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강제동원 가해 기업 자산 현금화 시 금융·관세 보복 등 거론
국제법 전문가들 “대법원 판결은 국제법 근거”
지소미아 종료 목소리 높아져

2019년 10월 30일 일제강제동원 피해자 이춘식 할아버지가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민변 대회의실에서 열린 '일제강제동원 배상판결 1년, 피해자 인권 피해 회복 요구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2019년 10월 30일 일제강제동원 피해자 이춘식 할아버지가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민변 대회의실에서 열린 '일제강제동원 배상판결 1년, 피해자 인권 피해 회복 요구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한국 대법원의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판결 이행 조치에 대한 일본의 금융제재 등 대응은 국제법 위반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대응 조치를 강행할 것으로 보인다.

4일 강제동원 가해 기업인 일본제철(옛 신일철주금)에 대한 현금화 조치가 본격화됐다. 이날 0시를 기해 일본제철의 국내 자산 압류를 위한 법원의 압류명령 공시송달 효력이 발생했다. 이는 2018년 10월 30일 한국 대법원이 강제동원 피해자 4명이 일본제철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재상고심에서 1억원씩 배상 판결한 데 따른 것이다.

다만 일본제철과 포스코의 합작사인 PNR 주식 매각을 통한 현금화 조치는 당장 이뤄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교도통신 등에 따르면 피고인 일본제철이 항고를 계획하고 있다. 이에 따라 법원의 실제 매각명령 결정은 늦어질 것으로 보인다.

아사히신문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강제동원 가해 기업의 자산 현금화 조치 경우 대(對)한국 금융제재, 관세 보복, 작년에 취해진 한국 대상 수출규제 강화 등을 거론했다. 

그러나 대법원의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판결 이행에 대한 일본의 대응 조치는 국제법 위반이라는 지적이다.

2018년 한국 대법원의 판결은 국제인권법이 강조하는 ‘피해자 중심주의’를 기반으로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이 개인의 손해배상청구권이 명시되지 않았다고 판결했다. 즉 강제동원과 반인권적 행위에 대한 피해자의 개인 배상 청구권은 한일협정청구권에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 당국자들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개인 청구권이 소멸된 것은 아니라고 반복해서 확인했다. 2005년 12월 유엔총회 결의에서 피해자 중심주의를 강조한 ‘피해자 권리 기본원칙’이 만장일치로 채택됐다.

도시환 동북아역사재단 책임연구위원은 “국제인권법에 근거한 대법원 판결에 대해 보복 조치에 나서는 것은 국제법을 지키지 않겠다는 것”이라며 “작년에 안보상 이유로 일방적으로 한국에 수출규제를 한 것은 국제통상법 위반이다. 일본은 국제법을 앞세우지만 자신이 국제법을 위반하고 있다”고 했다.

일본 정부는 한국의 사법 절차 이행에 추가 보복 조치를 할 가능성이 높다. 현재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등 일본 정부는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문제가 최종 해결됐다며 대법원 판결이 국제법을 위반한다는 입장이다. 

일본이 추가 보복 조치에 나설 경우 한국 정부가 WTO에 제소한 일본의 수출규제 건과 별개로 추가 제소도 가능하다.

이천기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국제법 박사)은 “일본 정부가 투자 제한, 관세 등 어떤 것을 추가 조치 할지에 따라 기존의 제소 건과 별개로 제소하든, 기존의 제소 건과 합치든 모두 기술적으로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미지=김은실 디자이너, 출처=연합뉴스
이미지=김은실 디자이너, 출처=연합뉴스

◇ '지소미아' 종료 여부 주목

한국 정부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는 언제든지 종료 가능하다는 입장을 내놨다.

김인철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정부는 작년 11월 22일 언제든지 한일 지소미아의 효력을 종료시킬 수 있다는 전제하에 지소미아 종료 통보의 효력을 정지했다”며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 철회 동향에 따라 이 같은 권리 행사 여부를 검토해나간다는 입장은 변함이 없다. 지소미아는 우리 정부가 언제든지 종료 가능하며 협정을 1년마다 연장하는 개념은 현재 적용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에 일부 전문가들은 지소미아의 종료를 주장했다. 미중 갈등에 휩싸이는 것을 피하고 정부의 단호한 의지를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유다.

송기호 대한변협 일제피해자 인권특위 위원은 “지소미아는 일본의 수출규제와 연계해서 판단하기보다 그 자체의 필요성과 안보에 따른 국익을 고려해야한다”며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일본 아베 정권의 평화헌법 개헌 등을 고려하면 지소미아는 폐기해야한다”고 했다. 미국은 중국 견제를 위해 인도·태평양전략을 중요시하고 있다.

문장렬 전 국방대 교수는 “지소미아를 종료해 미국과 일본에게 단호한 의지를 보여야 한다”며 “지소미아를 종료해도 한국의 피해는 거의 없다. 일본의 정보는 결정적이지 않고,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도 지소미아 종료는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문 교수는 지소미아를 일본에 대한 카드로 쓰기보다 국력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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