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이재용 부회장과 만남···내주엔 LG 구광모, 내달엔 SK 최태원
내연車 엔진에 해당하는 배터리···전장사업 등 폭넓은 교류도 기대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의 '총수들 만나기' 행보가 눈길을 끈다. 지난달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회동한 데 이어, 내주 구광모 LG그룹 회장과 조우한다. 최태원 SK그룹 회장과도 일정을 조율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르면 내달 중 만남이 가능할 것이란 게 재계의 전언이다.
19일 관련업계 등에 따르면, 정 부회장은 오는 22일 LG화학 오창공장 전기차 배터리 생산라인을 둘러볼 계획이다. 구광모 회장이 직접 현장에서 응대할 계획이다. 지난달 정의선 부회장과 이재용 부회장의 만남도 천안사업장에서 이뤄진 바 있다. 업계에서는 내달 정 부회장과 최태원 회장 만남이 성사될 경우 SK이노베이션 서산 배터리공장이 될 것으로 점친다.
정 부회장이 삼성·LG·SK 총수들과 잇따라 회동을 갖는 배경은 글로벌 완성차 업계의 행보와 다르지 않다. 전기차 시대가 본격 도래하면서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복수의 배터리 업체들과 공급계약을 체결하고, 특정 업체들과 배터리 합작사를 설립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LG화학이 GM과 배터리셀 합작법인 설립한 것이 대표적이다.
전기차·수소차·플라잉카 등의 상용화 계획을 품고 있는 현대차 입장에서도 배터리 밸류체인 구축은 핵심 과제 중 하나다. 최근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은 ‘3강 4중’ 업체들의 각축전이 전개되고 있다. LG화학이 CATL·파나소닉 등과 함께 ‘3강’을 이루고 있으며, 삼성SDI·SK이노베이션 등이 ‘4중’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현대차 입장에서 주요 배터리 업체들이 국내기업이라는 점은 북미·유럽 등의 경쟁사들에 비해 상당히 유리한 게 사실이다. 다른 완성차업체들과 달리 현대차 측은 국내기업으로부터 배터리를 공급받아 왔다. LG화학이 현대차에, SK이노베이션이 기아차에 주로 배터리를 공급해왔다. 최근 공개돼 내년 첫 출시를 앞두고 있는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 초도 배터리 납품은 SK이노베이션이, 2차 납품은 LG화학이 차지했다.
LG화학과는 배터리 합작법인 설립도 추진 중이다. 자연히 내주 구광모 회장과의 만남을 통해 양사의 배터리 합작사 설립이 급물살을 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그간 거래하지 않았던 삼성과의 협력도 두터워질 전망이다. 단순히 배터리뿐 아니라 삼성·LG 등의 경우 전장사업 강화에도 초점을 맞추고 있는 만큼 폭넓은 교류 또한 가능할 것이라고 업계 전반은 보고 있다.
‘배터리 총수들’과 정 부회장이 연속만남을 추진한 배경으로는 정부의 주문도 한몫 했을 것이란 평가도 있었다. 지난해 11월 산업통상자원부는 LG화학·삼성SDI·SK이노베이션 등과 함께 1000억원대 규모의 ‘차세대 배터리 펀드 결성과 공동 연구개발(R&D) 협력 양해각서’를 체결한 바 있다. 포스트 반도체라 불릴 만큼 시장성이 높은 배터리 분야에서 국가경쟁력 제고가 시급하다는 판단에서였다.
사실 상 국내 유일한 완성체기업인 현대차그룹 측에도 폭넓은 협력을 요구해 온 것으로 전해진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국판 뉴딜’을 추진하면서 전기차 육성에 적극 나서겠다고 밝힌 바 있다. 취임 3주년 연설에서도 전기·수소차 등 미래차를 3대 신성장분야로 지목한 바 있다. 자연히 정의선 부회장의 연속 총수회동으로 문재인정부의 사업추진에도 힘이 실릴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은 수직계열화를 바탕으로 계열사들의 힘으로 완성차 생산이 가능했던 기업이었지만 전기차 시대로 접어들면서 사정이 달라지게 됐다”면서 “전기차 원가의 40%를 차지하는 배터리는 내연차의 엔진에 해당할 정도로 핵심기술이며, 안정적인 배터리 수급을 위해서라도 배터리 업계 전반과 폭넓은 교류를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고 해석했다.
이어 그는 “최근 현대차는 한화큐셀과 에너지저장장치(ESS) 공동개발·사업 협력체계를 구축한 바 있는데, 전기차 배터리로 사용됐던 배터리를 ESS 배터리로 재사용 하는 방식의 사업모델을 한화그룹과 함께 추진하는 셈”이라며 “정 부회장은 라이벌·경쟁상대 등으로만 평가되던 기업들과 협력·상생을 펼치면서, 선대 회장들과는 사뭇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