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경부터 분사 논의 계속돼···배터리 수요 높아져 업계선 적기라는 판단
R&D 비용부담했던 ‘캐시카우’ 석유화학 다운사이클 돌입···“분사 부담 커져”
LG화학이 논의 중인 전지(배터리)사업부 분사 계획의 실현 여부가 관심사다. 분사와 관련해 별도 TF팀을 구성하고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둔 채 유·불리를 타진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연내 분사가능성이 거론된 상황에서, 석유화학업계의 다운사이클이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분사설이 새나오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11월께부터다. 물적 분할을 바탕으로 올 하반기 배터리사업부를 별도의 독립법인으로 출범시킬 계획이며, LG화학의 100% 자회사로 가칭 ‘LG전지’ 설립을 추진 중이라는 내용이었다. 당시 LG화학 측은 “전지사업의 경쟁력 강화와 사업가치 제고를 위해 다양한 전략 방안을 검토 중이나 구체적으로 결정된 바는 없다”고 공시하며 선을 그었다.
회사 안팎의 전언을 종합하면, 해당 논의는 상당히 오래 전부터 이어져 온 것으로 파악된다. 한 관계자에 따르면 “2010년 전후부터 수차례 분사와 관련된 각종 밑그림이 그려지곤 했는데, 배터리사업부의 수익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지적이 우세해 번번이 실패했다”고 귀띔했다.
최근 이 같은 기조가 변화된 까닭은 금년을 기점으로 배터리업계의 성장세가 가파를 것으로 예측됐기 때문이다. 강력한 환경규제책을 채택한 유럽에서 배터리 수요가 급증하고, 국내 기업들을 견제하던 중국의 배터리 관련 보조금이 속속 폐지수순을 밟게 됐다. 이에 따라 전체적인 배터리 시장이 양적으로 팽창하고, 동시에 LG화학이 상당한 수혜를 입을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 글로벌 배터리 시장 점유율 순위에서 4위였던 LG화학은 지난해 10월 3위로 올라섰다. 중국의 지리자동차, 미국의 제네럴모터스(GM) 등과 배터리 합작사를 설립하기로 합의했으며, 현대자동차그룹과도 유사한 방식의 협력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금년 중 일본의 파나소닉을 제치고 글로벌 2위 도약도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럼에도 LG화학이 쉽사리 분사 여부를 결정짓지 못하고 고심하는 배경에는 석유화학업계의 다운사이클을 염려하기 때문이란 지적이다. 석유화학은 LG화학의 핵심 먹거리로 군림해온 사업이다. 2018년까지 이른바 ‘슈퍼 호황기’를 맞이했던 석유화학사업은 2017년과 2018년 각각 34.5%, 32.4%의 매출비중을 차지했다. 특히, 2018년 LG화학이 28조1830억원의 사상 최대 매출을 기록할 수 있던 배경도 호황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했다.
지난해부터 원유가격 상승에 따른 정제마진 악화가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실익률이 감소했고, 제품판매 역시 전년대비 하락했다. 지난해 3분기의 경우 전지사업부의 매출비중(34.2%)이 석유화학사업부(31.0%)보다 3.2%p 높게 나타나기도 했다. 올해부터는 다운사이클이 본격화 돼 상당기간 부진이 이어질 것으로 관측되는 상황이다.
익명을 요구한 업체 관계자는 “LG화학의 배터리 경쟁력이 지금과 같은 수준을 유지할 수 있게 된 것은 30년 가까이 지속적으로 배터리 연구개발(R&D)투자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면서 “이 같은 투자를 가능하게 한 곳이 바로 석유화학사업부인데, 해당 사업부 내부에서는 배터리사업부를 ‘벌어놓은 돈 까먹는 부서’로 인식해 온 것이 사실이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배터리 분야에서 본격적인 실익이 기대됨과 동시에 석유화학업계의 다운사이클이 예상되는 시점”이라면서 “이 같은 상황에서 배터리사업부를 별도 법인으로 독립시키게 될 경우, 석유화학사업부의 반발을 살 수 있고, LG화학 개별실적에도 부담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어 분사 여부를 놓고 장고가 이어지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한편, 신학철 LG화학 부회장이 오는 2024년 연매출 30조원을 넘길 것으로 예상한 배터리사업은 LG화학뿐 아니라 LG그룹의 중요한 미래먹거리 사업으로 분류된다. 장기간 강점을 보여 온 백색가전 분야에서 경쟁국들의 턱밑 추격을 허용한 상황에서, LG전자의 전장사업과 더불어 배배터리 사업이 구광모 LG그룹 회장 체제아래 그룹의 신(新)성장동력으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