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서 23일 총회 하루 앞두고 총회 개최금지 가처분 받아들여
18년 째 추진위 단계, 조합설립도 못해 내부서 집행부 불신 커져 재건축 요원
서울시가 그린벨트 해제 주장에 맞서 주택공급 대책으로 정비사업 활성화를 거론했지만 정작 재건축 대장주인 은마아파트는 기회를 못 살리고 있다. 사업진행이 더뎌 집행부와 조합원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서 최근 예정됐던 주민총회도 무산된 것이다. 시장에서는 지난 수일간 재건축 기대감에 호가가 큰 폭으로 오르는 등 관심이 집중되고 있으나 정작 내부 사정을 들여다보면 재건축은 요원한 모습이다.
24일 서울중앙지법 제51민사부는 지난 23일로 예정됐던 은마 주민총회 개최금지 가처분 신청을 지난 22일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총회는 개최를 하루 앞두고 무산됐다. 당초 예정된 총회에서는 재건축 추진위 운영비 및 사업비 예산 승인과 추진위원회 위원 선임 의결, 자금의 차입방법 및 상환방법 등 재건축 사업의 운영에 가장 중요한 요소들을 결정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가처분을 낸 조합원들은 추진위가 코로나19를 이유로 총회 직접 출석이 불가능하게 하고 오로지 서면결의만 하도록 해 출석권, 발언권, 의결권을 침해하는 위법에 해당한다며 총회 무산을 주장했다.
집행부와 일부 조합원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진 것은 사업 진척이 지나치게 더디기 때문이다. 인근 래미안대치팰리스(구 청실아파트)가 같은 시기 사업을 진행하며 신축 아파트로 들어갈 동안 은마아파트는 지난 2002년 이래 18년 째 조합설립도 하지 못한 채 추진위원회 단계에 머물러 있다. 추진위원회-조합설립-건축심의-사업시행인가-관리처분인가-이주 및 철거-착공 등으로 진행되는 재건축 사업 진행절차상 걸음마를 뗀 수준이다. 재건축 대장주로 인식되지만 빈수레만 요란한 격이라며 집행부에 대한 조합원들의 불신은 갈수록 커졌다.
한편 그동안 재건축 추진에 미온적이었던 서울시 주택공급방안 태스크포스(TF)는 최근들어 절차가 중단된 재건축단지의 행정절차를 진행하자는 의견을 거듭 밝히고 있다. 서울시는 지금까지 집값 자극을 우려해 재건축 인허가를 인위적으로 지연해왔지만 공급대책으로는 그린벨트 해제보다 재건축 활성화가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시가 정책적 활성화를 먼저 제안할 정도가 됐으니 그동안 재건축 사업 추진이 위축됐던 다수단지도 사업추진에 활기를 띄는 모습이다.
관련분야의 전문기관인 대한건설협회도 서울시가 주장하는 재건축 활성화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협회는 최근 재개발이나 재건축 등 정비사업 규제 완화를 통해 수도권에 50만호 주택공급을 조기에 할 수 있다는 의견을 담아 국무총리실, 국토부, 기재부 등 정부 관계부처에 전달했다. 협회가 제안한 내용 가운데 핵심은 재개발이나 재건축 등 정비사업 규제 완화를 통한 주택 공급이다. 구체적으로 협회는 서울시의 아파트 층수 규제인 35층 룰을 허물고 강남 주요 재건축 단지의 초고층 사업을 허용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을 담았다. 은마가 최고 49층 높이의 재건축을 추진하다가 서울시의 불허로 좌초됐던 점에 미루어보면 협회가 은마를 지원사격하는 모양새가 된 것이다.
시장 역시 즉각 반응했다. 은마아파트 전용면적 76㎡의 현재 매도 호가는 21억~22억 원 수준이다. 지난해 말 12·16 대책으로 15억원 초과 주택의 대출이 금지된 데다 4월 총선에서 여당이 압승함에 따라 재건축 활성화 기대감이 사라지며 호가는 한때 18억 원 언저리에 머물렀다. 하지만 6·17 대책과 7·10 대책으로 다주택자 세금 규제가 강화되자 시중의 유동자금이 똘똘한 한 채로 다시 몰렸고, 여기에 정부 공급대책에 재건축 규제 완화가 일부 포함될 것이란 소식이 전해지면서 기대감이 호가에 반영되며 은마아파트 시세도 다시 오르고 있다.
주위에서 멍석을 깔아준 격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은마는 내부 분열로 기회를 잘 활용하지 못하면서 재건축을 기대하기에는 아직 시기상조라는 말도 나온다. 한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당장은 정책적 재건축 완화 기대감에 호가가 오르지만 은마는 추진위 단계라는 한계가 뚜렷하다. 6·17 대책에 따라 2년 실거주해야 입주권을 받을 수 있는 요건을 충족시켜야 한다”며 “사업 진행이 더뎌 각종 규제를 다 적용받다보니 상승여력 한계도 뚜렷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