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산되는 항의 시위···약탈·방화 동반 폭동 등 美 공포 분위기
누적된 ‘인종차별’ 문제 폭발···세계 각국, ‘차별 해소 계기’ 목소리
韓, 산발적 항의 동참 분위기···지극히 현실적인 ‘우리 삶’에 대한 문제
이른바 ‘조지 플로이드 사건’으로 인한 미국 내 항의 시위가 더욱 확산되고 있다.
사건이 발생한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를 중심으로 한 미국 전역에서 시민들은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조지 플로이드에게 정의를(Justice for George Floyd)’ 등이 적힌 팻말을 들고 시위를 이어가고 있고, 점차 약탈, 방화 등을 동반한 폭동과 총격 사건 등도 잇따라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격렬한 시위가 지속되면서 미국 일부 도시는 ‘야간 통행금지령’을 발동했고, 워싱턴D.C, 캘리포니아주 등 12개 주는 방위군을 소집하기도 했지만 시위의 강도는 더욱 강해지고 있는 모습이다. 이에 따라 미국 전역에서 공포 분위기까지 조성되고 있는 상황이다.
AP통신에 따르면 지난 21일(현지시간) 새벽에도 ‘플로이드 사건’이 발생한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 도심에서 총격 사건으로 1명이 사망하고, 11명이 부상당했다. 또한 지난 20일(현지시간)에는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 캐피톨 힐에서 열린 ‘플로이드 사건’ 관련 시위 현장 주변에서 총격 사건이 발생해 1명이 사망하고, 1명이 다쳤다.
두 사건 모두 아직까지 ‘플로이드 사건’ 시위와 관련이 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사건이 발생한 장소 등을 고려했을 때 ‘플로이드 사건’ 시위와 전혀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전과는 달리 이번 ‘인종차별’ 항의 시위에 불이 붙게 된 것은 미국 시민들이 플로이드의 사망 이유를 단순한 ‘경찰의 과잉진압’이 아닌 ‘흑인시민에 대한 백인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미국이라는 국가의 태동 시기부터 누적된 인종차별에 대한 불만이 ‘플로이드 사건’을 도화선 삼아 폭발한 것이라고 분석한다.
때문에 미국은 물론 세계 대부분의 국가들은 이번을 인종차별 문제를 해결하는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유엔 인권이사회 회원국 47개국은 지난 20일 아프리카 국가들이 상정한 인종차별과 경찰의 만행을 규탄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한국 내에서도 동참 시위가 산발적으로 이뤄지고 있고, 지난 6일 서울 명동에서는 약 100명의 시민들이 추모 침묵 행진을 하며 플로이드를 애도하기도 했다. 다만 아직까지 한국에서는 ‘플로이드 사건’과 이로 인한 시위·폭동 등 문제의 심각성을 온전히 인지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흑인들의 태생적(?) 불법성, 미국 경찰의 강한 공권력 필요성 등을 두고 인터넷, SNS 등에서의 격한(?) 설전이 심심치 않게 관측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아마도 한국 내에서 한국인으로 살아가는 동안에는 인종차별 문제를 맞닥뜨리는 경우는 흔치 않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과연 이번 사건을 이렇게 인식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특히 미국 내 한국 이민자, 유학생 등은 ‘동양인 차별’ 문제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고, 본인들의 생활, 권리 등을 상당한 수준으로 침해당하고 있다고 호소한다. 이들이 각종 이민, 유학 관련 커뮤니티 사이트, 설명회 등에서 ‘당신이 꿈꾸는 파라다이스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라고 강조하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최근 한국인들의 이민, 유학 등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추세인 만큼 이들의 호소는 상황에 따라 우리 스스로가, 또는 우리의 가족, 친구 등이 어렵지 않게 직면하게 될 상황인 것이다. 때문에 인종차별 항의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이유는 인류애 등 거창한 대의명분을 떠나 지극히 현실적인 ‘우리의 삶’에 대한 문제다.
아울러 ‘우리의 삶’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한국 내 해외근로자, 이민자, 유학생 등에 대한 인식의 전환도 동반돼야 한다. 작금의 미국 상황을 보고 있자면 몇 년 전 난민유입 문제를 둘러싼 한국 내 논쟁상황이 연상된다.
차별은 인간과 사회를 규정하고, 통치하기 가장 쉬운 방법이긴 하다. 하지만 차별에 따른 반목, 갈등 등 상황이 지속될 경우 언제, 어디서, 누가 희생당할지 모르고, 종국적으로 사회, 인류의 파멸을 기인할 가능성이 높다. 순간의 편안함을 위해 불확실하고 위험한 사회로 가는 길을 멈추지 않는 것은 너무 어리석은 선택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