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무時代 막강 2인자 구 고문···“선제적 분리 마쳐, 이번이 마지막 일 것”
LG그룹 패밀리 비즈니스서 ‘단독 오너체제’ 전환점···구광모의 새로운 과제

구본준 LG 고문. /그래픽=김은실 디자이너
구본준 LG 고문. /그래픽=김은실 디자이너

[시사저널e=김도현 기자] 구본준 LG 고문의 계열분리가 추진 중이다. 그룹의 성장을 도모한 창업주 형제들과 2·3세, 65년간 동업을 이어 온 사돈가 GS그룹 등의 계열분리가 계속돼 온 LG의 계열분리도 구 고문의 분리를 마지막으로 끝맺음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19일 재계 등에 따르면, LG그룹은 오는 26일 이사회를 통해 계열분리안을 확정지을 것으로 전해진다. LG상사·LG하우시스·판토스 등이 LG그룹에서 제외된다. 구 고문이 보유한 ㈜LG 지분 7.72%와 해당 계열사들의 주식을 맞교환하는 방식이 유력하다는 전언이다.

LG 계열분리 역사는 1992년으로 거슬러간다. 고(故) 구자경 명예회장의 차남이자, 구광모 LG 회장의 친부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이 희성금속을 분리해 독자영역을 구축했다. 희성그룹은 구본능 회장과 구자경 명예회장의 4남 구본식 회장이 이끌었는데, 구본식 회장은 희성그룹에서 삼보이엔씨·희성금속·희성정밀·희성소재 등을 분리시켜 지난해 1월 LT그룹을 창립했다.

희성그룹을 제외하면 2000년 전후로 LG는 계열분리 속도를 냈다. 처음에는 구인회 LG 창업주 동생들을 중심으로, 이후엔 구자경·구본무 회장 형제들을 중심으로 분리가 이뤄졌다. 1999년 출범한 LIG그룹은 구 창업주의 둘째동생 구철회 LG 창업고문 일가가 LG화재를 분리시켜 탄생시켰다. 현재는 LIG넥스원과 같은 방위산업체도 보유한 중견그룹으로 거듭났다.

창업주 넷째·다섯째·막냇동생인 구태회 LS전선 명예회장, 구평회 E1 명예회장, 구두회 예스코 명예회장 등은 2003년 LG산전·LG전선 등을 분리시켜 LS그룹으로 발돋움시켰다. 세 명예회장 작고 후 현재는 이들의 자제들이 중심이 된 사촌경영이 이뤄지고 있으나, 추후 △LS △E1 △예스코홀딩스 등 중심의 추가 계열분리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구자경 명예회장 동생들도 발 빠르게 움직였다. 둘째동생 구자승 전 LG상사 사장 장남인 구본걸 LF 회장은 2006년 LG상사에서, 셋째동생 구자학 아워홈 회장은 2000년 당시 LG유통(현 GS리테일) FS사업부를 분리시켜 각각 LF와 아워홈 등을 탄생시켰다. 셋째동생 구자두 회장의 LB인베스트먼트와 넷째동생 구자일 회장의 일양화학 등도 LG에 둔 회사들이다.

가장 큰 규모의 계열분리는 GS그룹이었다. 구 창업주는 경남 진주를 대표하는 부자 능성 구씨 일가다. 당시 진주에는 능성 구씨와 함께 김해 허씨가 양대 만석꾼으로 이름을 떨 쳤는데, 허만정 LG 공동창업주가 김해 허씨 후손이었다. 구 창업주가 1931년 구인회상점을 개점하고, 사돈인 허 창업주와 1941년부터 동업관계를 이어왔다.

2004년 허창수 당시 LG건설 회장(현 GS건설 회장)은 GS홀딩스를 세우고 LG건설, LG칼텍스정유 및 LG유통 등을 산하에 두는 방식으로 GS그룹을 설립했다. 이후 일가의 회사들까지 품에 안으며 오늘날 재계 8위 대형 기업집단으로 거듭났다. 동업청산 과정에서 별다른 잡음이나 경영권 분쟁이 없던 까닭에 여전히 재계의 귀감이 되는 사례로 손꼽힌다.

동업청산을 위한 GS 분리를 제외하면 LG 계열분리는 한 가지 공통점을 지녔다. 차남 이하 형제들이 중심이 됐다는 점이다. LG는 창업주부터 현 구광모 회장에 이르기까지 4대가 경영권을 세습하는 동안 철저하게 지켜온 원칙이 있다. 바로 장자승계 원칙이다. 장남은 그룹을, 성장에 일조한 차남 이하 형제들은 일부 계열사를 바탕으로 속속 독립했다.

구본무 회장 형제들 중 현재까지 계열분리에 나서지 않은 이가 바로 구본준 LG 고문이다. 구 고문은 형제들이 희성그룹을 창업하고, 희성그룹에서 재차 LT그룹이 분리되는 동안 꾸준히 LG를 지켰다. 구 회장 재임 중에는 그룹의 명실상부한 2인자로서 본인의 영향력을 공고히 해 왔으며, 창업주 4세 시대 개막과 동시에 일선에서 손을 뗐다.

LG상사 등을 바탕으로 구 고문의 계열분리가 감행될 경우 마지막 계열분리라고 점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가 형제들 중 유일하게 계열분리를 실시하지 않은 형제고, 현 구광모 회장 이외에는 경영전면에 나선 형제들이 없는 까닭에서다. 구 회장의 양부인 구본무 회장과 친부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은 각각 2명·1명이 딸들이 있지만 경영과는 무관하다.

복수의 재계 관계자들은 GS를 제외한 LG의 계열분리는 전통적으로 그룹 핵심사업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범위에서 이뤄져 왔다고 지목했다. 또한 여식들을 경영에 참여시키지 않았으며, 구 고문을 제외한 일가가 선제적으로 계열분리를 시행했다는 점에서 LG상사 등을 중심으로 한 계열분리가 LG의 마지막 계열분리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점쳤다.

이번 계열분리를 계기로 구광모 회장 역시 상당한 숙제를 안게 됐다는 평도 적지 않았다. 추가적인 계열분리가 없다는 전제 아래, 현행 전자·화학·통신 등 주력사업을 오로지 본인의 능력을 바탕으로 그룹을 성장시켜야 한다는 부담감을 짊어지게 됐다는 의미였다. 창업주부터 이어져 온 이른바 ‘패밀리 비즈니스’가 ‘단독오너’ 체제로 전환됐음을 뜻했다.

한 재계 관계자는 “한 때 재계 2위였던 LG그룹이 오늘날 재계 8위 GS그룹과 16위 LS그룹 등을 포함한 다양한 기업들을 분리시켰음에도 여전히 4위에 랭크됐다는 점이 고무적”이라면서 “부친의 사업을 물려받는 과정에서 형제는 물론이고 부모자식 간 다툼이 빈번했던 그간의 재계 풍토에 비춰보면 단 한 차례도 잡음이 없던 LG의 자취가 참으로 인상적이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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