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걸 산은 회장, 정몽규 현산 회장에 인수대금 1조원가량 인하 제시한 것으로 알려져
현산이 제안 수락 여부 상관없이 이 회장 이점···구조조정 해결사 명성 혹은 거래 무산 책임 현산 측으로
정 회장 입장 난감, 2000% 넘는 부채비율에 코로나 장기화 부담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사진 왼쪽)과 정몽규 HDC현대산업개발 회장이 다음주 아시아나항공 인수 관련 논의를 위해 만날 예정이다. / 사진=김은실 디자이너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사진 왼쪽)이 아시아나 매각과 관련해 초강수 카드를 꺼내자 정몽규 HDC현대산업개발 회장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 사진=김은실 디자이너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아시아나항공 매각을 담판 짓기 위해 배수의 진을 쳤다. 이동걸 산은 회장은 정몽규 HDC 현대산업개발 회장에게 인수대금 1조원가량을 낮춰 주겠다는 파격적인 제안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동걸 산은 회장의 초강수 카드가 오히려 정몽규 현산 회장에게는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산은의 제안에도 불구하고 인수를 파기할 경우 되돌아올 위험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산은 입장에선 계약 무산에 따른 책임을 현산에 떠넘길 수도 있다. 산은은 아시아나 매각을 위해 진정성을 보였고, 특혜 시비까지 감수하며 거래를 종결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명분을 쌓을 수도 있다. 이를 통해 거래 무산에 따른 계약금 반환 소송 등 법정공방에서도 우위를 점할 수 있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전날 이동걸 산은 회장과 정몽규 현산 회장은 서울 모처에서 1시간가량 만나 아시아나 인수 문제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산은은 자료를 통해 “아시아나 인수·합병의 원만한 종결을 위해 현산 측과 인수 조건에 대한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논의했다”면서 “현산 측의 답변을 기다릴 것이며 이후 일정은 답변 내용에 따라 금호산업 등 매각 주체와 협의해 진행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업계에선 산은이 현산에 1조5000억원을 추가 지원하고 아시아나 유상증자에 참여해 현산의 부담을 낮추는 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채권단이 영구채 8000억원을 주식으로 전환하지 않는 방안도 제안한 것으로 전해진다. 아시아나 인수 후 발생할 수 있는 채권단의 간섭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차원이다.

이 회장이 파격적인 제안을 한 것은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이 회장 임기는 내달 10일까지지만 아직까지도 그럴싸한 후보자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아시아나 구조조정에 대한 부담감이 후보자들에게는 큰 벽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번 조건을 현산이 받든지 말든지 이 회장 입장에선 이점이 있다.

정 회장이 제안을 받아들일 경우 아시아나 매각을 성사시키며, ‘구조조정 해결사’로 불리던 명성을 한층 더 드높일 수 있다. 또한 임기를 마치고 신임 산은 회장을 찾는 것도 수월해진다.

반대로 정 회장이 제안을 거절해 아시아나 매각이 불발되더라도 앞서 언급했듯이 거래 무산에 따른 책임을 현산 측에 돌릴 수 있다.

공을 다시 받은 정 회장의 고심은 클 수 밖에 없다.

그동안 현산은 코로나19에 따른 아시아나 재무구조 악화 및 자금부담 등을 이유로 들며 재실사를 요청하며 거래 종결을 지연해왔다. 이에 대한 부담을 산은이 낮춰 주겠다고 한 이상 현산 입장에서는 거절할 명분이 사라지게 된 셈이다.

업계에선 산은 지원에도 아시아나 부채를 고려하면 인수를 포기하는게 낫다는 의견도 있다. 굳이 무리를 하면서까지 수익이 높지 않은 항공사를 인수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올해 상반기 아시아나 부채는 12조8405억원, 부채비율은 2291%까지 치솟았다. 여기에 코로나19가 전세계적으로 재유행하면서 하반기에는 재무구조가 더 악화될 전망이다. 코로나 전에도 아시아나 영업이익률은 최근 10년여간 10%를 넘지 못했다. 2011년 6.4% 영업이익률을 기록한 이후에는 5%를 넘어선 적도 없다. 작년 인수합병 시장 최대어라는 평가를 받은 아시아나 인수전에서 대기업들이 검토만 하고 본입찰에 참여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여기에 코로나19로 인해 재무구조가 더 악화되면서 현산 입장에서는 그동안 거절할 명분을 쌓아왔으나, 이번 산은의 제안으로 인해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 됐다.

업계 관계자는 “정 회장이 이번 산은의 제안을 거절할 경우 결국 그동안 했던 재실사 요구 등이 핑계거리라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셈”이라며 “정부 눈치에 아시아나를 인수하자니 막대한 부채와 코로나가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산은은 현산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고 매각이 무산될 경우 아시아나를 채권단 관리하에 두고, 정부의 기간산업안정기금 투입 문제를 검토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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