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개월 만에 재개되는 파기환송심, 양형이 핵심 쟁점
특검, 불법승계-적극적 뇌물 연관성으로 죄질 강조
재판부 “증거 안 받아” 결정에 의견서에 녹이는 ‘우회 전략’
오는 26일 9개월 만에 재개되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국정농단’ 뇌물공여 사건에 ‘불법승계’ 사건 공소사실이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박영수 특별검사(특검) 측은 양형이 파기환송심 핵심 쟁점인 상황에서 불법승계 사건 수사로 드러난 범행 동기와 수법, 과정 등 죄질의 비난 가능성을 강조할 필요성이 있다는 입장이다. 재판부는 불법승계 관련 증거를 추가로 받지 않겠다는 입장인데, 특검 측이 어떤 전략을 취할지 관심이 쏠린다.
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형사1부(재판장 정준영 부장판사)는 오는 26일 이 부회장 등 삼성 관계자들의 뇌물 공여 등 사건 파기환송심 공판준비기일을 연다. 특검은 지난 2월 24일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일관성을 잃은 채 편향적으로 재판을 진행하고 있다”며 재판부 기피 신청을 냈다. 이에 따라 올해 1월 17일 공판을 끝으로 이 사건 재판은 지금까지 9개월 가까이 열리지 않았다.
이날 공판준비기일은 향후 양형 심리 방법을 논의하는 자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파기환송심은 유무죄 심리와 양형 심리로 나눠 재판을 진행해왔는데, 유무죄 심리는 지난 공판에서 대부분 마무리 됐다. 대법원이 사실관계를 모두 정리했을 뿐 만 아니라, 이 부회장 측도 양형 부분만 다투고 있다.
대법원은 삼성 측이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건넨 지원금 16억원, 최순실(최서원으로 개명)씨의 딸 정유라씨에게 지원한 말 3마리(34억원)을 모두 뇌물로 인정해 이 부회장의 총 뇌물공여액수는 86억원이다. 해당 자금의 출처가 회삿돈이었다는 점에서 그의 횡령액도 마찬가지로 86억원으로 정해졌다.
특검은 이 부회장의 양형에 불법승계 사건 기소 내용을 반영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불법 승계 사건으로 나타난 범행의 동기나 수법, 범행과정이 비난가능성이 크고, 허위진술이 드러나 양형에 참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검 측은 이 부회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을 독대할 당시 그룹 승계가 종결되지 않았고, 그 과정에서 불법행위가 있었다는 내용이 불법승계 사건으로 재차 확인됐다는 입장이다. 또 ‘적극적 증여’와 ‘청탁의 내용이 부정하거나 불법한 업무집행과 관련이 있는 경우’ 뇌물 범죄 양형기준상 가중요소로 참작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특검 측은 1차 공판 과정부터 이 같은 주장을 펼쳐왔으며, 재판부 기피사건 재항고를 심리한 대법원에서 불법승계사건 공소장을 제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특검 측 주장이 받아들여질지는 불분명하다.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불법승계 수사 자료를 추가 증거로 받지 않겠다고 못 박았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지난 1월 공판에서 “승계작업의 일환인 구체적 현안을 각각 따지는 재판이 아니므로 다른 사건의 판결문을 참조할 수는 있지만 그 재판의 증거까지 채택해 심리할 필요는 없다”고 밝혔다.
이에 특검 측은 의견서에 불법승계 공소사실을 녹여 제출하는 방식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재판부 기피 신청을 통해 주장했던 재판부의 불공정한 재판 진행 방식도 재차 따진다는 계획이다.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양형심리 과정에서 삼성이 도입한 준법감시제도를 “양형 기준의 핵심적 내용”이라고 언급해 특검 측의 강한 반발을 샀다. 특검 측은 재판부가 이 부회장의 양형 ‘가중’ 사유는 배제한 채 재발방지 약속 같은 지엽적인 ‘감경’ 부분에 집중한다고 지적한다.
특검 관계자는 “형법의 취지는 범죄와 형벌을 논하는 것이다. 범죄는 과거의 문제이고 과거 문제에 대한 형벌을 논하는 게 기본이다”며 “사법적 회복이라든지 앞으로 피고인이 유사한 상황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해 참작하는 것은 부수에 부수적인 부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 측은 국정농단은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씨가 시작하고, 기업들은 수동적으로 움직였다며 이 부회장은 '수동적으로’ 대통령 지시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또 롯데와 SK그룹 등의 케이스포츠재단 지원경위를 보면 다른 기업과 비교해 삼성의 가벌성(어떤 행위를 처벌할 수 있는 정도)을 더 낮게 볼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아울러 대통령과의 2차 면담에서 삼성만 매우 강한 질책을 받았으며, 이에 이 부회장은 강한 압박을 느꼈고 더 수동적인 입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부회장은 지난 2017년 2월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 등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기소돼 4년가까이 재판을 받고 있다. 1심에서 징역 5년을, 2심에서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대법원은 2심이 무죄로 판단한 뇌물액 50억여원을 유죄로 판단하고,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인정된 뇌물액이 총 86억원이 되면서 재수감 가능성이 커졌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액이 50억원 이상이면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형’을 선고해야 한다. 집행유예는 3년 이하의 징역형일 때에만 가능하다.
삼성 측은 이 부회장의 재산국외도피 관련 혐의에 무죄가 확정됐고 이 부회장의 뇌물공여가 수동적이었다고 주장하며 집행유예가 가능한 징역 3년 이하의 형 선고를 기대하는 분위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