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협의회에서 제주항공 언급하며 구조조정 불가피하다고 밝혀”

27일 이스타항공 조종사노조는 서울 강서구에 위치한 이스타항공 서울본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시사저널e

이스타항공 사측과 직원들의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구조조정 방안을 두고 지속적으로 양측이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인데, 일각에선 갈등의 대상이 제주항공으로 옮겨붙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스타항공 조종사노조는 27일 서울 강서구 이스타항공 서울본사 앞에서 ‘이스타항공 정리해고 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조종사노조는 “사측이 정리해고 명단을 통보한다고 한다”면서 “코로나19로 인한 정리해고가 아닌 이스타항공 오너일가와 애경-제주항공의 거래 과정에서 막대한 이득을 챙길 심산으로 실시하는 정리해고”라고 설명했다.

박이삼 이스타항공 조종사노조 위원장은 “사측은 정리해고 계획을 세워놓고 4월 한 달 동안 형식적인 노사 협의를 진행해왔다”면서 “근로기준법이 노사 협의를 통해 정리해고를 피할 방법을 논의하라고 정하고 있음에도 이를 무시했다”고 강조했다.

이전과 달리 제주항공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도 터져 나왔다. 공정배 조종사노조 부위원장은 “제주항공 경영진은 이미 작년부터 이스타항공에 대해 현재 규모로 축소해 운영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면서 “그리고 축소 기준에 맞춰 이스타항공의 구조조정을 준비했다”고 지적했다.

조종사노조는 구체적으로 제주항공과 이스타항공의 인수 과정에서 양측이 구조조정 등에 대한 논의가 진행된 정황이 있다고 지적했다. 조종사노조 측은 “제주항공과 이스타항공의 인수 시점 전후로 항공기 운영 계획이 바뀌었다”면서 “구조조정, 정리해고 계획은 이스타항공이 매각되는 과정에서 수립됐고 코로나19 사태를 틈타 추진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항공안전관리시스템에 따르면 이스타항공은 올해 5대의 항공기를 반납했다.

기자회견 이후 제주항공이 이스타항공에 관여했다는 또 다른 근거가 있냐는 질문에 조종사노조가 속한 민주노총의 정원섭 조직국장은 “이스타항공 노사협의회에서 사측이 제주항공을 언급하며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고 말했다.

조종사노조의 발언에 대해 제주항공 측은 이스타항공의 구조조정에 대해 입장을 밝히기 어렵다고 답했다. 제주항공 관계자는 “(이스타항공 구조조정 등에 대해) 할 수 있는 말이 없다”며 말을 아꼈다.

제주항공은 지난달 2일 이스타항공 최대주주 이스타홀딩스와 인수를 위한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했다. SPA 체결 일정이 두 차례 미뤄진 뒤였다. 당시 업계에선 코로나19 여파를 근거로 양측이 구조조정 등에 대한 논의를 진행한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나왔다. 다만 SPA 계약서에 구조조정 관련 내용의 포함 여부는 확인되지 않는다.

이스타항공은 직원들에게 임금 지불도 하지 못할 정도로 경영 상황이 악화된 상태다. 이스타항공은 최근 공지를 통해 2월과 3월에 이어 4월에도 예정된 급여지급이 어렵다고 통보했다.

이스타항공은 지난해부터 본격적인 자본잠식이 진행되고 있다. 자본잠식은 기업의 적자 누적으로 인해 잉여금이 마이너스가 되면서 자본총계가 자본금보다 적은 상태를 말한다. 지난해 말 기준 이스타항공의 자본잠식률은 230%로 집계됐다. /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이스타항공 수익성 추세. /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이스타항공은 지난해 739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연이은 적자로 자본총계는 -632억원으로 전환돼 완전자본잠식에 빠졌다. 완전자본잠식은 기업이 적자가 지속돼 잉여금은 물론이고 납입자본금까지 까먹은 상태를 말한다.

이 같은 상황이 이어지자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례적으로 빠르게 제주항공과 이스타항공의 기업결합을 승인했다. 지난 23일 공정위는 자료를 통해 “이스타항공을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제7조 제2항에 따른 회생이 불가 회사로 인정해 같은 조 제1항의 경쟁제한적 기업결합 제한규정의 적용에 대한 예외를 인정했다”고 밝혔다. 제주항공은 지난달 13일 공정위에 기업결합을 신고했다. 앞서 기업결합심사 절차를 밟은 HDC현대산업개발과 아시아나항공은 공정위 접수 후 65일 만에 승인 받았다.

이스타항공 인수를 위해 남은 절차는 주요 국가 경쟁당국의 기업결합 승인과 주식 납입 잔금 지불뿐이다. 제주항공은 태국, 베트남에서 기업결합 승인을 받아야 한다. 제주항공 관계자들에 따르면 제주항공은 해당국 로펌을 통해서 관련 절차를 밟고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정확한 승인 시점에 대한 예상은 어려운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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