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에 의무화 입법 권고···과거 의료계 반대로 무산 사례
의협 “의무화 문제 있어, 선의의 피해자 발생”···단계적 추진 등 가능성 제고 관측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최근 정치권에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를 요청하고 나서 의료계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의료계는 CCTV 의무화를 반대하고 있으며, 과거에도 무산된 사례가 있다. 하지만 여러 정황이 변화돼 실현 가능성이 올라갈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21일 경기도와 국회에 따르면, 이재명 지사는 최근 국회의원 300명 전원에게 편지를 보내 “수술실 CCTV 설치는 환자들이 안심하고 수술 받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수 있는 최소한 방안”이라며 “사업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수술실 CCTV 설치를 의무화하는 입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지사는 “병원 수술실에서 대리수술을 비롯한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인해 환자와 병원 간 불신의 벽이 높다”며 “수술실 CCTV 설치는 환자 신뢰를 확보할 수 있어 결국 환자와 병원, 의료진 모두에 이익이 되는 정책”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경기도는 현재 민간 의료기관 수술실 CCTV 설치와 운영을 뒷받침하는 사업을 추진 중”이라며 “국민 관심이 높은 사안인 만큼, 의원들이 관심을 갖고 역할을 해 달라”고 당부했다.
실제 경기도는 지난 2018년 10월 도의료원 안성병원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한 데 이어 2019년 5월 수원, 의정부, 파주, 이천, 포천 등 도의료원 산하 6개 병원에 CCTV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최근에는 민간의료기관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수술실 CCTV 설치비 일부를 지원키로 하고, 참여 의료기관을 공개 모집했다. 공모에는 3곳이 신청했다. 지원 대상은 다음 달 말 확정될 예정이다.
이 지사와 경기도가 이처럼 수술실 CCTV 사업에 주력하는 것은 ‘유령수술(대리수술)’ 등 사건이 잇달아 발생하며 의료인에 대한 불신이 높아짐에 따라 대안 성격으로 추진한 것으로 풀이된다. 성형외과를 중심으로 일부 의사들의 유령수술에 대한 논란은 수차례 방송으로 보도되며 문제의 심각성을 더해줬다는 평가다.
이에 지난해 12월 대한한의사협회는 유령수술의 심각한 폐해를 지적하고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와 함께 양의계의 뼈를 깎는 자성과 강력한 내부 정화를 촉구한 바 있다. 당시 한의협은 “수술실 CCTV 설치는 양의계 쪽의 강력한 반대로 유야무야 됐다”며 “유령수술이 끊임없이 재발되고 있는 현실에서 이제는 유령수술이 고질병 수준으로 악화된 것은 아닌가 매우 우려스러울 따름”이라고 양의계의 반성과 자성을 요청했다.
이같은 한의협 지적대로 국회에서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를 골자로 한 법안이 발의됐지만, 의료계 반대로 입법에 성공하지 못했다. 구체적으로 지난 19대와 20대 국회에서 환자의 알 권리 확보와 의료분쟁의 신속하고 공정한 해결을 위해 CCTV 설치 의무화가 담긴 의료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21대 국회 개원 후에도 김남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한 상태다. 개정안은 수술실을 운영하는 의료기관장에게 CCTV 설치 의무를 부여하고, 의료인 및 환자 등 정보 주체 동의를 받은 경우 의료행위 장면을 영상정보처리기기로 촬영하고 보존하는 것을 의무화하도록 했다.
이처럼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에 대한 요청과 여론이 높아짐에도 불구하고 대한의사협회 등 의료계는 공식적으로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분위기다.
의협 관계자는 “협회 입장은 의사가 자발적으로 CCTV를 설치하는 것은 왈가왈부할 수 없지만, 설치를 의무화하는 것은 문제가 있어 반대한다”로 정리했다. 이 관계자는 “유령수술 등 여파로 일부 성형외과 의사는 CCTV 설치에 찬성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도 “설치 의무화로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할 수 있다. 여기서 선의의 피해자는 환자”라고 주장했다.
쉽게 설명하면 신경이나 혈관을 수술하는 의사들은 정신을 집중해 진행해야 하는데, CCTV를 설치하면 이를 의식해 손이 떨린다든지 집중에 방해가 된다는 논리다. 이에 환자들 피해를 막기 위해 CCTV 설치 의무화에 반대한다는 주장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최근 수년간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가 논의되고 유령수술 피해가 알려짐에 따라 의료계 내부에서도 일종의 탄력적 의견이 거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언급대로 일부 성형외과 의사들은 유령수술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시키기 위해서라도 CCTV 설치 의무화를 주장하고 있다는 게 의료계 설명이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어떤 정책적 사안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급격한 변화보다는 단계적 추진이 효율적이고 부담을 완화할 수 있다”며 “예를 들어 이 지사가 우선 경기도의료원에 CCTV를 설치하고 이어 민간의료기관으로 확대한 것처럼 단계적 추진이라면 의료계도 일단 검토가 가능하지 않겠느냐”고 긍정적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여기에 보건의료정책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가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에 긍정적 입장을 밝히고 있는 것도 실현 가능성을 높이는 것으로 분석된다. 박능후 복지부 장관은 CCTV 설치 의무화에 대한 결론을 내야 한다는 국회 지적을 받고 “실태조사부터 진행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결국 의료계를 제외한 대부분 국민들과 환자들, 정부가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에 긍정적 입장을 보이는 상황에서 과거보다는 실현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여기에 공교롭게 의료 4대악 척결을 주장하며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의료계 상황의 여파가 작용할 지도 관심사다.
익명을 요구한 의료계 관계자는 “최근 대법원 판결로 회생한 이 지사 요청이 알려지며 이슈로 재점화한 사례가 수술실 CCTV”라면서 “첩약 급여화 등 의료 4대악 대응에도 바쁜 의료계 입장에서 부담스럽지만 적극 대응할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