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2O 펀드 문제 발생에 국내 재간접 펀드 환매 연기
사모펀드뿐만 아니라 공모펀드도 리스크 노출
해외 펀드 부실 징후 알기 쉽지 않아 불안 가중

국내 자산운용사가 글로벌 펀드에 재간접으로 투자한 펀드들이 연이어 문제를 일으키고 있어 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해외 유수 운용사의 펀드를 투자자에게 소개한다는 취지로 많은 상품들을 내놨지만 환매 중단 사태를 피하지 못한 것이다. 더구나 국내 운용사가 이를 사전에 인지할 수 있는 역량과 관리 능력이 부족해 언제든 뇌관이 터질 수 있고, 규제와 관리 수준이 높은 공모펀드도 이 같은 위험에 노출 돼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 이름값 믿었는데···연이어 터진 재간접 펀드 환매 중지 사태

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키움투자자산운용은 전날 사모 재간접 공모펀드인 ‘키움 글로벌얼터너티브증권투자신탁[혼합-재간접형]’의 환매를 연기한다고 판매사들에 공지했다. 이 펀드는 해외에서 유명한 대체자산 펀드를 재간접으로 투자하는 펀드로 현재 해당 펀드 순자산(AUM)은 3600억원 규모다. 이 펀드는 김익래 다우키움그룹 회장 차녀인 김진이 키움투자자산운용 팀장이 책임운용역으로 2018년 10월 출시 당시 운용사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홍보에 나서며 공들인 펀드이기도 하다.

이번 환매 연기 결정 배경에는 이 펀드가 재간접으로 투자한 글로벌 채권 전문운용사 H2O자산운용의 펀드와 연결돼 있다. 키움투자자산운용에 따르면 H2O의 프랑스 등록펀드인 H2O멀티본드와 H2O알레그로에서 보유한 비유동성 사모채권 매각이 지연됐고 프랑스 금융당국의 권고에 따라 지난달 28일부터 4주간 펀드의 신규 설정 및 환매가 연기됐다. 이에 따라 이 펀드를 담고 있는 키움글로벌얼터너티브 펀드도 환매가 연기된 것이다.  

H2O 펀드에 재간접으로 투자한 국내 다른 펀드도 환매 연기를 결정한 상태다. H2O멀티본드를 담은 브이아이자산운용(구 하이자산운용)의 재간접 사모펀드 ‘브이아이H2O멀티본드’ 역시 환매가 중단됐다. 브이아이H2O멀티본드의 운용 규모는 약 1000억원이다.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도 H2O자산운용 펀드를 재간접 형태로 담았지만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은 문제가 된 펀드를 담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해외 운용사 펀드의 부실 문제로 환매가 중단된 사태는 이뿐만이 아니다. 사모 재간접 펀드인 ‘교보증권 로열클래스 글로벌M 전문 사모투자신탁’은 최근 환매가 어렵다고 안내했다. 지난 3월 처음 환매를 중지하면서 환매 일정을 9월로 연기했지만 결국 이달에도 환매에 나서지 못했다. 

이 펀드는 미국 소상공인 매출 채권에 투자하는 탠덤크레딧퍼실리티펀드(Tandem Credit Facility Fund)에 재간접으로 투자하는 펀드다. 해당 매출 채권 발행사는 WBL로 소상공인 단기 대출 전문 미국 금융회사다. 교보증권 사모펀드운용부가 이를 재간접으로 투자하는 상품을 만들었고 교보증권과 신한은행, 신한금융투자 등을 통해 판매됐다. 현재 환매 중지 규모는 105억원 수준이다.

◇ 공모도 안전지대 아니냐···재간접 펀드 관리 쉽지 않아 ‘뇌관’ 우려

문제는 이 같은 사례가 또다시 나올 수 있다는 점이다. 해외 투자에 대한 수요에 따라 국내 자산운용사들이 해외 자산운용사들의 펀드에 재간접으로 투자하는 상품들을 다수 만들어온 까닭이다. 주식이나 채권뿐만 아니라 부동산이나 리츠(REITs·부동산투자회사) 등 다양한 유형의 재간접 펀드들이 시장에 유통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환매 중지 사태가 집중됐던 사모펀드가 아니라 키움투자자산운용의 펀드처럼 공모펀드에서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도 우려를 키우는 요인이다. 공모펀드는 사모펀드 대비 상대적으로 투명하고 금융당국의 엄격한 규제와 관리를 받는다는 특징에 그동안 환매 중지 사태에는 빗겨나 있었다. 그러나 재간접 공모펀드에서 문제가 발생하면서 공모펀드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이에 운용사뿐만 아니라 펀드 판매사들도 비상이 걸렸다. 판매사들이 펀드 판매에 따른 책임을 일부 인정하면서 보상하는 선례가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환매가 중지된 라임자산운용 TF-1호(무역금융펀드)의 경우 판매사들이 100% 보상안을 받아들였고 옵티머스자산운용의 부실 펀드를 판매했던 NH투자증권과 한국투자증권은 원금의 70%를 선지급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만일 재간접 공모펀드에서도 환매 중지 사태가 연이어 발생한다면 판매사들이 느끼는 부담은 커질 수 밖에 없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모든 재간접 투자 상품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해외 재간접 상품의 경우 부실 징후를 살펴보기가 쉽지 않다는 점에서 속수무책으로 피해보기가 쉽다. 언제 뇌관이 터질 지 모르는 상황에 처한 셈이다”며 “그렇지 않아도 사모펀드 환매 중지 사태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업계에서는 또다시 긴장 상황에 놓이게 됐다”라고 밝혔다. 

국내 자산운용사가 글로벌 펀드에 재간접으로 투자한 펀드들이 연이어 문제를 일으키고 있어 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 사진=키움투자자산운용의 환매중단 운용공시 캡처.
국내 자산운용사가 글로벌 펀드에 재간접으로 투자한 펀드들이 연이어 문제를 일으키고 있어 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 사진=키움투자자산운용의 환매중단 운용공시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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