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발주자지만 치킨게임 살아남은 7개社 포함···“본격적인 경쟁 지금부터”
“향후 2~3년 중대고비···5개 미만 업체 중심의 배터리 독과점 형태 띨 것”
“전기차 배터리는 제2의 반도체가 될 것이다”
지난 2018년 8월 최태원 SK 회장을 비롯해 SK그룹 주요 경영진이 함께 한 이천포럼에서 김준 SK이노베이션 총괄사장은 이 같이 발언했다. 최 회장도 이에 공감했다. 해당 시장의 잠재성을 높이 사고, 과감한 투자를 지속했다. 국내(충남 서산)뿐 아니라 △중국 창저우 △헝가리 코마콤 △미국 조지아주 등에 대규모 생산설비를 구축 중이다.
SK그룹은 SK하이닉스 인수가 안착됐을 때부터 반도체를 이어 그룹의 주력 먹거리로 성장할 신사업 육성에 공을 들였다. 정유·통신사업 위주에서, ‘천군만마’가 된 반도체를 얻은 이후에도 그룹의 성장을 지속적으로 고심하고 있음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배터리·헬스케어 등이 물망에 올랐고, 현재 가장 큰 기대를 모으는 분야가 바로 배터리다.
그룹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사업은 성장가도를 달렸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줄곧 9위권에 머물렀던 SK는 올 초부터 점유율을 대폭 끌어 올렸다. 지난 4월에는 3.5%를 차지하며 삼성SDI보다 한 계단 높은 월간 점유율 5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지난해부터 유럽을 중심으로 주요 완성차 업체들과 대형 납품계약을 체결한 것이 효과를 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SK의 바람대로 배터리 사업이 ‘황금알’을 낳을 수 있을지에 대해선 여전히 미지수란 의견이 지배적이다. 배터리업계 자체가 여전히 무르익지 않았기 때문에 속단하기엔 이르다는 의미다. 다만, 수년간의 치킨게임 끝에 배터리업계가 ‘3강 4중’ 체제로 재편된 상태서 7위에 랭크된 SK이노베이션의 포지션이 상당히 불안하다는 뜻이 담겨있다.
업계 관계자는 “소형전지 때부터 사업을 영위한 업체는 LG화학·삼성SDI·파나소닉 등에 불과하다”면서 “배터리사업이 전도유망하고 진입장벽이 높지 않아 중국을 중심으로 다수의 업체들이 도전했지만 결국 7개 업체 중심으로 사업이 재편됐고, 후발주자 중 한 곳인 SK이노베이션이 포함됐다는 점은 상당히 높이 평가할 만 한 부분”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그는 “새로운 ‘빅3’ 내지 ‘빅4’를 솎아낼 본격적인 치킨게임은 지금부터가 될 것”이라면서 “가격경쟁뿐 아니라 기술경쟁, 그리고 원활한 납품능력 등이 관건이 될 텐데 이를 버틴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평가했다. 또한 “전기차 배터리 수요가 본격적으로 반등하는 시점에 맞춰 경쟁이 가열될 전망인데, 결국 여기서 버티는 게 진정한 승자다”고 덧붙였다.
복수의 업계 관계자들도 같은 의견이다. 현재로선 SK이노베이션의 순위가 이 같은 경쟁구도 아래 가장 위태한 위치라는 데 입을 모았다. 현행 글로벌 배터리 빅3는 LG화학과 중국의 CATL, 일본의 파나소닉 등이다. 일각에서는 연말을 기해 파나소닉이 LG화학·CATL 등과 격차가 벌어져 2강 5중 체제로 재편될 가능성을 점치기도 했다.
그만큼 변화무쌍하다는 뜻이다. SK이노베이션과 같이 4중의 업체들 역시 반등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결과적으로 SK이노베이션이 얼마나 성장해 버틸 수 있을 지가 관건이다. 업계가 꼽는 ‘버티기’의 관건은 가격·기술경쟁력이다. 가격경쟁력의 경우 현금성 자산보유고가 여력을 좌우하는 데, SK이노베이션은 최근 SK루브리컨츠 지분 매각을 타진하는 등 유동성 확보노력을 지속 중이다.
후발주자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기술적으로도 상당한 성과를 냈다. 하이니켈 배터리 기술력을 확보하고, 폐배터리 소재분리 기술력 향상에도 적극적이다. 또한 최근에는 에너지저장장치(ESS) 사업에도 진출하면서, 점진적으로 자체적인 배터리 밸류 체인을 구축하는 상황이다. 수주상황도 국내외 주요 완성차업체들로부터 지속적으로 러브콜을 받고 있어 긍정적이다.
더불어 업계는 SK이노베이션의 리스크 해소가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지목한다. 리스크란 LG화학과 국내외서 벌이고 있는 영업기밀 침해소송을 일컫는다. 앞서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는 SK이노베이션의 조기패소 판결을 내린 바 있다. SK 측의 요청이 받아들여져 현재 재심의가 이뤄지고 있지만, 결과가 뒤집히기 역부족이란 관측이 지대하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SK이노베이션이 LG화학과 로열티협상을 도출하지 못한 채 끝내 패소판결을 받게 될 경우 배터리 사업이 상당히 흔들릴 수 있다”면서 “완성차 업체들과 맺은 납품계약 이행이 원활하지 않을 경우 가늠하지 못할 규모의 배상금을 물게 될 수도 있다”고 경고하며, 반드시 선결해야 할 과제라 지적했다.
한편,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은 지난 17일 펴낸 ‘한·중·일 배터리 ㅋ국지와 우리의 과제’ 보고서를 통해 “향후 2~3년이 미래 경쟁력을 좌우할 중대한 고비다”고 강조했다. 보고서는 “단가하락, 글로벌 합종연횡 그리고 완성차 업체의 배터리 시장 진출 등으로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면서 “5개미만의 업체가 독·과점 하는 형태를 띨 것”이라 예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