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코 배상 은행협의체, 출범 4개월 지났지만 배상 논의 진전 없어
금감원 “은행협의체 무산 단계 아냐···은행에 자율배상 설득할 것”
은행권, 자율 배상 ‘신중’···“배임죄 우려”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사진=연합뉴스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김희진 기자] 외환파생금융상품 ‘키코(KIKO)’ 피해기업에 대한 배상이 무산될 가능성이 커졌다. 키코 배상을 위한 은행협의체가 출범한 지 4개월이 지났지만 배상 논의에 진전이 없기 때문이다. 키코 배상은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이 취임 후 야심차게 추진했던 숙원 사업이지만 해법을 찾지 못하면서 윤 원장의 입장이 난처해진 상황이다.

4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감원은 지난주 은행협의체에 참여한 10개 은행(신한·KB국민·하나·우리·NH농협·기업·SC제일·씨티·HSBC·대구은행)과 개별 접촉해 키코 배상 관련 내부 진행 상황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은 앞서 지난 6월에 구성된 은행협의체와 지금까지 3차례 대면회의를 진행한 바 있다. 그러나 논의에 별다른 진척이 없자 은행별로 배상 의지를 확인하기 위해 개별 접촉을 시도한 것이다. 지난달 말까지 금감원에 자율 배상 의사를 밝힌 은행은 없었다.

키코는 기업과 은행이 환율 상·하한선을 정해 놓고 그 범위 내에서 지정된 환율로 외화를 거래하는 파생금융상품이다. 환율이 일정 범위 내에서 움직이면 기업은 시장가격보다 높은 약정 환율로 외화를 팔 수 있지만, 지정된 상한선을 넘으면 기업은 미리 정한 환율과 실제 환율 간 차액의 2배를 은행에 물어줘야 한다. 지난 2008년 금융위기로 당시 환율이 급등하면서 키코 계약을 맺은 중소기업 등이 큰 피해를 입었다.

이후 대법원이 2013년 "키코는 불공정거래행위가 아니다"라고 확정판결을 내리면서 사태가 마무리되는 듯했으나 윤석헌 금감원장이 지난 2018년 취임 이후 키코 재조사를 지시하며 논란이 재점화됐다.

윤 원장의 강력한 추진력에 힘입어 지난해 12월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는 키코 상품을 판매한 은행 6곳(신한·KDB산업·우리·씨티·KEB하나·대구은행)을 상대로 불완전판매에 따른 배상책임이 인정된다며 기업 4곳에 손실액의 최대 41%를 배상하라고 권고했다. 이중 우리은행을 제외한 나머지 5개 은행은 권고를 불수용했다.

금감원은 은행협의체를 지속 운영하면서 은행에 자율 배상 협조를 계속해서 요청하겠다는 입장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은행협의체가 무산될 단계는 아니며 은행 측에서 사실관계를 검토할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입장이라 아직 결정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라며 “가급적 빨리 결론을 내달라고 요청한 상태이며 자율 배상을 진행하는 방향으로 은행들을 설득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은행은 여전히 자율 배상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이다. 각 판매 건의 불완전판매를 일일이 들여다보기에 많은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불완전판매가 증명된다고 해도 키코 피해 기업 배상과 관련한 민법상 소멸 시효(10년)가 지났기 때문에 법률상 배상 의무가 없다는 게 은행 측 입장이다. 시중은행들은 금감원의 권고대로 자율 배상을 진행한다면 주주의 이익에 반하는 배임죄에 해당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은행권 관계자는 “키코 사태는 이미 2013년 대법원 판결로 불완전판매가 아니라고 결정이 난 사항”이라며 “대법원 판결과 금감원의 분쟁조정 중 대법원의 판결을 우선시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법원은 최고 사법기관이지만 금감원의 분쟁조정안은 법적 강제성이 없다”며 “사법기관도 아닌 금융당국이 배임이 아니라고 해서 주주들도 배임이 아니라고 생각할지는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문제는 대다수 은행이 금감원의 권고를 불수용했던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 은행협의체에서도 자율 배상이 결론 나지 못한다면 금감원이 내놓을 수 있는 뾰족한 해법이 없다는 점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만약 은행에서 사실관계를 파악해본 결과 불완전판매가 아니라고 판단해 배상을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은행에 강제로 어떤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건 아니다”라며 “자율 배상을 계속해서 설득하는 방안이 지금으로선 최선”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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