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 국감 등서 공개 필요성 제기 따라 검토 예정···협회 통한 공개도 검토
제약, 경제적 이익 수수 ‘의사’ 의식해 부담···공개 확정 시 합법 마케팅 축소 우려

그래픽=이다인 디자이너
/ 그래픽=이다인 디자이너

[시사저널e=이상구 의약전문기자] 제약업계가 정부의 ‘경제적 이익 등의 제공 내역에 관한 지출보고서’ 공개 검토 방침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현재도 경제적 이익을 제공 받는 의사들이 보고서에 기재되는 것에 민감해하는데, 향후 이같은 상황이 확대될 수 있기 때문이다.

11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지출보고서 공개 방안 검토에 착수한다는 방침이다. 복지부가 최근 국회에 보고한 내용에 따르면, 지출보고서를 사례화해 국민들에게 공개하는 방안을 검토키로 했다. 구체적으로 제약사나 의료기기업체들이 한국제약바이오협회나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한국의약품유통협회 등 관련 협회에 지출보고서를 매년 제출하고, 각 협회는 홈페이지를 통해 보고서를 공개하는 방식 등을 검토할 예정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최근 국정감사 등에서 지출보고서 공개 필요성이 제기돼 정부가 본격 검토에 착수하려는 것”이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실제 지난달 7일 진행된 복지부 국감에서 고영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제약사 등의 지출보고서 작성과 제출 의무화가 3년 동안 시행됐지만, 여전히 대다수 업체들이 보고서를 제대로 제출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복수의 제약업계 관계자는 “정치권 등 업계 외부는 리베이트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의 하나로 지출보고서 공개를 거론하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복지부가 이처럼 지출보고서 공개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단기간 결론이 도출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복지부 약무정책과 담당 사무관이 공석이고, 의료계와 제약업계 등 이해관계자들이 민감하게 반응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지난 2018년 1월부터 시행된 지출보고서는 제약사나 의료기기업체가 ▲견본품 제공 ▲학회 참가비 지원 ▲제품설명회 시 식음료 제공 ▲임상시험·시판 후 조사비용 지원 등을 의사 등 의료인에게 시행한 경우 ‘누가’ ‘언제’ ‘누구에게’ ‘얼마 상당의 무엇을’ 제공했는지를 구체적으로 기재한 자료다. 이같은 점 때문에 제약업계는 복지부의 지출보고서 공개 검토 입장에 내심 부담스럽다는 입장이다. 

A제약사 관계자는 “제약사나 의료기기업체로부터 경제적 이익을 제공 받은 의사는 본인 이름과 소속 의료기관명, 기관 소재 지방자치단체명 등이 지출보고서에 기재된다”면서 “현재도 의사들이 민감해하는데, 만약 국민들이 볼 수 있게 공개된다면 어느 의사가 이익을 받겠는가”라고 우려했다. 

B제약사 직원은 “현재 1만원 이상 경제적 이익이 지출보고서에 기재된다”며 “의사 입장에서는 담당 환자가 보고서에 나온 본인 이름을 확인하는 순간부터 의사와 환자의 신뢰관계가 흔들릴 수 있다는 점에서 보고서 공개가 걱정”이라고 말했다.  

C제약사 관계자는 “업계 외부는 지출보고서만 공개하면 리베이트가 없어질 줄 아는데 그동안 왜 정부의 일부 리베이트 규제책이 실패했는지 모르고 있다”며 “리베이트를 주고 받는 구조적 문제를 바꾸려는 시도는 하지 않고 보고서에만 집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D제약사 직원은 “제약업체 입장에서는 처방권을 갖고 있는 의사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제가 의사라면 차라리 제품설명회에 가지 않는 등 지출보고서에 이름이 올라가지 않는 방안을 선택하겠다”고 말했다. 

E제약사 임원은 “당초 정부가 지출보고서 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협회와 업계에 보고서를 공개하지 않는 방향을 밝힌 바 있다”며 “이제 리베이트 척결을 내세워 공개를 추진하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라고 호소했다. 

F제약사 관계자는 “만약 지출보고서가 공개되면 현재 합법적으로 진행하는 제품설명회 등 제약사의 마케팅 도구를 활용하기 어렵게 된다”며 “업계 외부는 현실을 모른 상태에서 대책만 요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결국 제약업계는 처방의약품 시장이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는 현 의약품 시장에서 처방권을 갖고 있는 의사들을 의식해 지출보고서 공개에 부담을 갖는 것으로 분석된다. 만약 지출보고서 공개가 확정될 경우에는 이름 기재에 민감한 의사들이 제품설명회 등 제약사들의 합법적 마케팅 행사에 참여가 저조할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복수의 제약업계 관계자는 “리베이트를 척결하려는 정부 의지는 이해하지만 그것을 지출보고서 공개와 연결시키는 것은 일부 무리가 있다”며 “향후 복지부가 업계 의견을 제대로 수렴해 합리적이고 객관적으로 정책을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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