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올림픽 1년 연기···수요확대 더뎌지자 日철강사들 저가공세 펼쳐
“조선업 불황 때 협력···철강업 부진 때 日제품 매입량 늘려” 볼멘소리
철강업계가 남모를 속앓이를 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여파로 전방산업이 부진해지면서 철강수요가 급감하고 원가마저 상승하며 이중고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주요 고객사들이 값싼 일본산 철강제품을 사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비슷한 품질이라면 값싼 원자재를 찾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철강업계가 서운함을 토로하는 까닭은 고객사들의 업황이 부진할 때 대승적인 차원에서 가격인상을 억제해 온 전력 때문이다. 특히 조선사들을 향한 분개가 커 보인다. 제품가격 인상이 요원한 철강업계 입장에서는 이에 대한 입장도 쉬이 드러내지 못하는 실정이다.
14일 관련업계 등에 따르면, 일본 철강업계는 지난해부터 제품생산량을 대폭 늘렸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오는 23일부터 내달 8일까지 열릴 예정이었던 ‘2020 도쿄올림픽’에 발맞춰 철강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예측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영향으로 도쿄올림픽이 1년 연기되고, 같은 이유로 글로벌 철강수요가 급감하면서 일본 철강업계가 저가공략을 펼치게 됐다.
봉형강·후판 등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품목들이 국내 시장에 싼 가격에 유입 중이다. 특히 최근 잇따른 수주 낭보를 전한 국내 조선사들이 향후 비용절감 등을 목적으로 대량으로 들여온 것으로 전해진다. 일반적으로 국내 조선사들은 국내뿐 아니라 일본·중국 등으로부터도 후판을 공급받는다. 공급 가격이 낮아진 일본 후판 매입 비중을 늘린 셈이다.
일반적으로 후판가격 협상은 업체별로 상이하게 진행된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일본산 후판의 현재 공급가격은 톤당 60만원 중반이다. 국내 철강사들에 비해 최대 10만원 가까이 차이가 난다. 금년뿐 아니라 향후 수년 동안 방대한 후판을 소비해야 하는 조선업계 입장으로선 싼 가격에 비축할 수 있는 천금 같은 기회로도 볼 수 있다.
철강업계 입장에서 가격경쟁을 펼치기 위해선 지금보다 제품공급가격을 낮춰야 하지만 여력이 없는 상황이다. 오히려 제품가격이 인상돼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철광석 가격이 폭등하는 등 원자재 상승에 따른 제품 가격인상 요인이 충분하며, 2분기 포스코·현대제철 등 대형철강사들의 적자까지 점쳐지고 있어, 가격 동결마저 힘에 부친다는 입장이다.
취재 중 접한 철강업계 관계자들은 “서운하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조선업 불황 당시 국가경제 등을 감안해 대승적인 차원에서 수년 간 조선용 후판 가격을 동결하는 등 협력을 펼쳤는데, 반대 상황에서 조선업계가 외면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의미였다. 심지어 저가공세를 펼치는 일본산 후판 매입 비중을 높이는 등 철강업계의 고충을 더욱 심화시킨다는 지적도 있었다.
한 철강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초 브라질 발레 광산 사고로 철강석 가격이 폭등한 이후부터 철강업계가 지속적으로 납품가격 인상을 요구했지만 그 때마다 조선업계는 ‘업황이 회복되지 않았다’며 인상자제를 요청했다”면서 “코로나19 여파로 발레 등 문을 닫는 광산들이 늘어나면서 채굴량 감소에 따른 가격폭등이 발생하지만 여전히 같은 입장만 되풀이 중”이라 힐난했다.
이어 그는 “이 같은 상황에서 일본산 제품을 대거 매입한다는 소식에 분개하지만, 고객사를 상대로 대놓고 비판할 수도 없는 입장”이라면서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일본 철강사들의 저가공세가 계속될 경우 철강업계의 장기적자·장기부진 등이 우려되는 만큼 정부가 나서 조치를 취할 필요도 있어 보인다”고 덧붙였다.
한국철강협회 측도 이를 예의주시한다고 밝혔다. 협회 관계자는 “일본산 철강제품들이 싼 값에 국내로 유입되면서 각종 문제들이 발생하는 것과 관련해 지속적으로 모니터링을 실시 중”이라면서 “(비정상적으로 싼 값에 유입되는 상황이)구조적인 문제인지, 일시적인 문제인지 여부에 대해 우선적으로 판가름 할 계획이며 추후 대책을 강구해보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