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행, 디스커버리펀드 피해금 일부 선지급 방안 검토중
하나은행, 이탈리아 펀드 투자원금 50% 가지급 보상
“선제적 보상, 원칙에 위배돼···감독당국의 압박 작용한 것으로 보여”

(왼쪽부터) 하나은행 본점과 기업은행 본점/사진=각 사
(왼쪽부터) 하나은행 본점과 IBK기업은행 본점/사진=연합뉴스

지난해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로 논란이 일었던 해외 투자 사모펀드에 또다시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판매사인 은행들은 고객 불만 관리 차원에서 투자자에게 원금 일부를 돌려주는 방안으로 상황을 무마하려는 가운데 일각에선 이러한 은행들의 선제적 보상방안 마련이 금융당국의 무언의 압박에 의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8일 금융권에 따르면 IBK기업은행은 지난해 환매가 중단된 디스커버리자산운용의 펀드 투자자들에게 투자원금 중 일부를 선지급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은행은 2017년 4월부터 디스커버리 자산운용의 펀드를 총 5800억원 판매했다. 이 중 ‘US핀테크글로벌채권’ 펀드는 미국 운용사인 DLI가 수익률과 실제 가치 등을 허위로 보고한 사실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에 적발되면서 지난해 4월부터 환매가 중단됐다.

환매가 중단된 US핀테크글로벌채권 펀드 판매잔액은 695억원이며, 현재 200여명의 투자자가 피해를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은행은 투자자들의 원금 중 일정 비율을 먼저 투자자들에게 지급한 뒤 미국 현지 실사 등을 거쳐 자산 회수가 이뤄지면 최종 손실률에 따라 나머지 투자금을 투자자들에게 지급하는 방식을 고려 중이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선지급에 대해 검토 중인 상황이며 이달 중 이사회를 열고 최종 선지급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하나은행도 지난 24일 이탈리아 헬스케어(보건) 사모펀드의 손실이 예상되자 해당 사모펀드 가입 고객을 대상으로 투자원금의 50%를 가지급금으로 선지급하고 추후 정산하는 선제적 보상 방안을 내놓은 바 있다.

해당 펀드는 이탈리아 병원들이 지방정부 산하 지역보건관리기구(ALS)에 청구하는 진료비를 유동화한 채권에 투자하는 펀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해당 지방정부의 재정난으로 기초자산인 매출채권의 회수 가능성이 예상보다 낮아지면서 펀드의 상환이 지연됐다.

보상 대상이 되는 펀드는 총 1100억원 규모이며 우선 투자원금의 50%를 하나은행이 고객에게 미리 지급하고, 향후 해당 수익증권의 투자자금이 회수되면 가지급금을 차감한 후 정산하겠다는 계획이다.

은행들이 이처럼 선제적 보상방안을 내놓는 이유는 고객 민원 방지와 함께 과거 DLF 사태처럼 상황을 확대하지 않고 무마하기 위한 의도가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선 은행이 이처럼 선제적 지급에 나선 배경에 금융당국의 과도한 개입이 작용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소비자 보호라는 명목 아래 금융당국이 금융사와 투자자 간 사적 조정에 대해 무언의 압박을 넣고 있다는 주장이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소비자 보호도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원칙에 입각한 제재와 보상이 진행돼야 한다. 선제적 보상을 진행하는 건 감독당국으로부터 금융사가 보이지 않게 압력을 받는 게 아닌가 싶다”며 “소비자 불만이 발생하면 감독당국이 분쟁조정을 통해 불완전판매 여부 등 잘잘못을 명확히 가리고 제재와 보상을 절차대로 진행해야 되는데, 지금은 원칙에 벗어난 사적 해결을 조장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은행의 선제적 보상 방안은 원칙에서 벗어난 편법적인 처리 방식”이라며 “이렇게 되면 향후 금융시장에 잘못된 선례를 남겨 시장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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