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계기로 처음부터 조세 제도 리셋해야”
“부가세 면세 없애고 조세 감면 손 봐야”
정부의 확장적 재정정책으로 나랏빚이 늘자 증세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19일 안창남 강남대 경제세무학과 교수를 만나 국가 재정건전성의 현주소와 증세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안 교수는 당장 증세가 필요하며 코로나19를 계기로 세제를 처음부터 다시 손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코로나19로 막대한 재정이 투입되고 있다. 증세가 필요한 시점인가.
당연히 필요하다. 왜냐하면 보편적 복지를 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돈이 필요하고 그 돈을 마련하는 것은 세금이다. 증세가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한다면 현 세대는 복지혜택을 누리면서 비용은 차세대한테 넘기는 꼴이 되는 것이다. 비양심적이다. 복지를 받는 현 세대가 그에 상응하는 세금을 내서 국가 재정건전성 악화되지 않도록 하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이다.
증세 시기는 언제가 돼야한다고 보나.
지금이 적기다. 보편적 복지를 하려면 보편적 증세로 가야하는 것이 맞다. 당장 세율을 인상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증세가 반드시 세율 인상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세제를 국제적 수준에 맞도록 조정해서 세수가 더 들어올 수 있도록 하면 된다. 코로나19로 우리나라 사회가 리셋되는 상황에서 세금과 세제도 다시 리셋을 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국민들이 증세로 겁먹을 정도는 아닐 것이다. 세무 행정이라든지 세무 제도를 고쳐도 상당한 세수가 들어올 수 있다.
세부적으로 어떤 세목부터 손봐야 하나.
부가가치세부터 손질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부가가치세를 유럽 모델로 도입했는데 우리나라에는 부가세 면세 분야가 너무 많다. 쌀, 콩, 수산물 이런 것들이 다 부가세 면세 대상이다. 이런 것들을 유럽에서는 과세한다. 부가가치세 면세 기준 논거 중 하나가 세금 부담의 역진성을 막기 위해서인데 즉, 쌀을 부자도 먹고 가난한 이들도 먹으니 형편이 좋지 않은 이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인데 이제는 이런 논의가 의미가 없다. 부가가치세에서 면세로 돼있는 것을 과세로 돌리는 것은 유럽식 부가가치세의 기초이기도 하다. 그렇게 되면 국제적인 수준으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 면세 항목을 과세로 전환하되 낮은 세율을 부과하면 충격을 최소화하면서도 세수를 증대시킬 수 있다.
어느 정도 세수가 늘어날까.
면세였던 항목에 10% 과세를 적용하면 20조원, 5%를 적용하면 10조원 정도의 세수가 확보될 것으로 보인다. 10조원은 우리나라 전 국민에게 100만원의 지원금을 지급하는데 소요되는 재원 규모다. 증세에 대한 논란을 일으킬 것이 아니라 부가가치세 체계를 국제 수준에 맞춘다고 생각하면 된다.
다른 세수 확보 방안도 있나.
우리나라에는 조세 감면도 너무 많다. 4차산업혁명을 위해 필요한 분야는 적극적으로 조세를 감면하는 반면 그렇지 않은 분야는 감면을 과감하게 없애야 한다. 불필요한 조세 감면을 배제하는 것만으로도 세수 10조원을 확보할 수 있다. 앞서 말한 부가가치세 면세 제외와 조세 감면 배제를 통해서 연간 20조원정도의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 당장 모두 진행하기는 어렵겠지만 점차적으로 진행하면 세율을 올리지 않고도 20조원 정도는 마련할 수 있는 셈이다. 그 재원을 갖고 지금 논의되고 있는 기본소득이나 고용보험 비용 등을 충당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처럼 재원 확보 방안 없이 정책만 펼치게 되면 10년 안에 나라가 망할 수밖에 없다. 세입을 계산하면서 정책을 펼쳐야 하는 것이다.
과거에 비해 현재 세수가 많이 줄었나.
올해 세수가 지난해 대비 5~10%정도 줄어들 것 같다. 세금이라는 것은 국제적인 거래가 활발해야 늘어날 수 있는데 국경을 막아 특히 세수에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코로나19가 계속된다면 더욱 부정적인 전망이 나올 것이다. 1997년 IMF 외환위기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우리나라가 잘 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전 세계가 동일한 문제를 겪고 있고 교역량이 줄어들면서 더 큰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증세 추세인가.
전 세계가 코로나19로 다들 정신이 없다. 정치쪽에서는 증세를 하지 않으려고 한다. 증세는 득표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증세한 나라치고 재선에 성공한 나라가 별로 없다. 그렇다고 우리가 미국과 일본, 중국을 따라갈 수는 없다. 이들은 국제외환시장에서 금융거래나 국제결제에서 중심이 되는 기축통화다. 한국 돈은 그렇지 못하다. 미국와 일본, 중국이 증세를 논의하지 않는다고 해서 한국도 불필요하다는 시각은 근시안적인 접근이다.
조세 정책에도 뉴노멀이 생길까.
당연히 생길 것이다. 빅데이터를 활용하면 제도권 밖에 있었던 납세자들을 찾을 수 있고 이들 데이터를 활용하면 새로운 세원이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빅데이터를 활용한 세원 관리만 잘해도 어느 정도 세수가 확보될 것이다. 세제도 그와 같은 형태로 전환돼야 할 것이다.
국민들 반발이 심하지 않을까.
그러니까 리셋을 해야 하고 뉴노멀을 해야 한다. 코로나19 사태를 겪는 과정에서 기존 논의나 화법을 엎고 다 새롭게 해야 한다. 합리적인 순수한 정책을 펼쳐야 한다. 페이고(Pay as you go) 원칙에 입각해 수입의 범위 안에서 지출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세금의 범위 안에서 복지가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다.
증세가 되고 세제가 제자리를 찾으면 소득재분배가 되나.
확실히 소득 재분배가 될 것이다. 많이 번 사람이 세금을 많이 내고 조금 번 이들이 조금 내게 될 것이다. 특정 기업과 특정 상위 계층에 세금을 과감하게 부과하면 소득이 재분배된다.
향후 우리나라 조세정책 방향은.
우리나라 조세정책은 복지정책과 같이 가야 한다. 우리나라가 고복지를 주장한다면 그만큼 세금을 더 거둬야 하고 중복지를 지향한다면 지금 정도면 된다. 복지수준 낮춘다면 세금 부담도 낮춰야 한다. 고복지를 원하는데 세금을 덜 내겠다는 것은 그릇된 심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