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금감원 권고안 불수용 신뢰 훼손 결과 낼 수 있어
10년 된 금융사고 해결하는 자세 필요
금감원 등 “배임은 키코 사태에 해당되지 않는다”

“은행거래의 원칙은 다소 난해하게 보일 수 있으나 그 관행은 엄격한 규칙으로 수렴될 수 있다. 어떤 경우든 터무니없는 이익을 노리고 이 규칙에서 벗어나는 것은 거의 언제나 위험을 초래하고 관련된 은행은 대개 치명타를 입는다.”

여기서 중요한 내용은 이것이다. 

‘터무니없는 이익을 노리는 은행은 치명타를 입는다.’ 

이 글은 은행 시스템을 거부하거나 자본주의를 부정하는 사람이 쓴 글이 아니다. 시장경제 주창자인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에다 쓴 내용이다. 여기서 나온 규칙이 무엇이겠는가. 금융의 가장 기본인 ‘신뢰’가 그것이다. 이에서 벗어나 이익만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일 때 치명적인 손해가 발생한다는 경고다. 이동걸 산업은행장이 한때 한 대학교의 경영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쳤던 만큼 이 의미가 무엇인지 먼저 잘 알 것이라고 본다. 키코 문제와 관련해 생각해볼 만한 점이 있다는 것도 쉽게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재밌는 사례가 하나 더 있다. 국내 한 대형 보험사의 대표가 지난 25일 공개한 사과문이다. “소송이 정당한 법적 절차였다고 하나 소송에 앞서 소송 당사자의 가정과 경제적 상황을 미리 당사가 세심하게 살피지 못했고 법적 보호자 등을 찾는 노력이 부족했습니다.”

이 보험사는 사실상 고아나 다름없는 초등학생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가 논란에 부딪혔고 결국 대표가 직접 나서 사과하기까지에 이르렀다. ‘소송이 정당했다’는 표현이 또 다른 비난을 사긴 했다. 하지만 금융을 취재하는 기자로선 상당히 놀라운 표현이 아닐 수 없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 보험사 대표는 소송 자체는 업계의 관행이고 법적 절차상 하자가 없었지만 시대 변화와 국민 정서를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며 사과한 것이다. 제아무리 숫자 계산이 제1원칙처럼 다뤄지는 금융사라 해도 주변 정세를 읽지 못하면 막심한 손해를 볼 수 있다는 것을 다른 금융인들에게 경고한 셈이다. 애덤스미스가 경고한 것처럼 말이다. 
  
이동걸 산업은행장이 이 대형 보험사 대표의 사과문을 주의해서 본다면 키코와 관련해 지금과는 다른 결정을 고민할 수 있다고 본다. 경영을 가르쳤던 교수로서, 지금은 산업은행의 경영자로서 대형 보험사 대표가 아무 이유도 없이 저런 경영판단을 내리지 않았다는 것을 잘 알 것이기 때문이다.

키코도 마찬가지다. 금융감독원은 키코와 관련해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2013.9.26)에서 제시된 판단기준에 따라 은행의 불완전판매 여부에 대한 사실조사 마쳤고 은행의 불완전판매가 있다고 했다. 은행들에는 배상금 지급을 권고했다. 경기 심판의 판단이 나왔다고 봐도 크게 무리는 없다. 하지만 산업은행의 입장은 “법무법인에 자문받고 심사숙고한 결과 금감원 분조위 결과를 불수용하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그 자문의 구체적 내용이 무엇인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일각에선 ‘배임’의 우려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하지만 배임 문제는 이번 사안에 해당되지 않는다. 이사의 판단에 의한 주주 배임은 상법과 회사법상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이 다수 법률 전문가의 판단이다. 배임 우려는 금감원이 먼저 자세하게 설명했다. 이사가 자신의 판단이 회사에 이로울 것이라고 신중하게 고려했다면 그것을 탓할 수 없다는 것이 우리나라 법원이 널리 인정하는 경영판단의 원칙 아니던가. 

특히 소멸시효가 지난 채무라 할지라도 그것을 이행하는 것이 은행의 신뢰 형성과 고객확보 등 장기적 이익에 부합한다고 판단했다면 그것이 어떻게 주주에 대한 손해가 될 수 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생보업계의 자살보험금 사태가 좋은 예가 된다. 2~3년 전 생보업계가 수천억대에 달하는 자살보험금 미지급을 ‘주주 배임’으로 버텼지만 마지막에 가서는 전액 지급하기로 했고 아직도 아무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키코는 배임 문제로 걸고 넘어져선 안 되는 일종의 명확한 판례를 가지고 있는 사건이다. 

키코 사건은 10년이 넘도록 우리 금융사에 치명적인 오류로 남아 있었다. 그런 것이 10년 만에 해결점을 찾게 됐다. 그런데 산업은행이 금감원 권고안을 불수용하면서 나머지 3개 시중은행마저 따라가는 모양새다. 수천억대의 자살보험금과 비교하면 키코의 배상 규모는 상대적으로 적은 수준이다. 그런데도 ‘터무니없는 이익’을 따지다간 더 큰 손실을 볼 수 있다. 신뢰 훼손이라는 손실은 책정도 어렵다. 

금융기관의 기본적 목표는 돈이나 숫자 계산에만 있지 않다. 그랬다면 대형 보험사의 사과문은 나오지 않았다. 산업은행처럼 법무법인의 조언을 받고 버티면 그만이다. 하지만 버티기가 금융업계를 혼란하게 만들고 오해 확산, 신뢰 훼손만을 가져올 뿐이기에 다른 결정이 나왔다. 

이동걸 산업은행장도 그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법무법인 자문’에도 불구하고 더 큰 이익을 도모할 이유는 충분히 있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