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조사관이 직접 사건본인, 관계인 등 조사
통상 수개월 소요…마무리 전까지 심문기일 안 열려
조현범 사장, 지난달 29일 의견조회 회보서 제출
한국테크놀로지(옛 한국타이어 지주사)그룹 조양래 회장의 성년후견 사건을 맡은 법원이 5일 가사조사를 명령했다. 청구인과 사건본인, 관계인 등이 서면으로 의견을 제출하더라도 법원 관계자가 직접 사건본인의 건강 상태와 관계인 등의 의견을 확인해 판사에게 보고하라는 지시다.
장녀 조희경씨가 청구한 조 회장의 ‘한정후견 개시 심판청구’ 사건을 심리하는 서울가정법원 가사20단독 표현지 판사는 이날 법원 조사관에게 가사조사를 지시했다.
가사조사는 가사재판 특유의 절차다. 재판장이 가정법원에 소속된 조사관에게 해당 사안에 대한 조사를 명령하면 조사관이 필요한 사항을 조사해 재판장에게 보고한다.
모든 성년후견 사건에서 가사조사를 필수적으로 진행하는 것은 아니다. 재판장이 성년후견인 또는 후견을 받는 사람의 환경에 의문이 들거나, 후견을 받는 사람을 둘러싸고 재산관계에 다툼이 있는 경우에 가사조사를 실시하고, 성년후견의 필요성과 후견인의 적합성에 대해 파악하기도 한다.
이번 성년후견 개시 청구는 한국타이어 경영권분쟁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고, 사건본인(조 회장)과 청구인 및 관계인들의 입장이 다양한 만큼 재판장이 가사조사를 명령한 것으로 분석된다.
앞으로 가정법원은 전문조사관이나 일반직 조사관(법원공무원 중 조사 사무를 맡은 자)을 배당하는 절차를 진행한다. 통상 한 사건당 한 명의 조사관이 지정된다. 가정법원 조사관들은 심리학이나 상담학, 청소년 및 가정학 등을 전공한 전문가들이다.
가사조사가 시작되면 전문조사관 등은 직접 청구인, 사건본인, 관계인 등에게 성년후견에 대한 의견을 듣게 된다. 사건본인의 건강 상태 또한 파악해 보고서를 작성한다. 청구서나 의견서를 통해 각 당사자들의 의견이 제출되지만, 실제 대면이나 조회를 통해 정보를 수집하는 절차가 병행되는 것이다.
법원이 기일을 지정해 가정법원 조사실로 사건 관계자들을 부르거나, 직접 방문하는 식으로 조사가 진행된다. 해외체류 등 불가피할 경우 유선이나 서면조사도 가능하다. 당사자 조사가 원칙이며, 법률대리인은 조사에 참여할 수 있다.
가사조사는 통상 4~5개월이 소요되며, 5개월 이상 걸리는 사건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반적으로 가사조사 동안 심문기일은 열리지 않는다. 법원 관계자는 “이번 사건은 심문기일 없이 가사조사를 명령한 사안으로, 통상 가사조사 기간에는 심문기일이 열리지 않는다”며 “가사조사에 필요한 시간 등을 고려하면 올해 안에 심문기일이 열릴 것 같지 않다”고 설명했다.
한편, 조 회장이 보유하던 한국타이어 지분을 모두 매입해 최대주주가 된 차남 조현범 사장은 지난달 29일 의견서를 제출했다. 조 사장의 입장은 확인되지 않지만, 누나인 희경씨의 청구를 기각해 달라는 취지일 것으로 분석된다.
장남 조현식 부회장은 심판절차 진행에 찬성하는 의견을 낼 것으로 유력시 된다. 그는 언론에 공개적으로 “성년후견 심판절차에 가족의 일원으로서 참여할 예정이다”고 밝힌 바 있다. 차녀 희원씨도 찬성의견을 낼 것으로 업계는 전망한다. 조현식 부회장과 누나 희원씨는 두터운 관계를 유지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의견서 제출 시한인 이날 오후까지 별도의 의견서를 법원에 제출하지 않았다. 이 경우 아버지의 지지를 받는 차남과 나머지 3남매의 1:3 구도가 된다.
조양래 회장은 최근 김앤장 법률사무소 가사상속·자산관리팀의 김용상 변호사와 권태형 변호사 등 3명을 이 사건 소송대리인으로 선임했다. 자신에게 청구된 성년후견 심판이 가족 간 경영권 분쟁 소송으로 이어질 것을 대비한 게 아니냐는 업계 해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