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여당 주도 CVC 논의 본격화···홍남기 “CVC ‘제한적 보유’ 방안, 7월 중 마련”
20대 국회 당시 ‘금산분리 원칙 훼손’ 반발···투자 활성화 위한 규제완화 기류로 급변
與 ‘공정거래법 개정안’ 중심 검토 활발···대기업·재벌 일가 등 악용 우려 목소리 여전

'코로나19 사태'로 경제가 침체되면서 정부여당을 중심으로 대기업의 기업형 벤처캐피탈(CVC) 허용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코로나19 사태'로 경제가 침체되면서 정부여당을 중심으로 대기업의 기업형 벤처캐피탈(CVC) 허용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부·여당이 기업형 벤처캐피털(Corporate Venture Capital, CVC) 관련 논의를 본격화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경제가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스타트업·벤처기업 등에 대한 ‘수혈’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이 수면 위로 오르고 있는 것이다.

CVC는 대기업이 자체적 자금을 스타트업·벤처기업 등에 투자하는 방식으로, 자본, 대기업 인프라 등 종합적인 투자를 한다는 점에서 일반 벤처캐피탈(Venture Capital, VC)과 차이가 있다.

대기업은 CVC를 통해 스타트업·벤처기업 등을 지원하고, 향후 사업에 필요하다고 판단될 시 인수합병(Mergers & Acquisitions, M&A)을 통해 시너지를 내는 방식이다. 대기업은 ‘M&A 후보군’을 사전에 확보해 신기술 등 개발‧연구 등의 시간, 비용 등을 절감할 수 있고, 스타트업·벤처기업 등은 대기업의 자금 투자와 인프라·네트워크 등을 활용해 크게 성장할 수 있다.

미국, 중국 등 국가에서는 CVC를 통한 M&A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지만, 한국의 경우 ‘금산분리 원칙’에 따라 일반지주회사의 CVC 운영이 불가능해 투자 규모가 상대적으로 크게 작은 상황이다.

◇21년 지켜온 ‘금산분리 원칙’···정부, 훼손 최소화 위한 ‘제한적 허용’ 검토

현재까지 한국에서는 대기업의 CVC 허용은 금산분리 원칙이 훼손될 가능성이 높다며 부정적인 기류가 강했다. 20대 국회에서도 사실상의 CVC인 ‘벤처지주회사’를 대기업이 보유할 수 있게 하고, 스타트업·벤처기업 등을 손자회사로 들이는 ‘공정거래법 전부개정안’이 제출된 바 있지만 반발에 부딪혀 자동폐기됐다.

이와 같은 기류가 최근에 바뀐 것은 ‘코로나19 사태’가 결정적인 것으로 보인다. 경제 침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스타트업·벤처기업 등의 역할이 중요하고, 현재와 같은 공적자금 지원 방식에도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11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6차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회의’에서 “벤처투자 확대를 통한 벤처 생태계 강화를 위해 일반지주회사의 CVC 제한적 보유 방안을 7월 중에 마련해 발표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금산분리 원칙의 훼손을 최소화하는 수준의 규제완화를 통해 스타트업·벤처기업 등에 대한 투자가 활성화되도록 견인하겠다는 구상인 것이다.

기획재정부, 중소벤처기업부, 공정거래위원회 등 관련 정부부처들도 대기업의 CVC 제한적 허용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여러 방안을 놓고 검토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자회사 비율, CVC의 영업 범위, CVC 펀드 결성 시 민간자본 포함 여부 등 세부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아직 결정이 나지 않은 상황이고, 향후 논의 과정에서 합의점을 찾지 못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또한 정부는 대기업의 CVC 제한적 허용 문제를 국회와 논의하며 판단하겠다는 방침이다. 지난 11일부터 입법예고에 들어간 공정거래위원회의 ‘공정거래법 전부개정안’에 해당 내용이 빠진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6차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를 주재하고, 일반지주회사의 CVC 제한적 보유 방안을 7월 중으로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6차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를 주재하고, 일반지주회사의 CVC 제한적 보유 방안을 7월 중으로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與 “CVC 설립 위한 규제완화 필요”···“감시·처벌 강화 등 법안으로 부작용 불식”

이에 발맞춰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대기업의 CVC 허용 내용을 담은 법안 발의에 속도를 내고 있다. 김병욱‧이원욱 등 민주당 의원은 각각 지난 5일과 8일 VC를 금융업으로 보지 않는다고 규정함으로써 일반지주회사가 VC 주식을 보유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지난 9일 국회에서 열린 ‘CVC 활성화’ 토론회에서 김 의원은 “정부의 재정 투입 외에도 대기업이 투자를 잘 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도 정부의 역할”이라며 “CVC 설립을 위한 규제 완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이어 “금산분리 원칙이 만들어진 이유는 재벌의 사금고화나 산업자본 위기의 금융전이 우려에서 시작됐지만 지금은 그 우려가 해소되고 있다”며 “인터넷은행 특별법처럼 부작용과 우려를 막을 수 있는 방안을 찾을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 의원 또한 “현재 부동자금 1100조가 투자할 데가 없어서 시중에 떠돌고 있다”며 “지나친 규제로 자금이 생산적인 곳으로 가지 못하는 점을 개선하기 위해 CVC 설립을 허용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대기업의 CVC를 허용하되, 적격성 심사 등은 강화한다면 우려되는 부작용을 막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아울러 현재 일반지주회사 체제가 아닌 대기업의 CVC 운영 과정에서 문제점이 적발되지 않았고, 입법과정에서 대기업 CVC에 대한 감시, 처벌 등 강화 내용을 촘촘히 마련하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는 인식이다.

◇총수일가 재산증식·편법승계 등 우려 목소리···부실경영·불명확한 출자구조 등도 지적

이와 같이 정부·여당이 대기업에 CVC를 허용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고 있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대기업의 CVC 허용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이들은 대기업이 CVC를 문어발식 확장, 총수일가 재산 증식, 편법 승계, 과도한 지배력 행사 등에 악용할 소지가 높다고 지적한다.

대기업 총수일가가 지분을 소유한 계열사‧투자사에 자본, 일감 등을 몰아주는 ‘터널링(Tunneling)’을 통해 몸집을 불릴 수 있고, 약 20년 동안 지켜온 금산분리 원칙을 깰 경우 대기업의 문어발식 확장 등으로 인해 전체 그룹이 부실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들은 대기업에 CVC가 허용되면 현재 자기자본 중심으로 자회사의 지분율을 엄격히 규정해 출자구조가 명확한 일반지주회사 체제의 장점이 훼손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그룹 계열사를 포함한 외부 자금의 투자로 출자구조가 재차 불명확해 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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