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규제법’ 봇물···CEO의 임추위 결의 배제될 예정
삼성생명법 등 20대 국회 폐기 법안 재추진
금융권 규제가 강화되는 분위기다. 지난 20대 국회 때 통과하지 못한 금융 관련 규제 법안들이 대거 재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금융 규제 법안들은 20대 국회 당시 야당 반대와 업계 주장에 부딪혀 국회 통과가 무산된 바 있다. 21대 국회에선 거대 여당의 등장으로 논란이 되는 법안들의 국회 통과가 손쉽게 이뤄질 전망이다.
◇금융사 지배구조법 통해 CEO 셀프연임 원천 차단
24일 금융권 등에 따르면 금융당국에 의해 지적받아온 금융사 CEO 셀프연임이 앞으로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금융회사지배구조법)’ 개정안이 지난 23일 국무회의를 통과했기 때문이다. 이 법안은 2018년 9월 20대 국회에 제출됐다가 임기 만료로 폐기된 바 있다.
개정안은 금융사 CEO에 대해 금융 전문성, 공정성, 도덕성 등을 자격 요건으로 규정하고 있다. 특히 이사회 내 임원후보추천위원회(임추위) 위원은 본인을 임원 후보로 추천하는 임추위 결의에 참석할 수 없도록 한다. 현행 지배구조법에서도 임추위 결의에 대해 본인의 의결권을 제한하고 있지만, 개정안은 결의 참석 자체를 막고 있다.
금융당국은 금융사의 CEO가 임추위 결의에 참석하면서 사외이사들이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봤다. 금융당국은 CEO 연임이 이사회 전체의 의견보다 CEO 본인 판단에 좌우된다고 보고 이사회의 독립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임추위에서 CEO를 제외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번 개정안에선 사외이사와 감사위원을 추천하는 임추위에도 CEO 참여가 금지됐다. 금융지주 회장이 선출한 사외이사들로 다시 회장 연임을 결정하는 이른바 ‘셀프 연임’을 막기 위한 방안이다. 다만 업계에선 금융사 CEO가 임추위에서 배제될 경우 경영지배권 약화와 함께 경영의 연속성이 유지되기 어려워질 수 있다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
◇금융그룹감독법 입법 예고···이중규제 논란 불거질 듯
삼성·한화·미래에셋·현대차·교보·DB 등 6개 비지주 금융그룹을 대상으로 한 ‘금융그룹의 감독에 관한 법률(금융그룹감독법)’도 입법 예고돼 있다. 이 법률에는 2개 업종 이상 금융사를 보유한 자산 5조원 이상 금융그룹에 대한 리스크를 정부가 관리하는 내용이 들었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대상이 되는 금융그룹은 대표회사로 선정한 금융사를 중심으로 그룹 위험 관리 정책을 마련하고 그룹 내부통제 관리기구와 위험 관리 협의회를 설치 운영해야 한다. 금융당국은 2∼3년마다 금융그룹의 위험 현황 관리 실태를 점검하고 평가한다. 점검 결과 금융그룹이 재무상태 등을 정당한 이유 없이 미보고·허위 보고하면 과태료가 부과되고 문제가 임직원의 고의·중과실로 인해 발생한 것이면 금융당국은 해당 임직원에게 주의·경고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이 법안은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 중 하나로 금융사 부실이 비금융사로 전이되는 걸 막겠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선 이 법이 금융그룹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쓰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또 금융지배구조법이 이미 있어 금융그룹감독법 입법이 이중규제라는 업계 반발을 불러오고 있다. 이런 반발로 20대 국회에선 금융그룹감독법 국회 통과가 무산된 바 있다.
◇업계, ‘삼성생명법’ 국회 통과 여부도 촉각
일명 ‘삼성생명법’으로 불리는 보험업법 개정안도 논란의 중심에 있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3월 말 기준으로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보통주 지분 8.51% 중 삼성생명 전체 보유주식 대비 3% 초과분은 모두 팔아야 한다.
현행 보험업법과 달리 이 법안은 보험사가 보유한 계열사의 주식가치를 시장가격으로 평가한다. 현행법으로 하면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주식 보유 규모는 총자산의 0.1%대 수준이지만 시가 기준으로 바뀌면 8%대를 넘게 돼 예상 매각 지분만 20조원이 넘게 된다.
현재 삼성생명은 사실상 삼성전자의 최대주주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법이 통과되면 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지배구조가 약화될 수밖에 없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해 총수 일가의 경영권이 흔들리게 되는 상황이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이런 법안들이 대부분 20대 국회에서 야당의 반발로 국회 통과가 무산됐는데 21대 국회에선 거대 여당 출현으로 야당의 저지가 무의미해졌다”며 “금융그룹의 지배구조에 큰 변화가 생기는 상황인데도 업계 의견이 국회에 반영되기 더 어려워진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