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 위원장 과거 판결, 칼럼, 인맥 등 논란 키워
법조계 “외관 중요”···검찰·삼성 여론 추이 보는 듯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과 관련 수사 타당성과 기소 여부 등을 심의할 대검찰청 검찰수사심의위원회(수심위)의 양창수(68·사법연수원 6기) 위원장에 대한 적격성 논란에 휩싸였다.
대법관 출신인 양 위원장이 과거 삼성의 또 다른 경영권 승계사건인 ‘에버랜드 전환사채(CB) 헐값 발행’ 사건에서 무죄 취지의 다수의견을 제시한 전력에다 최근 한 신문 칼럼에서 이 부회장을 옹호하는 견해를 드러낸 탓이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외관의 공정성을 이유로 양 위원장 스스로 이 사건 심의를 회피하거나, 검사 또는 신청인(이 부회장 등)이 기피 신청을 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15일 법조계에 따르면 양 위원장은 지난 2009년 5월 대법관 시절 삼성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에버랜드 CB 헐값 발행 사건에서 기소된 이건희 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그는 당시 대법원 2부(주심 김지형 대법관) 재판장이었다. ‘저가 발행으로 인한 기존 주주 소유 주식의 가치 하락은 해당 주주의 손해일 뿐, 회사의 손해가 아니므로 경영진에게 배임죄를 물을 수 없다’는 삼성 측 주장을 받아들였다.
양 위원장은 지난달엔 한 언론사에 삼성 총수 일가의 경영권 승계를 두둔하는 취지의 칼럼을 기고했다. 기고 글에서 그는 이 부회장의 대국민 사과와 관련해 “아버지가 기업지배권을 자식에게 물려주려고 범죄가 아닌 방도를 취한 것에 대해 승계자가 공개적으로 사죄를 해야 하는가?” “행위의 당사자도 아닌데 자식이 사과를 할 것인가?”라고 주장했다. 경영권 승계가 합법적이었다는 것과 함께 불법이더라도 이 부회장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시각을 노출한 것이다.
양 위원장은 이 부회장의 핵심 공범 중 한 명으로 지목된 최지성 전 삼성 미래전략실장과 고등학교 동창 사이이고, 그의 처남은 삼성그룹 계열사인 삼성서울병원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검찰청 예규인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운영지침에 따르면 ‘심의대상 사건의 관계인과 친분관계나 이해관계가 있어 심의의 공정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 현안위원에 대한 회피나 기피 신청이 가능하다. 위원장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양 위원장의 과거 판결, 칼럼에서 드러난 그의 시각, 지인관계 등은 심의의 공정성에 영향을 미친다고 볼 가능성이 있다. 현안위원이 아닌 위원장에 대한 회피 또는 기피신청이 있는 경우에는 다만 위원 중 임시 위원장을 뽑아 과반으로 허가여부를 의결해야 한다.
검찰은 현재까지 기피 신청에 대한 입장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 위원장에 대한 기피신청을 한 선례가 없고, 운영지침에 대한 해석을 놓고 고심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이 양 위원장에 대한 기피 신청을 하더라도 위원들의 수용가능성과 여론 또한 검토해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양 위원장 스스로 회피를 하거나 이 부회장 등 삼성 측이 먼저 회피 신청을 하면 사안이 쉽게 풀릴 것이라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신청 당사자인 삼성 측도 말을 아끼고 있다. 운영지침에 따르면 심의대상 사건의 주임검사 뿐만 아니라 신청인(이 부회장 등)도 기피신청을 할 수 있다. 다만 내부에서는 양 위원장과 신청인들의 인맥 또는 관계가 ‘심의의 공정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의견이 나온다. 또 의결권이 없는 위원장에 대해 지나치게 여론이 몰리는 것에 대해 부담된다는 말도 나왔다.
대검찰청 검찰개혁위원회 위원을 지낸 김한규 전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변호사)은 “아무리 조그만한 조직이라도 중요한 결정을 할때에는 절차 하나 하나를 신경을 쓴다. 결과가 아무리 타당해도 절차가 오염되면 그 결과에 대한 신뢰를 담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며 “이미 관련 사건에 대해 선입견을 드러냈을 뿐만 아니라, 피의자 중 한명과 고등학교동창이라면 회피하는 것이 맞는다”고 주장했다. 그는 “(양 위원장 스스로) 외관의 공정성이 얼마나 소중한 가치라는 것을 잘 알 것이라 믿는다”고 덧붙였다.
양 위원장은 현재까지 아무런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시사저널e는 양 위원장에게 전화를 하고 문자를 남겼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