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 “국민이 원하고 한방 보장률 제고 필요”···사실상 시범사업 확정한 듯
의약단체 “안전성과 유효성 의문”···24일 건정심서 보고안건 논의

그래픽=이다인 디자이너
/ 그래픽=이다인 디자이너

정부가 추진 중인 첩약 급여화에 대해 의약단체들이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어 향후 시행 여부가 주목된다. 정부는 국민들이 원하고, 한방 보장률 제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첩약의 안전성과 유효성에도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반면 의약단체들은 첩약의 안전성과 유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강력 투쟁을 예고하고 있다. 정부는 다음 주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 착수를 확정할 것으로 보인다.     

15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오는 24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전체회의를 열어 그동안 논란이 일었던 첩약의 급여화 시범사업 착수 안건을 논의할 예정이다. 이날 시범사업 건은 보고안건으로 확인됐다. 의결안건일 경우 참석한 위원들이 심사해 의결 여부를 결정한다. 위원들 간 합의되지 않을 경우 다수결로 의결 여부를 가리는 경우가 그동안 일부 있었다. 하지만 보고안건의 경우 위원들이 제지할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없다. 글자 그대로 복지부가 위원들에게 보고만 할 뿐이다.

첩약은 한약 제형의 하나다. 한 가지 또는 여러 가지 자른 한약을 섞은 것으로, 쓸 때 탕약으로 만들어 먹게 한 제제다. 첩약 급여화는 지난 1980년대 이후 수십여년간 논란이 지속됐던 사안이다. 1984년 12월부터 2년 2개월 동안 충북 청주 등 지역에서 26개 한방의료기관이 첩약 시범사업을 실시한 바 있다. 이어 지난 2012년 10월에도 건정심은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을 재실시키로 결정한 바 있다. 하지만 직역 간 갈등으로 시범사업은 실시되지 못했다.    

올해 다시 부상한 논란의 요지를 보면 복지부는 의약단체들이 강력하게 반대하는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을 강행한다는 방침이다. 반면 의약단체들은 첩약의 안전성과 유효성이 검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시범사업 실시에 반발하고 있다. 

우선 복지부 논리를 들여다보면 국민들이 강력하게 첩약 급여화를 희망하고 있다. 일반 국민 및 한방의료 이용자 대상 건강보험 급여 확대 시 우선 적용이 필요한 치료법 조사 결과, 모두 첩약이 1위로 조사됐다. 구체적으로 급여 적용이 필요한 치료법은 첩약(55.2%)에 이어 한약제제(18.3%), 추나요법(9.9%) 순이었다. 

첩약은 비급여로 본인 부담률이 높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시장규모는 꾸준히 상승하는 등 국민들 첩약 수요는 지속 상승하고 있다는 복지부 설명이다. 구체적으로 지난 2014년 1억500만첩에서 2017년 1억1300만첩, 2018년 1억1600만첩에 이어 지난해 1억1900만첩으로 수요가 늘고 있다.

또 한의약 분야 건강보험 보장률은 전체 대비 낮은 수준으로 보장범위 확대를 통해 의료비 부담을 경감시키겠다는 복지부 계획이다. 지난 2018년 기준 건강보험 보장률은 전체 63.8%에 비해 한방병원은 34.9%, 한의원은 52.7%로 조사됐다. 

이같은 이유로 복지부는 오는 10월부터 2023년 12월까지 3년 동안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 진행을 사실상 확정한 것으로 풀이된다. 시범사업에서 타당성과 효과성 평가를 병행하고, 사업기간 중 단계적으로 의료기관과 (한)약국 간 연계 등 제도적 보완사항을 검토한다는 계획이다.

대상 질환은 안면신경마비와 뇌혈관질환후유증(65세 이상), 월경통 등이다. 대상자는 시범사업에 참여한 한의원을 방문한 외래환자 중 사업 설명 후 사업에 동의한 환자다. 복지부 관계자는 “다수 국민들이 원하고 한방 건강보험 보장률이 낮은 상황”이라며 “첩약의 안전성과 유효성에도 문제가 없다”고 언급했다.  

이같은 복지부 정책방향에 대해 의약단체들은 반발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이미 대한의사협회는 지난달 28일 서울 청계천한빛광장에서 첩약 건강보험 적용 결사반대 결의대회를 개최한 바 있다. 의약단체들 주장을 분석하면 두 가지로 정리된다. 우선 앞서 언급대로 첩약의 안전성과 유효성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것이 핵심이다. 

한약과 구별되는 개념의 ‘양약’은 현재 시판을 전후로 다양한 검증 절차를 받고 있다. 사람의 생명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객관적이고 근거가 확실한 검증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1상부터 3상까지 진행하는 임상시험이 그 예다.

반면 한약의 경우 이같은 검증절차가 사실상 없는 상황에서 안전성과 유효성에 의혹을 제기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의약단체 주장이다. 한약을 오랜 기간 동안 써왔기 때문에 이미 검증을 받았다는 주장을 한의계가 내놓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 의협 관계자는 “예를 들어 코로나19 치료제의 경우 기존 의약품 중 안전성이나 유효성에 대해 상당한 연구와 검증절차를 진행하고 있다”며 “이미 다른 질환에 사용되는 약도 검증을 거치는데, 한의계는 1-2가지 결과만 제시하니 안전성과 유효성 검증이 거론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첩약의 안전성과 유효성이 검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급여화는 더욱 어불성설이라는 의약단체 주장이다. 설령 첩약의 안전성과 유효성이 검증됐다고 하더라도 건강보험에 등재하는 것은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

건강보험 재정은 제한적이다. 이에 관련 규정도 보험 재정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우선순위 즉 객관적으로 시급한 행위나 약제에 대해 급여를 적용토록 했다. 하지만 복지부가 현재 추진하는 안면신경마비와 뇌혈관질환후유증, 월경통 등 3개 질환에 첩약 급여를 적용하는 방안이 당장 시급한 사안은 아니라는 것이 의약단체 지적이다.

모 단체 관계자는 “국가가 재정을 투입하는 것은 우선순위가 있는데, 수많은 의료행위 중 치료효과 판단도 어려운 3개 질환 첩약 급여화는 시급하지 않다는 것이 대부분 생각”이라며 “당장 고가 항암제를 어쩔 수 없이 복용하는 암 환자들을 위해 항암제에 급여를 적용하는 것이 더 급하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복지부는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을 강행할 태세다. 반면 의약단체는 적극 반발하며 시범사업이 시급하지 않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는 상황에서 일단 24일 건정심 회의가 분수령으로 판단된다.  

한 보건의료계 인사는 “의결안건이 아닌 이상 복지부는 건정심 회의에서 보고만 한 후 시범사업 강행의 수순이 예상된다”며 “특히 의협을 중심으로 의료계가 어떤 강도로 반발하느냐에 따라 오는 10월 시범사업 착수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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