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지출 비용 감축해 유동성 확보 목적···오너경영진 및 임원들 동참 러시
한수원·남양유업 직원들 독려하다 여론 뭇매···“소비위축 초래 가능성” 우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여파로 사정이 악화된 기업들 사이에서 ‘임금반납’이 확산되고 있다. 공기업·사기업 관계없이 월 고정 지출비용 중 큰 부분을 차지하는 인건비를 줄여 회사 유동성에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겠다는 취지다.
주로 상대적으로 높은 급여를 받는 오너·전문경영인(CEO) 그리고 임원들을 중심으로 임금반납이 이뤄진다. 개별 기업별로 반납을 실시하는 기간과 삭감 규모를 결정해 이를 행하는 상황인데, 일부 기업에서는 직원들의 자발적 참여를 독려하는 과정에서 잡음도 발생했다.
21일 재계 등에 따르면, 임금반납 확산은 코로나19에 따른 피해확산과 궤를 같이 한다. 공장가동이 멈추고 수출길이 막히며 글로벌 수요 등이 급감하면서, 피해업종에 따라 단계적으로 실시되는 추세다. 항공업계서 가장 먼저 실시된 이래, 호텔·백화점 등 유통기업들과 완성차업계로 번졌으며, 철강·중공업 등 후방산업들도 속속 확대될 조짐을 보인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수익노선들의 잇따른 운항 중단으로 일찍부터 임금반납에 나섰다. 대한항공은 부사장급 이상 임원들이 50%, 전무·상무급은 각각 40%·30%의 삭감에 나선 상태다. 사정이 더욱 열악한 아시아나항공은 사장이 임금 전액을 반납하고, 전 임원들은 사표를 쓴 상태서 정상화에 몰두하고 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필두로 주요 계열사 임원들이 자진해 급여 일부를 반납한다. 신 회장은 50% 삭감계획을 밝혔으며, 주요 계열사 임원들은 20%를 회사 재정에 보탤 계획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은 한 발 더 나아갔다. 일부 계열사가 아닌 전 계열사의 임원진들이 동참하기로 했다. 정의선 현대차 수석부회장을 포함한 51개 계열사 1200여명의 임원들은 전체 급여의 20%를 반납하기로 최근 결의했다.
한 재계 관계자는 “고위직들까지 나서 이 같이 움직이게 된 배경은 이번 코로나19 사태가 단순히 스쳐 지나갈 위기가 아니라는 인식이 확대됐기 때문”이라면서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2016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배치에 따른 중국의 보복조치로 촉발된 경제위기 당시에 실시되던 급여반납이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재발된 셈인데, 이에 버금가거나 당시보다 더욱 엄중한 경제위기 상황이라는 방증”이라 강조했다.
대부분 기업들이 임원들의 임금을 줄이는 데 회사 내부적으로 합의가 이뤄진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이 과정에서 직원들에게 자발적으로 임금삭감에 동참할 것을 요구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자발적이란 회사 권유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직장인이 얼마나 되겠느냐며 사실 상 강제성을 띤 모금운동 성격이 짙다는 볼멘소리가 나온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한국수력원자력과 남양유업이다. 한수원은 지난달 임원들뿐 아니라 일반 직원들의 자발적 임금반납을 실시했다. 부장급은 10~30%, 그 외 직원들은 1~30% 선에서 자발임금반납이 가능하다는 내용을 담은 공문을 발송했다가 반발을 샀다. 당시 노조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조직 특성 상 개별 직원들이 과연 자율로 받아들이겠느냐며 문제를 제기했다.
남양유업도 비슷하다. 이달 1일부터 긴축경영을 실시하면서 경비축소·급여반납 동의서를 배포한 것이 최근 논란이 됐다. 회사 측은 “의견을 취합하기 위함이었으며, 자발적 참여를 독려했을 뿐”이라 해명했다. 그럼에도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과 고위 경영진의 고통분담이 크지 않다는 또 다른 비판에 직면한 상태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코로나19와 같은 비상상황에 맞서 개별 회사들이 이를 극복하고, 고용유지를 꾀하기 위해 임금반납을 실시하는 것 자체가 나쁘다고 볼 순 없다”면서 “다만, 회사가 한시적으로라도 직원들의 임금반납 참여의사를 구하기 위해선 임직원과의 신의가 축적돼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코로나19 영향을 받지 않으면서 시류에 편승해 회사가 급여를 감축하려 하면 공감도 사지 못하고 바람직하지도 않을 것”이라면서 “임원들이 스스로의 임금을 깎으며 모범을 보일 수 있는 것은 소비여력이 있는 고액연봉자기 때문에 가능한 것인데, 그렇지 않은 일반 직원들의 경우 소비위축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