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발라 현장, 한국인 근로자 확진자 속출···25일까지 셧다운
현대건설 “발주처 공사 중단 요청 없어···셧다운 종료 시 공사 불가피”
공사 재개 소식에 현지 근로자들 동요

이라크 카르발라 건설 현장의 한국인 근로자들과 그 가족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 발생으로 중단됐던 공사가 다시 시작되는 쪽으로 결정이 나면서다. 코로나19 확산세가 뚜렷하고, 사망자가 속출하는 가운데 공사 재개 소식을 들은 현지 직원들은 크게 동요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프로젝트의 주관사인 현대건설을 향한 비판도 이어지고 있다.  

◇현대건설 등 카르발라 JV 지난주 긴급회의···공사 재개하기로 

21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이라크 카르발라 정유공장 건설 현장은 다음 주부터 공사가 재개될 예정이다. 공사를 맡은 현대건설·현대엔지니어링·GS건설·SK건설 컨소시엄인 카르발라 조인트벤처(JV)는 지난주 긴급회의 끝에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곳은 한국인 근로자 중 최근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해 현재 셧다운(일시 공사 중단) 상태. 셧다운이 끝나는 기간은 25일까지다.

건설업계가 코로나19 여파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중동에선 확진자 수 증가로 셧다운으로 돌입하는 현장이 속출하는가 하면 신사업도 코로나19 여파로 주춤한 모습이다. / 사진=시사저널e DB<br>
코로나19 확진자 발생으로 중단됐던 이라크 카르발라 건설 현장의 공사가 재개될 예정이다. 이에 따라 현지 한국인 근로자들 사이에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 사진=시사저널e DB

이 같은 소식에 JV 소속 한국인 근로자들 사이에선 동요가 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라크 내 코로나19 확산세가 가파른 상황에서 공사 재개는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는 입장이다. 현재 이라크에선 매일 확진자가 2000명이 넘을 정도로 코로나19가 빠르게 전파되고 있다. 특히 카르발라 현장에선 최근 한국인 근로자 2명이 잇따라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고, 이라크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중이다. 방글라데시인 등 제3국인 중에는 코로나19 감염으로 인한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현지에선 대규모 집단 감염 우려도 커지고 있다. 지난 14일 귀국한 카르발라발 한국인 근로자 100여명 중 34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의 평균 잠복기가 일주일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들은 이미 현장에서 감염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현지에서 집단 감염이 벌어졌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이유다. 카르빌라 현장엔 JV 소속 및 하도급 협력업체 근로자 580여명이 남아있다. 

카르발라에 감염자가 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수도 바그다드와 가깝기 때문이라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바그다드의 확진자 수는 20일 기준 3만2183명으로 이라크 내에서 가장 많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바그다드는 인구 밀집도가 높지만 방역 체계 등이 잘 갖춰져 있지 않아 코로나19가 빠르게 전파되고 있다”며 “카르발라는 자재 등의 모든 물류 수송이 주로 바그다드를 통해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전파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JV 소속 직원·가족, 주관사 현대건설에 비판··현대건설 “발주처 공사 중단 요청 없어···공사 재개 불가피”

이번 조치에 대한 비난의 화살은 JV 주관사인 현대건설로 향하는 모습이다. 통상 JV의 의사결정은 주관사의 힘이 많이 실리기 때문이다. 한 JV 소속 근로자의 가족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지금 코로나19가 빠르게 퍼지고 있는 상황에서 무증상 감염자도 있을 텐데 공사 재개는 말도 안 된다”며 “상황이 진정되면 공사를 시작할 수도 있는 것인데, 직원 안전보다 공사가 더 중요하다는 주관사의 결정에 배신감이 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이번에 입국한 확진자 34명 중 현대건설 직원이 15명으로 4개 건설사 중 확진자가 가장 많았다”며 “주관사에서 이렇게 많이 나오고 있는데 현장에서 정말 코로나 관리가 되고 있는지 의문이다”고 덧붙였다.

이라크 카르발라 정유공장 현장전경 / 사진=현대건설
이라크 카르발라 정유공장 현장전경 / 사진=현대건설

현대건설 측은 발주처가 공사 중단 명령을 하지 않는 이상 공사 재개는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발주처가 공사를 하지 말라고 하는 얘기가 없기 때문에 격리 기간이 끝나면 공사를 시작할 수밖에 없다”며 “활발하게 운영은 안 되더라도 유지되는 것처럼은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이번 공기 연장이 매출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JV 소속 건설사들 입장에선 공사를 중단하기 어렵다는 관측도 나온다. 공사도급액은 현대건설(현대엔지니어링 포함)이 2조5774억원, GS건설이 2조5444억원, SK건설이 1조7114억원이다. 카르발라 프로젝트 공사기간은 2022년 2월까지다. 올해 1분기 말 기준 현대건설은 4083억원, GS건설은 3846억원, SK건설은 3079억원의 공사잔액이 남아있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기성율(공사가 진행된 정도)이 떨어지면 매출과 영업이익이 늦게 반영된다”며 “공기 연장에 따른 간접비 부담과 준공 정산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지체상금 등 다양한 원가 상승 요인을 안고 있기 때문에 중단을 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직원 가족들 전원 철수 요청···현대건설 ‘난색’

현지 인원 철수와 관련해서도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현재 이라크 내 공항이 폐쇄되면서 현지에서 일하던 한국인 근로자가 스스로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이에 정부는 이라크 내 한국인 근로자가 국내에서 검사와 치료를 받을 수 있게 전세기를 보내기로 했다. 특히 카르발라 현장의 심각하다고 보고, 이곳 한국인 근로자들을 철수시키겠다고 밝혔다. 다만 정부는 건설사에 소속된 근로자이기 때문에 강제로 모두 귀국시키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기업들에 가급적 많은 근로자가 국내로 돌아올 수 있게 유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JV에서 귀국 희망자를 취합하고 있는데 현재 290∼300명 정도가 귀국을 희망하고 있다.

/ 자료=국민청원 홈페이지 캡처<br>
/ 자료=국민청원 홈페이지 캡처

전원 철수가 아니라는 소식에 근로자들의 가족들은 국민청원을 제기하고 나섰다. 카르발라 현장에 남편을 뒀다는 한 청원인은 20일 올린 청원글을 통해 “귀국 희망하는 국민은 모두 데려오겠다는 뉴스에 가슴을 쓸어내렸는데 남편과 직원들 말에 의하면 다음에 가라고 했다더라. 2·3차 대기자만 분류해놓고 기약 없다는 말을 들었다. 희망자가 있는데 못 온다는 건 말이 안 된다. 현지엔 진단키트조차 없고 증상이 나와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심해지면 이라크 병원에 보낸다고 하더라. 그들은 지금도 공포에 떨며 전세기 소식만 기다리고 있다. 모두 데려와 달라”고 호소했다.

현대건설 측은 완전 철수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아울러 정부의 철수 방침이 부담스럽다는 뜻도 내비쳤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한국인이 모두 빠지면 외국이 근로자들 사이에 폭동이 일어나는 등 돌발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현장을 관리할 수 있는 인원이 필요하다”며 “최소한의 인력만 남기고 철수시킬 예정이며, 규모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부가 공사와 관련해 감안을 해줘야 하는데 무조건 빼오라고 해서 난감한 상황이다”며 “얼마나 귀국시킬지는 논의가 더 필요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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