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시 탄력 대응 vs 재정건전성 저해

안일환 기재부 제2차관이 지난 23일 정부 서울청사에서 열린 긴급 재정관리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안일환 기재부 제2차관이 지난 23일 정부 서울청사에서 열린 긴급 재정관리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기획재정부가 이달 안에 발표할 예정인 재정준칙의 유연성을 놓고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한쪽에서는 유연한 재정준칙이 위기 시 정부가 적극적으로 재정 정책을 펼 수 있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한쪽에서는 재정건전성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정부는 예산 편성 때 일정한 수준의 재정건전성을 지키도록 하는 재정준칙을 마련해 이달 말쯤 발표할 예정이다. 정부는 코로나19 팬데믹과 같은 위기 상황에 대비해 경기침체 우려 상황에서는 적용에 예외를 두는 등 유연성을 강조하겠다는 방침이다.

지난 21일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재정준칙을 9월 말까지 발표하려 한다”며 “코로나 위기 같을 때 경직적 준칙으로 재정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오히려 그런 준칙이 제약이 된다. 긴급한 재난이나 위기 시에는 재정 준칙이 탄력성 있게 운용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재정준칙은 국가채무, 재정적자 등 재정 건전성 지표에 기준치를 정해 관리하도록 하는 규범이다. 정부는 중장기적으로 총지출 증가율을 명목 성장률 수준으로 관리하는 것을 목표로 수입, 지출, 재정수지, 국가채무 등 4가지 분야의 재정준칙을 만들 계획이다.

지난 2007년부터 시행된 국가재정법을 손질해 재정 준칙의 근거를 마련할 계획이다. 국가 채무 비율 등 구체적인 지표는 시행령에 담는 방안이 유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가 유연한 재정준칙을 마련하겠다고 밝히면서 유동성이 독이 될 수도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국가 채무 비율 등의 지표를 시행령으로 담게 되면 법령이 아니기 때문에 행정부 안에서 다시 수정을 할 수도 있다.

법령의 경우 개정 시 반드시 국회를 통과해야 하는 반면 시행령은 수정 시 소관 부처가 일정 기간 입법 예고한 뒤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발표하면 된다. 법령보다 훨씬 손쉽게 수정이 가능한 것이다.

일부 경제 전문가들과 야당에서는 주요 재정준칙을 상대적으로 유연한 시행령에 담게 되면 이 목표치를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보다는 목표치 자체를 쉬이 수정할 수 있어 부작용을 낳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쉽게 말해 입맛대로 고치기가 쉽다는 단점이 있다.

반면 재정준칙을 유연하게 수립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입장에서는 정부의 재정건전성뿐만 아니라 민간의 재정건전성도 함께 살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윤석천 경제평론가는 “재정준칙을 만들어서 재정을 관리하는 것은 필요하겠지만 유연성은 필요하다”며 “우리나라의 경우 경영 수지 흑자도 나고 있고 원화가 흔들릴 개연성이 과거에 비해 상당히 줄었기 때문에 더욱 더 유연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재정을 엄격하게 관리할수록 전체 성장률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민간의 부채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며 “정부와 기업, 가계가 경제를 움직이는 3개의 축인데 한쪽에서 숫자가 줄어들면 정부가 지출을 늘려서 메꿔줘야 성장률이 유지가 되는데 정부가 재정준칙을 엄격하게 적용해서 억제한다면 가계나 기업에서 빚을 낼 수밖에 없게 된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저금리 등으로 빚 내기 좋은 환경이 되면 민간에서 많은 부채를 안게 되는데 향후 이 부채를 다 갚지 못하면 금융리스크로 번지게 된다. 결국은 정부가 다시 부채를 늘려서 금융기관을 살려야 하는 악순환을 겪을 수 있다는 얘기다. 반대로 정부가 재정을 미리 풀어서 경기 진작을 한다면 금융리스크까지 번질 가능성이 적어진다는 뜻이다.

윤 평론가는 한국에 이미 민간부채가 많기 때문에 정부부채 건전성만 놓고 건전하다고 평가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 기업, 가계가 상호 균형을 이루려면 재정준칙도 탄력적으로 운영돼야 한다는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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