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보험기금 고갈로 대규모 재정투입 불가피
고용보험료 인상 등도 고려해야
정부가 전 국민 고용보험을 본격적으로 추진한다는 방침을 세웠지만 실업급여 등을 지급하기 위한 재원 마련에 대한 대책은 부족한 실정이다. 고용보험기금의 적자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가입자를 늘리려면 기금을 늘리기 위한 방안이 먼저 고려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경제학자들은 고용보험 가입자가 늘어나면 고용보험료 인상이나 재정 투입 등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 20일 정부세종청사에서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 중 안전망 강화 분야에 관한 브리핑을 열어 “2025년에는 모든 일하는 국민이 고용보험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2025년 기준으로 고용보험 가입자 수가 약 2100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이는 현재 고용보험 가입자 수의 약 1.5배에 달하는 수치다. 오는 2022년까지는 특수고용직(특고) 종사자의 고용보험 가입을 허용해 가입자를 1700만명 수준으로 늘릴 계획이다.
앞서 지난 5월 고용보험 적용 대상을 확대하는 내용을 담은 고용보험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예술인도 고용보험에 가입할 수 있게 됐다. 당초 시행 시점은 법 공포 후 1년 뒤였지만 여야는 법 공포 후 6개월 뒤로 시점을 바꿨다.
정부는 올해 말까지는 특고 종사자의 고용보험 적용을 위한 법 개정을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고용보험에 가입되면 고용유지지원금, 실업급여 등을 받을 수 있다. 이 외에 출산전후급여와 육아휴직급여 등을 받을 수 있다. 정부는 내년부터 우선 특고 종사자와 예술인에게도 출산전후급여를 지급할 방침이다.
그러나 고용보험기금은 현재도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추경호 미래통합당 의원이 지난달 고용노동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말 고용보험기금 적립금은 1952억원밖에 남지 않을 것으로 추정됐다. 지난해 말 7조3532억원인 것과 비교하면 97% 급감한 수치다.
송언석 미래통합당 의원이 국회 예산정책처에 의뢰해 제출받은 고용보험기금 기금운용계획 변경안 의결 분석 결과에 따르면 올해 고용보험기금 적자 규모는 3조7981억원으로 집계됐다. 예산정책처는 오는 2028년 고용보험 가입자 1인당 연간 보험료 부담은 올해 34만6000원보다 10만4000원 증가한 45만원으로 예상했다.
고용보험 가입자가 증가하고 코로나19로 인한 실업 급여 지급이 증가하면서 고용보험기금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정부는 전 국민 고용보험 계획을 발표하면서 고용보험기금을 늘릴 방안은 밝히지 않았다.
대다수의 경제 전문가들은 고용보험 가입자가 늘어날수록 기금은 더욱 부족해 질 것으로 예상했다. 고용 불안에 시달리는 이들이 많이 가입할수록 실업 급여 등에 지급되는 금액이 더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고용보험기금은 계속해서 적자가 진행 중이어서 현재 상태로는 사실상 불가능한 수준”이라며 “고용보험 가입자가 늘어나면 고용보험료 대폭 인상이나 대규모 재정 투입이 이뤄져야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고용보험을 위해 재원을 계속 투입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며 “고용부담금을 납부할 수 있는 형태 즉, 고용보험료를 납부해줄 근로자와 사용자가 함께 존재하는 경우에 해당하는 근로자를 대상으로 해서 고용보험 가입자를 늘리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송영남 전북대 경제학부 교수 역시 정규직 비중이 줄어들면 고용보험기금이 충분히 확보될 수 없다고 봤다. 송 교수는 “전 국민 고용보험 가입 시 정규직의 비중이 어느 정도냐에 따라 고용보험기금 확보 여부가 결정된다.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는 이들이 많이 가입할 경우 고용보험기금이 늘어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고용보험기금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실업급여 지급 등으로 기금이 오히려 줄어들 것”이라고 분석했다.
국가 재정이 투입되더라도 전 국민 고용보험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윤석천 경제평론가는 “언택트 사회, 디지털 사회로 노동의 형태가 많이 바뀔 것”이라며 “지금보다 프리랜서가 늘어나고 특고 종사자, 플랫폼 노동자가 더 늘어날 수 있는데 이들을 보호하지 못하면 이들의 삶이 위태로워지고 나아가 이들의 소비가 줄어들어 국가가 쇠퇴될 수도 있다. 따라서 전 국민 고용보험으로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 평론가는 이어 “지금 고용보험기금만으로는 부족할 것이기 때문에 국가 재정이 일정부분 투입될 수밖에 없고 장기적으로는 국민들의 세금이 투입될 수 있을 것”이라며 “그렇게 되면 격렬한 논의가 있을 것인데 사회적인 합의를 어떻게 잘 이뤄내느냐가 중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