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별세·정몽구 와병···이재용·정의선 시대 동시개막
상속 문제는 ‘발등의 불’···골드만삭스·NH證과 논의 전망
이재용-블록딜, 정의선-IPO로 상속 실타래 풀 가능성

그래픽=김은실 디자이너
그래픽=김은실 디자이너

[시사저널e=이승용 기자]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별세하고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건강 악화로 정의선 수석부회장이 회장직을 이어받으면서 상속이 재계 현안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의선 회장 모두 상속세를 내기에는 보유한 자금이 부족하고 경영승계가 그룹 지배구조개편과 맞물려 있다. 이 부회장과 정 회장이 경영승계와 관련된 복잡한 함수를 풀기 위해서는 자본시장의 조력이 필요하고 삼성과 현대차 모두 이를 잘 알고 있기에 그동안 국내외 증권사와 계열사 합병 및 지배구조개편 등을 논의해왔다.

최근에는 이건희 회장 별세와 정몽구 명예회장 와병으로 시간이 한층 촉박해짐에 따라 계열사 합병 등 지배구조개편 대신 이 부회장이 시간외대량매매로(블록딜)로 보유주식 가운데 일부를 매각하고 정 회장은 현대엔지니어링 기업공개(IPO)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 ‘상속 현안’ 삼성·현대차, 골드만삭스·NH證 도움받나

2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이재용 부회장과 정의선 회장의 경영승계 및 지배구조개편과 관련해 국내외 증권사들은 삼성과 현대차에 컨설팅을 제공해왔다.

이 부회장은 그동안 경영승계 및 그룹지배구조 개편을 위한 컨설팅파트너로 골드만삭스와 깊은 관계를 유지해왔다.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2011년부터 이어진 삼성그룹 계열사 재편과정에서 골드만삭스와 논의를 해왔고 이건희 회장이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2014년 이후부터는 이 부회장이 직접 국내외를 오가며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과 그에 따른 상속세 문제를 논의해왔다.

최근 이 회장 별세로 이 부회장은 상속세가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됐다. 유족들은 상속개시일이 속하는 이달 말일부터 6개월 이내에 상속세를 국세청에 자진 신고해야 한다. 이후 국세청은 2개월 내 최종납부액을 피상속인에 통보한다.

이 회장은 유산으로 삼성생명 4151만9180주(지분율 20.76%), 삼성전자 2억4927만3200주(지분율 4.18%), 삼성전자 우선주 61만9900주(0.08%), 삼성SDS 9701주(0.01%), 삼성물산 542만5733주(2.86%) 등을 남겼다. 금액기준으로는 삼성전자 주식이 약 15조원으로 가장 많고 삼성생명이 2조7000억원, 삼성물산이 6000억원수준으로 모두 합해 18조원이 넘는다.

주식에 대한 평가액은 고인의 사망일 전후 2개월(총4개월) 동안의 종가평균으로 정해지기 때문에 두 달 이후 확정된다. 최대주주거나 특수관계인이 보유했던 주식재산에 대한 상속세는 20% 할증이 붙고 최고세율 50%가 적용되기 때문에 대략 60%에 달한다. 부동산을 포함해 유족들이 납부할 상속세는 대략 11조원가량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이 부회장은 상속세 문제를 놓고 다시 골드만삭스와 깊은 논의를 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차 역시 정의선 회장으로의 경영승계에 직결되는 그룹지배구조 개편과 관련해 NH투자증권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오고 있다. 여의도에서는 정영채 NH투자증권 대표에 대해 “증권업계 최고의 IB전문가로서 대표 취임 이전부터 왠만한 국내 대기업의 경영승계 관련 시나리오 작업을 대부분 담당했던 브레인”이라는 평가가 널리 알려진 상태다.

정 회장으로서도 정몽구 명예회장의 나이(1938년생)와 건강을 고려하면 상속 관련 준비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정 명예회장은 대장게실염 수술로 지난 7월 아산병원에 입원했는데 퇴원 일정이 아직 잡히지 않고 있다.

정 명예회장은 현대모비스 주식 677만8966주(지분율 7.13%)를 비롯해 현대차 1139만5859주(5.33%), 현대제철1576만1674주(11.81%), 현대글로비스 251만7701주(6.71%) 등을 보유하고 있다. 지분평가액으로는 대략 현대차 지분이 2조원, 현대모비스가 1조6000억원, 현대제철과 현대글로비스가 각각 4000억원대 중반으로 총 4조5000억원에 달한다. 향후 정 명예회장이 별세한다면 정의선 회장이 내야할 상속세는 3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분석된다.

