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이주 수요, 수도권 3만8475호·서울 5140호
국토부, 전세수요 집중 피하기 위해 정비사업 이주 시기 조정
“이사 늦춰질 경우 일정 꼬여···금융비용 등 조합원 부담 늘 수 있어”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정부가 전세난 과중을 막기 위해 전국의 정비사업 이주 시기를 조정하겠다고 밝혔다. 예정된 이주 시기가 늦춰질 경우 사업 지연이 불가피한 만큼 조합들의 반발이 적지 않을 전망이다. 시장에선 당장 수요는 억제할 수 있겠지만 주택 공급 축소 우려로 매매시장을 자극시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19일 국토교통부는 이날 발표한 ‘서민·중산층 주거안정 지원 방안’에서 정비사업 이주 시기를 조정하겠다고 밝혔다. 특정 시기에 이주 수요 집중을 막아 전세난을 예방하겠다는 취지다. 국토부에 따르면 내년 전국 재건축·재개발 이주 수요는 6만1638호로 추정된다. 이중 수도권은 3만8475호로 전체 이주 수요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서울은 5140호로 집계됐다. 국토부 관계자는 “정비사업 이주 시기 조정은 과거 전세대책을 낼 때도 수요 조정 측면에서 특정 시기·지역 많은 주택 멸실 차단 위해 활용해왔다”며 “서울시 조례로 근거가 마련돼 있다. 지역주민 이해관계도 걸려있어서 상당히 신중하게 지자체와 협의하겠다”고 설명했다.

재건축·재개발 이주수요 추정 / 자료=국토교통부

정부 발표 이후 시장에선 이주 시기 분산의 실효성 자체가 미지수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주시기 조정이 불과 수개월 정도 늦춰지는 것만으로는 전셋값 급등이나 매물 부족을 해결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오히려 기존 조합들의 불만만 키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현지에선 사업 지연을 우려하고 있다. 애초 계획보다 이사 시기가 늦춰지면 전체적인 사업 일정도 꼬일 수 있어서다. 실제로 2018년 정부가 전세난을 이유로 이주 시기를 조정했던 서울 잠실 진주아파트는 애초 계획보다 반년 이상 이주가 지연됐다.

재산권 침해도 논란거리다. 이주가 늦어지면 추가적인 사업비 투입과 금융비용 증가로 조합원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조합의 피해가 뻔한데 이에 대한 보전 방안 없이 일방적으로 이주시기 조정을 발표한 것은 혼란만 부추긴다는 지적이다. 전세난을 잡다가 오히려 매매시장을 자극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 정비업계 관계자는 “정비사업 멸실 시기는 주택 공급과 연결되는 부분”이라며 “멸실을 늦추면 당장 수요는 억세할 수 있지만 결국 신규 주택 공급은 그만큼 늦춰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실수요자들 사이에서 주택 공급 부족 우려가 또다시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현재 직면한 전세난은 임대주택 공급으로 해결책을 찾되, 정비사업 이주는 이주용 임대주택 확보 등 중장기적인 구조 개선이 병행돼야 한다고 조언한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이주시기 조정이 특정 시기에 몰리는 것을 예방할 수는 있겠지만 앞으로 더 많은 정비사업장이 나오게 되면 인위적 조정이 불가능해 진다”며 “지금부터 수요 관리를 하고 조합원들이 이주할 수 있는 임대주택을 확보해 별개로 움직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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