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확산에도 현장 출근···방역용품 반입 어려운 경우 많아
지난달 25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UAE에서 일 하고 있는 해외 근로자들 제발 좀 살려주세요…’라는 청원글이 올라 왔다. 청원인은 아랍에미리트(UAE)에 파견된 국내 건설 소속 직원의 한 가족이었다.
이 청원인은 해외 근로자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인해 공포와 불안에 떨고 있다며 정부에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그는 “‘신랑이 일하고 있는 현장은 괜찮을까?’ 생각하면 진짜 남은 가족들이 정신병에 걸릴 것 같다. 저는 지금 신랑이 직장에서 잘려도 되고, 지금까지 우리 가족을 위해 고생했으니 지금부터는 무슨 일을 하던 제가 우리가족을 먹여 살린다는 각오로 한 자 한 자 글을 적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중동 지역에선 코로나19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선 확진자수가 10만명을 넘어섰고, 이라크에선 한 주 만에 확진자수가 2배 가까이 늘었다. 다른 중동 지역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많은 중동 국가들이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지역 봉쇄나 이동금지령을 내렸다. 이에 따라 중동에 파견된 근로자들은 물론 가족들까지 불안감에 휩싸였다.
중동 18개국에는 우리기업 194개사의 313개 건설현장이 있고 국민 5625명이 파견 근무 중이다. 중동 현지에서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한국인 근로자는 한 달 전까지만 해도 0명이었다. 하지만 최근 60명을 넘어서는 등 확진자수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중동에 위치한 대다수 건설 현장에선 강화된 방역 대책이 가동되고 있지만, 일부는 여전히 열악한 환경에 놓여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 그동안 건설사들이 현장에 마스크와 소독제 등 방역 용품을 들여와 코로나19 예방을 위한 조치를 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구하기 어렵거나 반입이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파견 기업 중 중소·중견 기업의 경우 상황이 더 열악하다.
현장에서 코로나19가 확진자가 발생할 경우 근로자들에게 이뤄지는 조치는 숙소 격리가 전부다. 또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려도 발주처가 공사 중단을 하지 않는 이상 근로자들은 현장에 계속 나가야 한다. ‘현장-숙소-현장-숙소’의 반복이다. 건설사들도 공기를 맞추지 못하면 막대한 지체보상금을 내야하기 때문에 공사를 중단할 수도 없다. 이에 따라 근로자들의 불안감은 나날이 고조되고 있다.
문제는 코로나19에 감염된 이후다. 한국과 달리 중동 지역의 의료 환경은 열악한 실정이지만 건설사들은 근로자가 코로나19에 감염됐을 경우 현지 의료기관에서 치료를 받도록 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 UAE에선 국내 건설사 소속 50대 남성 한국인 주재원이 코로나19로 현지에서 사망했다. 이 남성은 평소에 건강했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안타까움을 더했다.
우리 국민 중 확진자가 급증하자 정부도 부랴부랴 움직이는 모습이다. 외교부는 지난 2일 관계부처와 중동에 인력을 파견 중인 국내 건설사 10곳과 함께 합동회의를 열고 중동 내 근로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섰다. 회의에 참석한 건설사들은 방역 용품 반입 지원 등을 주로 건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방역용품만으로 근로자들과 그 가족들의 불안감을 해소하기엔 부족하다.
정부와 회사는 코로나19가 확산된 중동 국가에 공사 중단을 적극 요청할 필요가 있다. 아니면 당분간 불안을 호소하는 근로자들을 전세기에 띄우는 등 근로자들이 귀국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또 현재 해외에 파견된 근로자들의 가장 큰 불만은 소외감이다. 코로나19에 대한 공포와 우려가 고조에 달하고 있지만 정부와 회사 모두 자신들을 방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안전이 최우선이라는 생각으로 타지에서 애쓰고 있는 근로자들과 그들의 가족이 안심할 수 있는 대책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