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보험기금 적자에 재정 투입 불가피
소득 기준으로 근로 파악할 듯
사용자-근로자 매칭보다는 조세 방식으로

자료=고용노동부, 그래픽=이다인 디자이너
자료=고용노동부, 그래픽=이다인 디자이너

전 국민 고용보험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우선 가장 걸림돌로 작용하는 것이 재원이다. 많은 경제학자들은 이미 고갈에 다다른 고용보험기금을 우려하고 있다. 전 국민이 가입해서 지원을 받으려면 실업급여 등을 지급할 여력이 있어야 하는데 현재 기금으로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정부 재정지원 불가피

현재 고용보험기금은 고갈에 임박해 있다. 추경호 미래통합당 의원이 지난달 고용노동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말 고용보험기금 적립금은 1952억원밖에 남지 않을 것으로 추정됐다. 지난해 말 7조3532억원인 것과 비교하면 97% 급감한 수치다.

송언석 미래통합당 의원이 국회 예산정책처에 의뢰해 제출받은 고용보험기금 기금운용계획 변경안 의결 분석 결과에 따르면 올해 고용보험기금 적자 규모는 3조7981억원으로 집계됐다. 고용보험기금 재정수지는 지난 2018년부터 적자로 돌아섰다. 2018년 –8082억원, 지난해 –2조877억원을 기록했다.

예산정책처는 오는 2028년 고용보험 가입자 1인당 연간 보험료 부담은 올해 34만6000원보다 10만4000원 증가한 45만원으로 예상했다.

경제 전문가들은 고용보험 가입자가 늘어나면 고용보험료 인상이나 재정 투입 등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윤석천 경제평론가는 “고용보험기금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국가 재정이 일정부분 투입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며 “장기적으로는 국민들의 세금이 투입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현재 고용보험기금의 기금 구조가 재원상으로 사실상 불가능하다. 대규모 재원을 투입하는 것 외에는 대안을 찾기가 어렵다”며 “현 고용보험기금 상태에서 가입자를 확대하면 이는 곧 기금의 고갈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소득으로 대상자 파악할 듯

기존 고용보험 가입 대상은 임금근로자 중심으로 근로 장소, 근로시간(상용), 근로일(일용) 등에 따라 적용 및 기여 요건이 따로 설정돼 있었다. 따라서 가입하고 싶어도 가입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았다. 특수고용(특고) 종사자, 플랫폼 근로자, 프리랜서, 자영업자 등을 가입시키기 위해서는 소득 기준으로 근로를 파악할 수밖에 없다. 취업과 실업의 경계가 모호하고 근로시간과 근로일도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난 8일 열린 ‘사람중심 경제, 전 국민 고용안전망 구축 방안 토론회’에서 이병희 한국노동연구원 사회정책연구본부장은 “모든 취업자의 소득을 매월 파악해야 고용보험 확대 적용하는 것이 용이”하다며 소득지급자 신고 체계를 개선하면 소득 파악은 어렵지 않다. 실소득을 파악하면 자영업자에게도 근로자와 동일하게 고용보험 적용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관련 부처 관계자는 “특고, 프리랜서라는 개념은 근로기준법에 적용이 안 되는 대상인데 이들을 근로자로 고용보험에 가입시키려면 근로자 개념과 바뀌고 판례도 바뀌어야 할 것 같다”며 “보통 고용보험은 실업급여 등의 보호를 받기 위해서 가입하는 것인데 특고, 프리랜서, 자영업자 등은 실업 개념이 없기 때문에 이것까지 함께 손질해야 해서 사실상 현실화가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지금도 자영업자의 경우 자발적인 가입이 가능하지만 가입을 선호하지 않는 이들은 가입하지 않고 있다. 전 국민 고용보험은 이것을 의무적 가입으로 변경해서 비자발적 소득 감소나 실업시기에 이들의 어려움을 보완해 주려고 하고 있다.

◇조세 방식으로 부과 기준 변하나

고용보험료 부과 기준도 바뀌어야 한다. 현재 고용보험료는 전년도 소득을 바탕으로 균등하게 매월 내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는 월별 보수 변동이 큰 특고, 프리랜서, 자영업자들에게 적용하기가 곤란하다.

현재는 고용관계를 전제로 사용자와 근로자가 절반씩 고용보험료를 부담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으나 프리랜서, 예술인, 특고는 사용자를 찾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때문에 사용자와 근로자를 매칭하는 방식보다는 조세방식을 취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에서는 프리랜서 등에게 매월 자진신고하고 납부하는 방식으로 전환해서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소득세와 사회보험료의 통합 징수를 제안하고 있다. 고용보험 가입이 사회보험공단 간 정보 연계를 통해 다른 사회보험료 징수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에 사회보험 가입 기준을 일원화해서 적용과 징수기관을 통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영일 정치평론가는 “특고, 프리랜서 등에서 기존과 같은 보험료를 부과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어려우므로 차등적인 부과 요금을 설계해야 할 것 같다. 보험료 요율도 달리해야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기존 가입자 반발 예상

고용보험 가입자가 확대되면 보험수입이 증가하지만 새로 가입된 취약계층의 경우 실업 위험이 기존 가입자에 비해 더 높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신규 가입자가 실업 급여를 많이 지급받게 되면 그만큼 재원이 많이 소요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송영남 전북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규직 근로자들의 경우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고 있는 경우가 많아 고용보험기금이 충분히 확보되지만 비정규직이나 취약 계층이 고용보험에 가입하게 되면 실업 급여 등으로 나가는 돈이 더 많아 기금이 오히려 더 줄어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부담에 대한 기존 가입자들의 반발이 발생할 가능성도 높은 상황이다. 따라서 기존 가입자에 대한 혜택의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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