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층 복지 사각지대 ‘여전’···남자 80대 이상 인구 10만명당 138.5명 극단적 선택
고령자들 정서적 유대감 매년 축소···중장년층 독거 남성, 지원 어려워

/사진=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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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e=이기욱 기자]노인인구 증가, 생산가능인구 감소 등 급속한 인구 고령화는 이미 수년전부터 한국 사회의 가장 큰 고질병 중 하나로 존재해왔다. 한국은 지난 2000년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7%를 넘는 ‘고령화사회’에 진입한데 이어 불과 18년만에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14%를 넘는 고령사회에 들어섰다.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진행된 고령화는 자연스럽게 복지 사각지대를 만들어냈으며 빈곤과 고독의 고통을 이기지 못한 노인의 극단적 선택들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고령인구 가구 유형 중 1인 가구의 비중도 점차 늘어나고 있어 노인 자살 예방 활동의 중요성이 점차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80대 이상’ 인구 10만명당 69.8명 스스로 목숨 끊어···고령층 빈곤율 OECD 1위

중앙자살예방센터에 따르면 지난 2018년 기준 각 연령대 중 가장 높은 자살률을 기록한 세대는 ‘80대 이상’으로 나타났다. 80대 이상 세대의 자살률은 인구 10만명당 69.8명으로 전체 수치(26.6명) 보다 2배 이상 높은 것으로 집계됐다. 그 다음으로 높은 수치를 기록한 세대는 70대로 인구 10만명당 48.9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나타났다. 50대와 60대 역시 각각 33.4명, 32.9명으로 높은 수치를 기록하며 그 뒤를 이었다.

특히 남성 노인들의 자살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80대 이상 남성의 경우 무려 10만명당 138.5명이 극단적 선택을 했으며 70대와 60대 역시 83.2명, 53명으로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전체 남자 인구의 자살률은 인구 10만명당 38.5명 수준이다.

노인 자살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은 경제적 어려움이다. 지난해 한은하 연세대학교 교수 연구팀이 발표한 ‘노인 빈곤과 자살위험: 후향적 종단 코호트 연구’에 따르면 빈곤층 노인이 고소득자보다 극단적인 선택을 할 위험이 1.34배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 결과 지난 2003년부터 2013년까지 11년간 스스로 세상을 떠난 노인은 3836명으로 확인됐으며 2003년 기준 빈곤층이 가장 높은 자살률(인구 10만명 당 65.2명)을 기록했다. 중산층과 고소득층은 각각 60명, 44.7명으로 나타났다. 10년이 지난 2013년 역시 이러한 현상은 동일하게 나타났다. 빈곤층이 90.3명으로 가장 높은 자살률을 보였으며 중산층과 고소득층이 각각 83.3명, 70.3명을 기록했다.

현재 한국 사회의 노인 빈곤 문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가장 심각한 수준이다. 2017년 기준 한국 은퇴연령층(66세 이상)의 상대적 빈곤율은 43.4%로 OECD 가입국 중 가장 높은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고령층 10명 중 4명 이상이 전체 인구 중위소득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소득을 벌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최저 생계비 등을 제공하고는 있지만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은 노인들도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서울 시내에서 자살예방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공무원 A씨는 “자녀들이 부양 능력이 있는 어르신들의 경우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다”며 “하지만 간혹 부양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식들이 경제적 도움을 주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한국의 문화적인 특성상 자녀들과의 단절된 생활을 잘 얘기하지 못한다”며 “때문에 주변에서 경제적 어려움을 잘 알기 힘든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자료=중앙자살예방센터/그래프=김은실 디자이너
자료=중앙자살예방센터/그래프=김은실 디자이너

◇고령층 중 1인 가구 비율 1년새 0.3%포인트↑···남성 중장년층, 고위험군 ‘우려’

경제적 어려움뿐만 아니라 정서적 고립감도 노인 자살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자녀들의 독립, 배우자의 사망 등으로 1인 가구 형태로 살아가는 노인들이 늘어나면서 외로움과 우울감을 느끼는 이들도 증가하고 있다.

통계청이 지난달 발표한 ‘2020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해가 거듭될수록 65세 이상 고령자들의 사회적 관계망은 점차 축소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11년에는 고령자들이 ‘낙심하거나 우울해서 이야기 상대가 필요한 경우’ 평균 2.5명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응답했으나 2013년과 2015년, 2017년에는 2.3명으로 줄어들었다. 지난해에는 보다 줄어든 2.2명으로 나타났다. ‘몸이 아파 집안일을 부탁할 수 있는 인원’ 역시 2011년 2.3명에서 지난해 2.0명으로 줄어들었다.

고령인구의 가구 유형 중 1인 가구가 차지하는 비중 역시 점차 늘어나고 있다. 지난 2018년에는 고령인구의 19.5%가 1인 가구 형태로 살아가고 있었으나 지난해에는 19.8%로 늘어났다. 고령층 1인 가구 인원 자체도 144만5000명에서 153명3000명으로 증가했다.

특히 농·어촌 지역이 도시에 비해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다. 서울을 비롯한 6대 광역시와 세종시의 경우 고령자 1인 가구의 비율(일반 가구 대비)이 모두 10%를 넘지 않는 반면 강원, 전북, 전남, 경북 등 농·어촌 지역이 많은 곳은 10% 이상의 비율을 기록하고 있다. 이중 고령자 1인 가구의 비율이 가장 높은 지역은 전남(13.6%)으로 74만1000만 가구 중 10만1000가구가 고령자 1인 가구로 집계됐다.

또 다른 자살예방 업무 담당 공무원 B씨는 “특히 독거 노인들 중에 질병으로 몸이 불편하신 분들은 외부 출입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소통이 제한되고 그로 인해 우울증을 앓는 분들도 많다”며 “경제적으로 안정이 돼있다고 하더라도 정서적인 어려움 때문에 안 좋은 생각을 하시는 분들도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서울 지역의 경우 인력, 재정적인 측면에서 노인 분들을 관리가 그나마 잘 되고 있는 편”이라며 “고령층의 비중이 높고 담당 인력이 부족한 농어촌 지역의 경우 어르신들에 대한 경제적, 정서적 지원이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고령층 진입을 앞두고 있는 남성 중장년층의 자살 문제도 점차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고령층들을 위한 경제적, 정서적 지원 제도는 조금씩 마련되고 있는 반면 중장년 1인 가구를 위한 지원은 아직 부족한 상황이다.

B씨는 “전체 인구 대비 비율이 높은 편은 아니지만 중장년 남성 중에 혼자 거주를 하고 있는 경우가 다수 있다”며 “이들 중 상당 수는 실업자, 일용직 종사자들이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고 고시원, 쪽방 등 거주 환경도 열약한 편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가족이 있다고 하더라도 오랜 기간 단절된 삶을 살아온 분들이기 때문에 우울증으로 따지면 고령층 보다 더 고위험군으로 볼 수 있다”며 “삶에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기 때문에 자신이 자발적으로 지원 기관을 찾아오는 경우가 드물고 우연히 지원 기회가 닿게 돼도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면 자살예방상담전화 1393, 생명의 전화 1588 9191, 청소년 전화 1388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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