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분야 다른 사업 간 간섭 줄이고 투자 및 인수합병 용이해져
[시사저널e=엄민우 기자] 코로나19로 기업환경이 급변하면서 회사분할이 인수합병(M&A)과 함께 새로운 재계 트렌드가 되고 있다. 분할하는 사정은 각각 다르지만 그 안엔 ‘생존’이라는 공통된 키워드가 담겨져 있다는 분석이다.
회사분할은 크게 특정 부문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 이뤄지는 경우와, 과거사업을 떼어내고 회사가 미래 동력에 집중하기 위해 진행하는 경우로 나눠볼 수 있다. 최근 LG화학이 배터리 사업 물적분할을 결정한 것은 전자 경우의 대표적 예다.
LG화학에게 있어 배터리 사업은 캐시카우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전기차 배터리 시장 1위에 오르며 삼성의 반도체처럼 LG의 미래 먹거리로 떠오르게 됐다. LG화학에 따르면 새롭게 분사할 LG배터리 법인의 올해 예상 매출액은 약 13조원 수준이다.
LG화학 관계자는 “석유화학과 배터리가 사업특성이 달라 독립적 의사결정이 힘들었는데 경영효율성을 높일 수 있게 됐고, 배터리에 3조~4조원의 투자를 받아야 하는데 자금 확보도 한층 용이하게 됐다”며 분사 이후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분할되는 배터리 뿐 아니라, 기존 석유화학 부분도 더욱 색깔에 맞게 집중 경영할 수 있게 됐다는 설명이다.
사실 LG그룹은 이미 LG생활건강을 통해 회사분할의 성공사례를 만들어낸 바 있다. LG생활건강은 2001년 4월 LG화학에서 분할해 신설됐다. 인적분할 방식을 택했다는 점에서 LG배터리 분사와 방법의 차이는 있지만 내용은 비슷하다. 과거 B2B(기업간거래)를 주로 하던 LG화학에서 떨어져 나와 화장품 등 생활용품에 집중하게 되면서 과거와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성장할 수 있었다는 전언이다. 현재 LG생활건강의 시가총액은 약 23조8000억원으로 2001년 당시 대비 약 53배 성장했다.
LG생활건강 관계자는 “회사분할 이후 집중적으로 정체성에 맞는 분야에 투자하고, 또 인수합병(M&A)을 거치며 지금처럼 성장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SK텔레콤이 모빌리티 사업을 분사시킨 것 역시 비슷한 맥락으로 해석된다. LG화학과 마찬가지로 물적분할 방식을 택했는데, 모빌리티 부문에 전념하면서 우버 등 다양한 회사와 파트너십을 맺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특정 사업을 키우기 위해 사업을 분사시키는 경우도 있지만, 시대변화에 따라 달라진 사업 환경 때문에 회사를 떼어내는 경우도 있다.
IBM은 최근 IT인프라 사업부를 분사시키겠다고 발표했다. 해당 사업은 IBM의 정통 비즈니스로 회사 매출의 4분의 1을 차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사결정을 내린 것은 시대 변화로 인해 더 이상 해당 사업을 잡고 있으면 안 된다는 위기감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클라우드 서비스가 퍼지게 되면서 IT인프라 사업은 점차 구시대유물이 돼가고 있었다.
IBM은 해당 사업을 분사시키고 클라우드 등 트렌드에 맞는 미래먹거리에 더욱 집중 투자할 수 있게 됐다. 강점을 갖고 있는 사업을 버릴 순 없지만, 과거 비즈니스를 붙잡고 있다간 기업 생존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계산이 기저에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분사 움직임이 활발한 가운데 시장에선 삼성전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 행보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삼성전자는 고객과 경쟁해야 하는 문제 등 때문에 수 년 전부터 파운드리 사업을 분사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김기남 부회장이 올해 초 분사계획이 없다고 밝혔지만, 파운드리 부문 세계 1위인 TSMC가 더욱 치고나가면서 다시 분사 여부에 관심이 쏠리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