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단순 도박 혐의로 약식기소···법원이 정식재판에 회부
‘상습성’ 여부가 쟁점, 징역형가능···공소장 변경 가능성에 변호인 반발
“단순 도박인데 조서와 증거가 왜 이렇게 많은가요?
양현석 YG엔터테인먼트 전 대표의 도박 사건을 맡은 판사가 그를 ‘단순 도박’ 혐의로 기소한 검찰의 공소사실에 의문을 표했다. 상습도박으로 볼 수 있는게 아니냐는 취지다. 공판 검사는 “그렇게 알고 있다” “알아보겠다”고 답하는 등 사건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채 공판에 출석한 듯한 모습을 보여 판사의 눈총을 받았다.
서울서부지법 형사9단독 박수현 판사는 9일 오후 양 전 대표의 첫 공판기일을 열었다.
이날 공판검사로 출석한 황아무개 검사는 “피고인이 해외에서 바카라, 블랙잭 등 도박을 하는 등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총 24회 4억원 상당의 도박을 했다”고 공소사실을 밝혔다. 변호인도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한다”고 말했다.
증거조사를 마친 판사는 이례적인 질문을 던졌다. 1m 남짓 쌓여있는 증거서류를 보며 검사에게 “단순 도박 사건인데 조서가 왜 이렇게 많은가요. 제출된 증거가 단순 도박과 관련된 증거가 맞는가요”라고 물은 것이다.
박 판사는 또 “적용 법조와 관련해 상습도박으로 인지를 해서 수사를 진행한 것으로 보인다. 단순 도박으로 기소한 것과 관련해 특별한 검토 의견이 있었나요”라고 질문했다.
질문의 취지는 양 전 대표의 범죄를 상습도박으로 볼 수 있는 게 아니냐는 것이었다. 검찰이 단순 도박 혐의를 적용해 약식기소한 이 사건을 정식 재판에 회부한 것도 박 판사였다.
형법은 상습으로 도박죄를 범한 경우 책임을 가중한다. 형법 제246조는 도박을 한 사람에 대해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면서, 상습으로 이 죄를 범한 사람에 대해서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단순 도박의 경우 법정형이 ‘벌금형’만 존재하지만, 상습성이 인정될 경우 ‘징역형’이 선고될 수도 있다.
박 판사의 질문에 황 검사는 제대로 된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황 검사는 “수사 검사가 판례와 법리를 검토한 결과 상습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수사 보고서를 올린 것으로 안다”고 말하며, 해당 수사 보고서를 직접 보지 않았다는 것으로 들릴 수 있는 답변을 했다.
박 판사는 재차 “증거에 (상습성 관련) 첨부한 판례가 있다. (피고인의 사건과) 첨부한 판결에 차이가 있는가”라고 물었다. 판례를 보면 양 전 대표의 상습성이 인정될 수 있다는 취지의 질문이었다. 황 검사는 “그 부분을 검토해 보겠다”고 말했다.
“의견서를 제출하겠다는 취지인가”라는 박 판사의 물음에는 가부(可否)가 아닌 “네. 알겠습니다”라고 황 검사는 답했다.
공소장 변경 가능성 생기자 변호인 ‘반발’···“상습도박은 불기소 처분받아”
판사가 상습성과 관련해 공소장 변경 가능성과 속행 공판을 예고하자 변호인은 반발했다. 검찰에서 이미 상습성과 관련해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고 주장한 것이다.
변호인은 “단순 도박은 벌금형만 있고, 상습도박은 징역형까지 가능한데 단순 도박으로 검찰이 기소한 상황에서 공소장 변경이 가능한지 의문이다”며 “상습성 관련해서는 이미 검찰에서 처분을 받았다. 속행 공판 없이 선고기일을 잡아달라”고 말했다.
박 판사가 “상습도박이 아니라는 별도의 서문을 받았다는 것인가”라고 묻자 변호인은 “네”라고 답했다.
고개를 갸웃한 박 판사는 검사에게 “기소를 할 때 상습도박을 불기소 처분하고, 다시 일반도박으로 재입건해 기소하는 게 일반적인가”라고 물었다. 하지만 황 검사는 답변을 못했다.
박 판사는 “검찰 측 의견서를 보고 (공소장 변경 등을) 결정하겠다. 법원 판단이 검찰에 기소에 구속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이 정도 수사와 증거기록 있는 상태에서 이렇게(단순 도박) 기소된 부분에 대해서 재판부는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고 했다.
그러나 변호인은 “수사기록이 많은 것은 도박 자금 출처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금융계좌를 추적해 금융 관련 증거가 많은 것이다”며 “외국환관리법 위반 등 다른 증거가 나오지 않아 혐의 없음 처분이 내려졌다”고 물러서지 않았다.
박 판사가 검찰 측 의견을 묻자 황 검사는 “일단 불기소 처분이 별도로 있었는지, 공소장 변경을 할 것인지 의견을 제출하겠다”며 “재판 재개 여부는 재판장이 판단해 달라”고 말했다.
그러자 박 판사는 “제출된 증거를 제가 다 확인한 상태가 아니어서 한 차례 기일을 더 열고 결심을 하겠다”며 재판을 정리했다.
이날 황 검사의 재판 태도에 대해 서울서부지검 관계자는 “(제가) 직접 경험한 사실이 아니어서 답변드릴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상습도박 혐의에 별도의 혐의없음 처분을 내렸는지에 여부에 대해서는 “적용 혐의를 변경하는 것이라면 별도의 처분서를 쓰지 않을 수도 있고, 쓸 수도 있다. 일반론이다”라면서 “피의자의 해당사건 처분 여부에 대해서는 공보 관련 별도의 절차가 필요해 즉답을 드리긴 어렵다”라고 설명했다. 공소장 변경 가능 여부에 대해서는 “판례를 확인해 보겠다”라고 했다.
양 전 대표는 2015년 7월부터 2019년 1월까지 총 7회 출국해 미국 라스베이거스 카지노에서 다른 일행과 함께 총 33만5460달러(약 3억8800만원) 상당의 도박을 한 혐의를 받는다.
애당초 이 사건은 상습도박 혐의로 수사가 시작됐으나 검찰은 양 전 대표에게 단순 도박 혐의를 적용해 약식기소했다. 그러나 법원이 정식재판에 회부하며 새 국면을 맞게됐다. 법원 관계자는 “담당 재판부가 서면으로만 판단하기엔 사안이 신중한 판단을 필요로 한다는 취지로 정식재판에 회부했다”라고 설명했다.
상습성 판단에는 도박 전과나 도박횟수 등이 중요한 판단자료로 고려된다. 그러나 도박전과가 없더라도 도박의 성질과 방법, 규모, 피고인이 도박에 가담하게 된 태양 등을 참작해 도박의 습벽이 인정되는 경우에는 상습성을 인정해도 무방하다는 대법원 판례가 있다. 이에 대한 판단은 법관의 자유로운 판단(자유심증주의)에 일임한다.
양 전 대표의 다음 공판기일은 오는 10월 28일 오후 2시에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