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보상태 십 수년 째···협의과정 패싱 후 착공시기 공지에 뿔난 당사자들
부동산 업계에 뜨거운 감자로 급부상한 이슈가 있다. 서울시가 지난 주말 기습 발표한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 개발이다. 해묵은 과제이지만 평당 1억 원 수준의 금싸라기 땅에 어울리지 않는 판자촌 개선 사업이니 관심을 두는 이도 많다. 시는 오는 11일 구룡마을 도시개발사업에 대한 실시계획을 인가 고시하고 토지보상을 거쳐 2022년 착공, 2025년 완공한다는 계획이다. 약 4000세대 규모의 대단지는 100% 공공임대 아파트로 운영된다.
그런데 구룡마을과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이들 상당수는 주거환경 개선사업을 반기지 않는다. 보통체격의 성인 남자가 힘 줘 치면 허물어져 버릴 법한 허름한 집 대신 주변을 깨끗이 정돈하고 새 아파트에 살게 해준다는데 말이다. 구룡마을 거주민은 금방이라도 큰일을 낼 듯 새빨간 글씨의 띠를 머리에 둘러싸고 투쟁을 한다. 구룡마을 앞에서 분양을 앞두고 있는 개포주공1단지 주민도 심기가 불편해 보이는 건 마찬가지다.
이쯤 되면 무단점거로 오랜 세월 구룡마을에 살아온 사람들에게 집을 줘야할지 말아야 할지는 두 번째 문제다. 관계자 다수가 반기지 않는 방식을 행정으로 처리하겠다고 주말에 기습 발표한 서울시의 다듬어지지 않은 태도가 문제다. 실제 구룡마을 주민협의체에 따르면 시는 개발 등 이주 관련 사항을 결정하기 전 임대일지 소유일지 여부 등을 협의체와 상의하겠다고도 했지만, 이들은 언론을 통해 이번 계획이 발표되기까지 소식을 전혀 듣지 못했다는 입장이다.
구룡마을 토지 90% 가량은 국가나 지자체 소유가 아니다. 토지주 500여 명이 따로 있다. 이들은 거주민과는 별개이기 때문에 지주들과 협상해야 해야 한다. 보상은 녹지지역으로 인정해 종전자산평가로 할 계획이라는데, 일반분양이 없으니 수익이 없을 테고 지가를 높게 쳐줄 수도 없을 것이다. 다만 인근에 평당 1억 원을 웃도는 아파트에 고급주거단지의 대명사인 타워팰리스 등이 있는 곳에서 서울시의 평가액을 토지주가 받아들일지도 의문이다. 물론 분양권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구룡마을 거주민과도 합의를 거쳐야 한다. 3선을 하는 동안 해결하지 못한 일을 2년 안에 한다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할지 의문이다. 누군가는 협의하지 않고 2022년 착공한다고 계획안을 내놓은 이유가 있지 않겠나라며 정말 계획대로 추진된다면 제2의 용산참사가 나오지 말라는 법도 없다고 혀를 내두른다.
물론 직접적인 이해당사자가 아닌 제3자 상당수는 구룡마을 개발계획 뉴스를 반긴다. 때문에 업계에서는 실행 가능성과는 별개로 정부정책 기조가 영구임대 늘리고 서민을 위한 계획안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파급효과가 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2022년 유력한 대선 후보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이해당사자와 협의를 거치지 않고 뜬금없이 구룡마을 개발계획이 발표된 것에 다수가 의문을 품는 이유이기도 하다.
속도를 내서 구룡마을을 개발하려는 진정성이 있다면 행정 관계자들은 구룡마을 앞을 한번만 지나가 보기를 바란다. 덕지덕지 붙은 플래카드만 봐도 그들이 어떤 각오인지 알 수 있다. 기왕 할 업무라면 이해당사자와 협의를 거쳐 조금 더 세심하고 정교하게 계획을 세우는 과정을 거치길 바란다. 오해를 벗어던지고 사회적 공론화와 토론을 통해 더 나은 답을 찾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