금융투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 부회장과 정 회장이 상속 문제에 직면하면서 국내외 자본시장과 접점을 확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래픽=김은실 디자이너
그래픽=김은실 디자이너

◇ 이재용-블록딜, 정의선-IPO 가능성↑

증권가에서는 이 부회장 등 삼성그룹 오너일가가 상속세를 납부하기 위해서는 삼성그룹 계열사의 배당 확대가 필수적이라고 보고 있다. 삼성그룹 오너일가의 지난해 배당소득은 총 7246억원으로 11조원에 이르는 상속세를 5년 내 납부하기에는 턱없이 적은 수준이다.

하지만 배당에는 고율의 세금이 붙는다. 정부는 2020년 세법개정안을 통해 10억원 초과 과세표준 구간을 신설하고 최고세율을 현행 42%에서 45%로 인상했다. 2014년 이후 이건희 회장이 와병 중에 계열사로부터 받아왔던 배당금 1조7988억원에도 소득세가 붙었고 세후현금 및 퇴직금에 대해서도 50%의 상속세가 부과된다. 이를 감안하면 삼성그룹 오너일가가 계열사 배당 확대로 마련할 수 있는 실제 자금에는 한계가 존재한다.

이 때문에 이 부회장 등이 상속세 자금 마련을 위해 보유한 계열사 주식 가운데 일부를 매각할 것이라는 관측이 그치질 않고 있다.

특히 이 부회장이 보유하고 있는 1조3000억원 상당의 삼성SDS 주식 711만6555주(지분율 9.2%)은 매각 1순위로 꼽히고 있다. 삼성SDS는 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SDS의 지배구조의 말단에 위치한데다 삼성전자가 22.58%, 삼성물산이 17.08%의 지분을 가지고 있어 이 부회장이 지분을 매각해도 지배력에 문제가 없다. 여기에 입법이 추진 중인 삼성생명법 때문에 이건희 회장이 물려준 삼성생명 주식 4151만9180주 가운데 일부 물량도 매각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이 부회장이 삼성SDS나 삼성생명 지분을 매각하려면 결국 국내외 증권사를 통한 블록딜 외에는 방법이 없다. 장중 매도하면 주가 급락으로 현금화에 차질이 빚어지기 때문이다. 앞서 이 부회장은 2016년 1월에도 삼성SDS 주식 158만7000주(2.05%)를 블록딜 방식으로 매각해 3800억원을 현금화한 바 있다.

반면 정의선 회장은 IPO를 통해 상속문제의 해결책을 마련할 것이라는 관측이 최근 힘을 받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순환출자구조가 핵심이다. 하지만 정 회장은 이 계열사 주식 가운데 기아차 706만1331주(1.74%), 현대차 559만8478주(2.62%), 현대모비스 30만3759주(0.32%)를 가지고 있는 것이 전부다.

앞서 2018년 현대차그룹은 정 회장이 최대주주(지분율 23.29%)인 현대글로비스 지분을 활용해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 핵심고리를 장악하는 방식의 지배구조개편을 추진했다. 

현대모비스를 핵심부품 사업과 모듈·AS부품 사업 부문으로 분사한 이후 모듈·AS 부품 부문을 현대글로비스에 합치는 방식이었는데 당시 합병비율을 놓고 엘리엇매니지먼트 등 투자자들의 반발에 부딪히며 무산됐다.

글로비스를 통한 합병안이 무산된 이후 최근 더욱 주목받고 있는 시나리오가 현대엔지니어링 IPO다. 실제로 현대엔지니어링은 코로나19 사태가 터지기 전까지 회사 내부에 IPO를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 회장은 현대엔지니어링 주식 89만327주(11.72%)를 보유하고 있다. 현대엔지니어링 주식은 최근 장외시장에서 주당 80만원을 훌쩍 넘어서고 있다. 정 회장 보유지분도 7400억원에 이른다. IPO가 실제로 이뤄지면 상장 후 지분가치가 더 뛰어오를 가능성도 적지 않다. 

정 회장은 지난해 3월 현대오토에버 상장을 통해 ‘IPO 모의고사’도 치렀다. 현대차그룹의 IT전산회사였던 현대오토에버는 정 부회장이 주식 201만주(9.57%)를 가지고 있다. 상장 당시 현대오토에버 공모가는 4만8000원이었는데 최근 주가는 6만원 중반을 유지하고 있다. 정 회장이 보유한 지분평가액도 단숨에 1300억원으로 불어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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