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완성차그룹 합병···내년 출범예정 ‘스텔란티스’ 단숨에 글로벌 4위
스텔란티스 심사 통해 EU 특정분야 과독점 및 유럽시장 영향 집중점검
韓조선, LNG선 분야서 독점적 영향력···유럽 조선사 주력선종과 상이
[시사저널e=김도현 기자]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결합심사를 진행 중인 유럽연합(EU) 경쟁당국이 글로벌 완성차업계 순위를 뒤바꿀만한 대형 합병계획안을 승인했다. 피아트-크라이슬러 오토모빌스(FCA)와 푸조시트로엥(PSA)그룹 간 합병이 현실화됨에 따라, 국내 조선사 심사에도 적지 않은 영향이 될 것이란 관측이 지대하다.
EU의 이번 결정으로 FCA·PSA는 ‘스텔란티스(Stellantis)’란 자동차그룹으로 내년 초 거듭나게 됐다. 스텔란티스 산하에는 △피아트 △크라이슬러 △푸조 △시트로엥 △마세라티 △지프 △닷지 △오펠 △DS오토모빌 등 14개 브랜드가 자리하게 된다. 이번 합병이 마무리되면 스텔란티스는 단숨에 글로벌 완성차 4위 업체로 도약한다.
EU는 이번 합병을 승인하기까지 상당한 고심을 거듭했다. 심층심사를 거쳤을 정도였으며, 기간만 1년여가 소요됐다. 두 회사가 소형승용·상용차 등에 공통적으로 상당한 점유율을 보유한 이유에서다. FCA·PSA 등은 미국·러시아·중국·일본 등에서도 심사를 받았지만, EU의 심사가 가장 까다로웠다. 소형승용·상용차 수요가 유럽에서 유독 높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번 심사과정을 돌이켜보면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 합병과정과 상당히 닮아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두 회사의 합병 역시 EU를 비롯해 한국·중국·일본·카자흐스탄·싱가포르 등 복수 국가로부터 모두 승인을 얻어내야 한다. 카자흐스탄과 싱가포르만이 승인 결정을 내렸다. 한·중·일 3국의 심사가 예정됐지만, 합병의 최대 분수령으로 꼽히는 곳은 역시 EU다.
EU 경쟁당국은 지난해 11월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 합병심사에 착수했다. 지난 4월부터는 심층심사에 돌입했다. 결과는 해를 넘길 것으로 점쳐진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여파로 심사일정이 다소 순연된 것을 감안하더라도 심사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업계에서는 EU의 이번 심사를 통해, 조선사 빅딜에도 긍정적인 결과를 가늠해 볼 수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EU가 전체적인 시장뿐만 아니라 특정 선박분야, 특히 유렵 내 공정경쟁을 저해할 가능성이 농후한지 여부를 집중적으로 논의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면서 “비록 액화천연가스(LNG)선 분야서 독점적 점유율을 보일 것으로 예상되지만, 유럽 조선사들과는 취급하는 선박이 상이한 만큼 긍정적인 결과를 예상해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LNG선은 두 회사와 삼성중공업에 이르기까지 국내 조선 빅3가 모두 강점을 보이는 분야다. 제작능력 역시 국내 3개 기업과 중국의 후동중화조선 정도만이 글로벌 선주사들의 니즈를 충족시킬 만한 LNG선 제작능력을 갖췄다. 다만 기술력은 국내 3사가 중국업체에 비해 월등히 높다고 알려진다. 지난 6월 카타르 국영석유회사 카타르페트롤리엄(QP)이 120여척의 LNG선을 발주했는데, 대다수가 국내 3사에 극히 일부가 후동중화조선에 배정된 바 있다.
결과적으로 두 회사의 합병으로 LNG선 분야에서 높은 점유를 보이게 된다 하더라도, 관련 기술력조차 보유하지 못한 유럽 조선사들의 영업활동에는 지장을 주지 않는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유럽의 주요 조선사들은 초대형유람선 제작에 특화됐다. 한국에 앞서 글로벌 조선업계의 패권을 일본이 쥐었을 때부터 아시아 국가들의 조선경쟁력은 유럽을 넘어섰다.
여전히 우려된다는 지적도 있었다. FCA·PSA 등이 기존 완성차업계서 발휘하던 영향력과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이 조선업계서 갖는 의미가 상당히 차이가 있기에서다. 조선사 빅딜의 경우 사실 상 글로벌 1·2위 업체들 간 합병이라는 점에서 스텔란티스 탄생보다 더 큰 시장의 변화를 일으킬 것으로 여겨진다. 더욱이 유럽은 국내 조산서들의 주요 고객사들이 밀집한 탓에 유럽 조선사들보다 더 큰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이 같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EU가 장고 끝에 글로벌 4위 완성차그룹의 탄생을 승인했다는 점에서 국내 조선사들의 합병승인을 내릴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는 평이 주를 이룬다. 불허하더라도 이에 걸맞은 명분이 있어야 하는데, EU 입장에선 가격경쟁력이 상실돼 선사들이 피해를 입게 될 것이란 가능성을 제외하면 마땅히 내세울 반대이유가 부족하다는 의미였다.
한 관계자는 “결합심사는 합병 이후 시장에 불어닥칠 다양한 부정적 가능성을 판단하는 과정인 만큼, 갖은 우려가 제기될 수밖에 없다”면서 “EU 정부가 FCA·PSA 합병에 승인결정을 내렸다는 그 자체만으로 의의가 높으며,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 합병에도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해볼만 하다”고 풀이했다.
두 회사 결합은 심사대상국 모두의 승인을 얻어내야 최종합병이 가능하다. EU를 제외한 잔여심사국 한·중·일 3국 중에서는 일본이 가장 까다로운 심사국으로 평가된다. 한국에 추월당한 이후 한·일 양국의 주력선종도 상이해졌다. EU가 승인을 낼 경우 일본 역시 반대할 명분이 다소 부족하다는 평을 얻는다.
EU가 두 회사 합병에 최대 분수령으로 꼽하는 까닭이다. 한국은 대통령까지 나서 합병에 긍정적인 메시지를 던졌고, 대우조선해양의 매각 주체가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라는 점에서 이변이 없는 한 합병이 유력하다. 중국 역시 비슷한 규모의 조선업계 빅딜을 추진 중이어서, 반대할 경우 자국 조선사들의 합병심사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돼 찬성할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