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화학 “신속한 사실관계 규명 요청취지”···수조 투자한 SK이노 합의 불가피

/그래픽=시사저널e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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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그룹을 중심으로 배터리 사업을 영위하는 재계 1~4위 총수들 간 연속회담이 성사되면서 기대감을 모았던 ‘K-전기차·배터리 연합체’ 구상이 한계를 드러낸 모습이다. LG화학이 한국과 미국에서 지적재산권 침해 등으로 첨예한 대립관계를 이어 온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검찰에 추가 고발한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15일 LG화학과 관련업계 등에 따르면, 소장은 지난달 29일 서울중앙지검에 접수됐다. △산업기술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산업기술보호법)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에 관한 법률(부정경쟁방지법) 등을 위반했다는 혐의다. 지난해 LG화학은 같은 이유로 SK이노베이션을 경찰에 고발한 바 있다. 1년여 만에 검찰에 재차 고소한 셈이다.

그간 양사는 한국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법적공방을 이어왔다. LG화학이 SK이노베이션 미국 배터리 법인 소재지인 미국 델라웨어주(州) 법원뿐 아니라 국제무역위원회(ITC)에도 제소했다. 지난 2월 ITC는 SK이노베이션의 조기패손 판결을 내린 바 있다. SK 측의 이의제기가 있었으나 오는 10월 내려질 최종판정에서도 LG화학이 우위를 점하게 됐다.

일각에서는 이번 LG화학의 고소 배경에 의구심을 나타내기도 했다. 이미 승기를 잡은 상태에서 굳이 검찰에 소장을 제출할 필요가 있었겠느냐는 것이다. LG화학 관계자는 “고소한지 1년이 넘은 사건과 관련해 신속히 사실관계를 규명해달라는 취지였다”며 “검찰에 별도로 의견서를 접수하는 절차가 없어 고소장을 제출하는 형식을 취했을 뿐”이라 답했다.

ITC의 예비조사 후 양사는 물밑에서 로열티 협상을 추진해 온 것으로 알려진다. 다만 로열티 금액을 놓고 상당한 이견이 발생해 지지부진 한 상태인 것으로 전해진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미 유리한 고지를 점한 LG화학 측이 로열티 협상에서 원하는 금액을 받아내기 위해 재차 압박을 가하려는 수단이 아니겠느냐”고 해석하기도 했다.

오는 10월로 예고된 ITC의 판결에서 SK이노베이션이 패소할 경우 배터리 사업에 상당한 타격을 입게 된다. 앞서 SK이노베이션은 현지에 수조원대 투자를 단행했다. 패소 시 이 같은 작업에 제동이 걸린다. 한국에서 미국으로의 배터리 관련 부품 수출길도 막히며, 현지에서 배터리 사업을 영위할 수도 없게 된다.

지난해 3월 착공한 연산량 9.8GWh 규모의 배터리 1공장은 내년 하반기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최근에는 1공장에서 근무인력 채용에도 나선 바 있다. 인근에 2공장 건립을 위한 투자계획도 구체화시켰다. 패색이 짙어진 상황에서 이뤄진 사업추진이었기에, 당시 이를 놓고 SK이노베이션이 LG화학과 로열티 합의를 도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근거라 일컫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양사의 관계개선의 신호탄이란 풀이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이번 LG화학의 소송제기는 SK이노베이션과의 갈등관계가 아직 종식되지 않았음을 방증한다. 북미시장은 유럽·중국 등과 더불어 글로벌 3대 전기차 시장으로 꼽히는 만큼 포기할 수 없는 시장이다. 결국 추가적인 소송제기로 LG·SK 간 로열티 협상에서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게 관련업계 전반의 시선이다.

또한 이번 소송은 대외적으로 기대감을 모았던 ‘K-전기차·배터리 연합체’ 구상이 현실화 될 수 없는 근거가 됐다. 해당 구상은 최근 2개월 새 정의선 현대차 수석부회장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광모 LG 회장, 최태원 SK 회장 등을 차례로 만나면서 제기된 일종의 기대감이었다. 전기차와 배터리 사업체들이 협력해 국가경쟁력을 키우려 한다는 의미였다.

업계 내부에서는 이를 놓고 “과장됐다”는 해석이 주를 이뤘다. 배터리 공급선을 다변화 해야 할 완성차 업체가 복수의 배터리 업체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는 것이 무척이나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현대차와 3개 배터리 업체들 간 협력이 보다 확대될 수 있어도 배터리 업체들 간 우호를 다지기엔 현재의 경쟁관계가 매우 치열하다는 이유였다.

이 같은 업계의 해석과 달리 외부의 기대감은 만남이 성사될수록 높아져 온 것이 사실이다. 배터리 총수들과의 연속회담을 마친 정의선 부회장이 지난 14일 청와대의 ‘한국판 뉴딜 국민보고대회’ 발표자로 나서면서 연합체 구성에 대한 기대감 또한 배가된 것이 사실이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오후 LG화학의 추가고발 소식이 전해졌다.

한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배터리 사업의 주도권을 한·중·일 3국이 쥐고 있음에는 분명하지만, 사업은 올림픽·월드컵과 같은 국가대항전이 아니”라면서 “미래 가능성을 바라보고 숱한 기업들이 도전했고 최근에서야 ‘3강 4중’ 체제로 재편됐는데, 반도체 시장 재편이 이뤄졌던 당시와 마찬가지로 또 다시 몇몇 기업이 낙오하고 부상하길 반복하게 될 것”이라 소개했다.

이어 그는 “그만큼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분야가 배터리 사업”이라며 “(연합체 구성은)국익을 위해 경쟁을 멈추고 협력하라는 이야기인데, 오히려 세계시장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며 살아남고 경재력을 키우는 것이 국익 아니겠느냐”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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