적이었다고 주장하며 집행유예가 가능한 징역 3년 이하의 형 선고를 기대하는 분위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