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은 불법 승계 작업 결론
국민연금 의결 관련 ‘정부개입’ 인정 시 최대 9000억 배상
검찰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기소하면서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한국 정부와 진행 중인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 소송에 영향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박근혜 정부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과정에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검찰 수사결과는 해당 합병으로 삼성물산 지분을 갖고 있던 자신들이 손해를 입었다는 엘리엇 측의 논리와 같다. 엘리엇 측의 수사자료 요청이 ISD 중재판정부에서 인용될 경우 검찰 수사 결과가 우리 정부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일 법조계에 따르면, 엘리엇은 ISD의 중재판정부를 통해 우리 정부에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관련 자료를 잇달아 요청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국민연금공단을 통해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에 부당하게 개입해 삼성물산 지분 약 7%를 보유했던 자신들이 손해를 입었다는 주장의 근거를 확보하기 위해서다. 엘리엇은 이 같은 주장을 펼치며 지난 2018년 7월 7억7000만달러(당시 환율 기준 약 8700억원) 규모의 ISD를 제기했다.
실제 ISD 중재판정부는 지난 1월 절차명령을 통해 법무부에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홍완선 전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장의 특검 수사기록과 법원 1·2심 공판기록 등을 제출해달라고 명령했다.
엘리엇은 또 지난 6월 한국 법무부에 ‘한국 검찰이 이 부회장의 주가조작 등 혐의 수사과정에서 보유하게 된 비공개 문서 7건을 제출하라’고 요청했다.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서, 삼성미래전략실이 만든 ‘M사 합병추진안’과 ‘삼성 바이오로직스 상장계획 공표방안’, 삼성바이오에피스 최고재무책임자(CFO)의 검찰 진술서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6월 엘리엇 측의 요청은 ‘수사 자료를 제출하는 것이 피의사실공표가 될 수 있다’는 법무부의 주장이 인용돼 기각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전날 검찰이 이 부회장을 재판에 넘기면서 ‘피의사실공표 우려’라는 기각 사유가 해소됐다. 조만간 엘리엇 측은 관련 자료 제출 요청을 다시 신청할 것으로 보인다.
엘리엇 ISD의 핵심은 합병과정에서의 우리 정부의 불법적인 개입 여부다. 문형표 전 장관의 재판에서는 정부개입이 인정됐다. 서울고법 형사10부(재판장 이재영 부장판사)는 지난 2018년 11월에 문 전 장관이 박 전 대통령의 지시로 부당하게 압력을 가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찬성하도록 함으로써 “이 부회장에게 이익을 취하게 했다”고 지적하면서 징역 2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문 전 장관 사건 1·2심 재판부 모두 “삼성 합병은 경영권 승계작업의 일환”이라고 일관되게 판시한 것이다. 현재 이 사건은 대법원에 계류돼 있다.
이 부회장의 국정농단 재판에서도 승계작업과 청탁 여부가 쟁점이 됐는데, 지난해 대법원은 묵시적 청탁을 인정해 엘리엇에 유리해졌다.
불법승계 의혹과 관련한 검찰 기소의 근거 역시 합병이 처음부터 승계를 목적으로 한 불법이라고 본 점 등에서 엘리엇의 논리와 상통한다. 검찰은 이 부회장의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행위 및 시세조종 범죄 혐의에 “국민연금 의결권 확보를 위한 불법 로비”라는 표현을 적시했다. 구체적으로 검찰은 “최순실(최서원으로 개명)의 딸 정유라에 대한 승마지원 등 박근혜 대통령의 사적 요구사항에 대한 이행의사 적시 전달 통해 대통령의 부당한 개입 유도”라고 이 부회장의 혐의를 설명했다.
한 통상 전문 변호사는 “직권남용 및 업무상 배임 혐의로 기소된 관계자들이 이미 유죄 판결을 받아 국가의 고의 의무 해태가 인정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며 “불법적인 승계 작업과 정부개입을 전제로 이뤄진 이번 검찰의 기소는 ISD에서 엘리엇의 입지를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