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금리, 제로금리에 근접···이주열 “금리 이외의 모든 정책 수단 활용”
국고채 매입·선제 지침 등으로 장기금리 하락 유도···“회사채 직접 매입” 주장도
한국은행의 비전통적 통화정책 시행이 기정사실화됨에 따라 가용수단과 기대효과 등에 대한 다양한 분석들이 나오고 있다. 기준금리가 제로금리에 근접해 사실상 금리 정책의 여력이 소진된 상황에서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침체 국면이 이어지자 전문가들 사이에서 비전통적 통화정책에 대한 요구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이에 이주열 한은 총재 역시 모든 가용수단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현재 가장 유력시되는 방안으로는 국고채 매입이 있으며 선제 지침도 대안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일각에서는 한은이 정부와 함께 준비 중인 회사채 매입 역시 대규모로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한은 기준금리 인하 사실상 종료···경제전문가 “비전통적 통화정책 필요”
지난달 28일 한은 금통위가 기준금리를 0.75%에서 0.50%로 0.25%포인트 인하한 후 이주열 한은 총재는 “이번 인하로 기준금리가 실효하한 수준에 가까워졌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금리 정책의 여력이 사실상 소진됐다는 시장의 평가를 어느정도 시인한 답변이다.
기준금리 인하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경기부양 효과가 줄어들자 자연스럽게 한은 통화정책의 무게중심은 ‘비전통적 정책’으로 옮겨가고 있다. 이 총재 역시 “금리 이외의 모든 정책 수단을 테이블 위에 올려 놓고 적절히 활용해 통화정책을 운용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경제전문가들도 한 목소리로 비전통적 통화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나섰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최근 ‘2020 상반기 경제전망’을 통해 “가급적 이른 시기에 기준금리를 최대한 인하한 후 비전통적인 통화정책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며 “기준금리 인하만으로는 경기 회복과 물가상승률 안착에 불충분할 가능성이 높으므로 향후 국채 매입을 비롯한 비전통적 통화정책 수단도 적극 동원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지난달 28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한국금융학회·금융연구원·한국은행 경제연구원의 정책 심포지엄에 참석한 장민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역시 “양적완화, 선제적 지침 등 비전통적 통화정책 활용을 적극 검토하고 필요시 통화정책운용규정 등을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비전통적 통화정책은 전통적 통화정책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국가별 중앙은행들이 사용하기 시작했던 다양한 정책들을 지칭한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의 전통적 통화정책은 물가안정 달성에 중점을 두고 익일물 등 단기금리를 통화정책의 운용목표로 했다.
반면 비전통적 통화정책은 금리 이외의 다른 수단 등을 이용해 경기변동을 조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제로금리 하에서 비전통적 통화정책의 목표는 확장적 통화정책을 유지해 장기금리 하락을 유도하는 것이다.
한은은 비전통적 통화정책을 “정책금리가 제로 또는 실효하한에 도달했거나 파급경로가 현저히 훼손된 상황에서 금융안정 회복과 경기침체 방지를 위해 중앙은행이 ‘단기시장금리를 실효하한 수준으로 유지하는데 필요한 규모’ 이상으로 통화량을 공급하거나 위험도가 평상시보다 크게 높아진 자산을 매입하는 조치”로 정의하고 있다.
◇유통시장 통한 국고채 매입 유력···선제 지침 등 대안도 거론
비전통적 통화정책의 수단은 크게 양적완화와 선제적 지침 두 가지로 구분된다. 양적완화는 중앙은행이 국채와 더불어 모기지 증권, 주식 등 민간 금융자산까지 매입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은이 조만간 시행할 것으로 예상되는 국고채 매입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 총재는 국고채 매입과 관련해 “국고채 발행규모 증가로 인해 수급불균형이 확대되면 시장안정화 차원에서 국고채 매입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국고채 매입 등 양적완화 조치는 기간스프레드(채권의 만기가 길어지면 생기는 가산 이자)와 위험스프레드(채권의 부도위험에 따라 발생하는 가산이자)를 낮춰 장기금리를 하락시킨다. 장기금리 하락은 소비와 투자 촉진으로 이어진다. 한은의 국고채 매입은 시장안정화를 목적으로 하고 있어 주요국의 양적완화와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결국 자산매입 확대라는 점에서 국고채 매입은 이른 바 ‘한국형 양적완화’의 시작이 될 것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다만 이 총재는 국고채매입 규모와 시기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양적완화는 ▲이자소득 감소 ▲연금가치 감소 ▲인플레이션 발생 등의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기 때문에 한은은 시장 상황에 따라 비정기적으로 국고채를 매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앙은행의 독립성과 신뢰도를 훼손시킬 수 있는 국고채 직접 매입을 고려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진다. 중앙은행이 정부가 발행하는 국채를 유통시장이 아닌 발행시장에서 매입할 경우 중앙은행은 정부의 돈주머니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 이 총재는 역시 “직접인수나 발행시장에서의 매입보다는 유통시장에서의 매입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국고채 매입 이외의 수단으로 ‘선제 지침’(Forward Guidance)을 시행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선제 지침은 중앙은행이 미리 통화정책 운용 방향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커뮤니케이션 방법이다. 이를 통해 중앙은행은 미래 경제상황에 대한 경제주체의 기대형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쉽게 말해 현재의 저금리가 장기간 유지될 것이라는 신호를 시장에 전달해 장기금리 하락을 유도하는 것이다.
다만 선제 지침의 경우 ▲중앙은행의 신뢰성 훼손 ▲민간의 정보의존도 심화 ▲정책 대응 지연 ▲시장 혼선 등의 부작용을 초래할 위험이 있기 때문에 보다 신중하게 시행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일각에서는 현재 한은이 특수목적법인(SPV) 설립을 통해 준비하고 있는 회사채 매입의 규모를 확대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오고 있다. 한은과 정부는 저신용 등급을 포함한 회사채와 기업어음(CP)을 사들이는 SPV를 10조원 규모로 6개월간 한시적으로 가동할 예정이다. 이미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동일한 방식으로 회사채를 매입해 민간 기업에 직접 유동성을 공급하고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현재 한은의 정책 수단 중 가장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회사채 직접 매입”이라며 “한은이 회사채를 직접 매입하게 되면 금융기관을 거쳐서 매입하는 방식보다 안전하고 확실하게 부실위기 기업들을 살리고, 코로나19로 인한 시장 충격을 흡수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국고채 매입의 경우 현재 위기에 놓여있는 기업들의 경영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며 “한은이 기업의 경영환경을 진정시킬 수 있을 수준으로 회사채를 대규모 매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또한 그는 “(회사채 매입은) 산업리스크에 노출돼 있는 기업들을 중심으로 이뤄져야할 것”이라며 “지금까지 사실 한국은행은 수동적 정책기능만을 해왔지만 이번에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