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팔아도 세금 차이 없어 다주택자 느긋
정부의 잇따른 부동산 규제에도 불구하고 서울 강남권 고가 아파트 시장 가격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고 있다. 강남·서초·송파구 내에서도 특히 고가 단지로 손꼽히는 곳에서는 최근 신고가가 나오는 등 뚜렷한 대책 효과를 찾아볼 수 없는 상황이다.
◆강남권 대장주 신고가 기록···표면적으론 대책 효과 없어
18일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서초구 반포동 아크로리버파크 129㎡는 최근 3개월 간 6·17 대책, 7·10 대책, 8·4 대책이 연달아 발표된 직후인 지난달 13일 48억5000만 원에 실거래되며 역대 최고가를 기록했다. 비슷한 시기인 지난달 14일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7차 245㎡는 65억 원 최고가에 거래됐다. 이는 종전 최고가 52억5000만 원보다 무려 12억5000만 원이 오른 값이다.
송파구 잠실동 잠실주공5단지 전용면적 82㎡는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이며 거래가 뜸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지난달 26일 24억6100만 원에 손바뀜이 성사됐다. 지난해 12월 이후 8개월 만의 신고가다. 이밖에 잠실동 트리지움, 대치동 은마아파트 등에서도 올 들어 최고가 기록을 세우고 있다. 이처럼 시장에서는 정부가 내놓을 수 있는 대책 가운데 가장 고강도로 평가받는 세부담이 강화됐음에도 불구하고 신고가가 연달아 나오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이를 정부의 규제 효과가 뚜렷하게 나타나기엔 이른 시점이기 때문으로 파악한다. 6월 1일 기준으로 재산세와 종부세가 부과되기 때문에 절세용 급매물이 나올 때가 아니라는 분석이다. 개포동 A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매물이 소강상태를 보이고 있어 박스권 안에서 가격이 보합을 이루거나 시세보다 높은 값에 거래되지 급매물 출현은 없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지금 팔아도 납부해야 하는 세금에는 차이가 없기 때문에 집주인들 입장에선 내년 상반기까지는 두고 보자는 생각으로 마음을 급하게 먹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 고가 아파트는 재산세와 종부세 부과 기준인 6월에 앞서 올 상반기에도 절세용 급매물이 소화되면서 반짝 소강상태로 돌아선 바 있다.
급매로 내놓는 대신 증여를 택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의 증여 건수는 3362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6월(1473건)에 견주어보면 2.3배 증가한 수준이다. 7·10 대책에서 내놓은 세금 중과를 피하려는 다주택자들이 많았던 영향으로 풀이된다. 7·10 대책은 다주택자의 종합부동산세 최고 세율을 3.2%에서 6.0%로 대폭 인상하고 양도세율도 대폭 올렸다.
◆“강남서 신고가 나온다고 ‘집값 오른다’ 해석 금물···단, 내년도 집값 큰 조정 없을 것”
업계에서는 시세가 지금과 같은 수준을 이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는 서울 아파트값이 급등기를 지나 안정기로 접어들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지만, 집주인들은 여전히 매매가격을 낮추려 하지 않고 매수인은 오른 값엔 못 사겠다면서 양측 간 간극이 크다는 것이다. 압구정동 한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매수 문의는 꾸준하지만 지금 시세로 매입하기는 꺼리는 분위기이다. 가격이 너무 올랐다고 생각하는데, 그렇다고 집주인들이 가격을 내리는 분위기도 아니다”라고 전했다.
그렇다고 정부의 대책이 무용지물이란 해석은 과도하다는 분석도 있다. 분명 대책의 효과가 일부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특정 고가단지의 신고가 1~2건으로 시장을 과잉해석할 우려가 있다. 분명 올 상반기보다 거래총량은 물론 신고가 거래건수가 줄고 있고, 특히 신고가가 나오는 지역도 중저가 아파트가 몰린 강서·노원구가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내년 들어서도 가격이 떨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함 랩장은 “내년 상반기에 절세 목적의 급매물이 일부 나올 것이나 시세가 조정을 받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즉, 매물 출현=가격하락이라고 보긴 힘들다. 저금리에 유동자금이 워낙 풍부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역시 같은 입장을 내놓았다. 이 연구위원은 “매물이 나와도 제대로 팔리지 않으면 가격이 떨어지겠지만, 매물나오는대로 시장에서 받아주면 하락이든 폭락이든 벌어질 수가 없다. 매물을 받아주는 수요도 충분할 것으로 예상한다. 또, 전체 인구중의 비율이 아니라 절대적인 숫자로는 보유세를 중과해도 버틸 수 있는 여력을 가진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가격 하락은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