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의 고위험 상품 판매 금지 관련 미묘한 입장차
“금융위-금감원 의견 충돌 잦아지면 기업에 혼란 초래할 수 있어”
관료 출신인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금융위원회의 수장이 되면서 금융권은 민간기업 경험이 있었던 최종구 전 위원장보다 금융감독원과 원활한 소통이 이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과거 키코 재조사부터 최근 은행의 고위험 상품 판매 금지까지 입장차를 계속 드러내면서 두 금융기관의 엇박자가 지속되는 모양새다.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지난 23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P2P(개인 간 거래) 금융법 제정 관련 토론회에 참석한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은행에 대한 금융당국의 고위험 금융투자상품 판매 금지 검토 가능성에 대해 “금지하는 건 쉽지만 그게 바람직한지는 따져봐야 한다”며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밖에 나가지 말라고 하면 사고 날 일도 없고, 바다에 들어가지 말라고 하면 역시 사고가 날 일도 없다”며 “하지만 구명조끼를 입고 수영하는 게 좋은 건지, 아예 상어가 있으니 수영을 금지하게 할 것인지는 여러 가지 의견을 들어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투자자들이 그 위험한 상품에 투자한 이유는 금리를 조금이라도 더 받고 싶다는 수요”라며 “이를 완전히 막기보다는 접근성을 높이면서도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생각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은 은 위원장의 발언을 의식한 듯 같은 날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은행장들과의 만찬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합동검사 결과를 보고 나서 은행의 고위험 상품 판매 금지 여부를 최종적으로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 원장의 이런 발언은 지난번보다 한 발짝 물러난 입장이다. 앞서 윤 원장은 은 위원장의 신중론과는 다르게 은행의 고위험 상품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드러낸 바 있다. 지난 19일 윤 원장은 은 위원장과 면담한 뒤 진행된 질의응답 자리에서 “은행이 고위험 상품을 파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날 발언에서도 은 위원장과 윤 원장 모두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표명했으나 미묘한 의견 차이가 드러났다. 은 위원장은 금지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밝힌 반면, 윤 원장은 은행장들에게 “고객 입장에서 생각해줬으면 좋겠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말하면서 소비자 보호에 더 무게를 뒀다.
금융위와 금감원이 서로의 견해차를 확인해 온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최종구 전 금융위원장 시절에는 삼성바이오로직스, 키코(KIKO), 인터넷전문은행, 종합검사 등을 놓고 지속적으로 입장차를 드러내면서 두 기관 간 갈등이 극에 달하기도 했다.
금융당국 간 엇박자는 금융시장에 불안을 가져올뿐더러 금융정책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금융사의 경영 및 신사업 추진에도 혼란을 초래할 수 있어 문제가 된다.
일례로 이승건 비바리퍼블리카 대표는 지난 18일 ‘핀테크 스케일업 현장 간담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증권업 진출과 제3 인터넷전문은행 재도전을 포기할 수도 있다고 시사하면서 금융위와 의논할 때와 감독당국과 협의할 때 온도차가 크다는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 대표는 “금융위원회와 이야기를 할 땐 모든 게 다 잘될 것 같고 정말 진심 어린 조언을 받는다고 느끼는데 실제 감독을 하는 기관과 이야기하면 진행되는 게 없다”며 “(금감원장과) 온도를 맞춰주셨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위는 정책기관인 만큼 미래지향적으로 금융 혁신을 담당하는 반면 금감원은 감독기관으로서 현재 기준과 법령에 맞게 금융업을 규제하다 보니 이런 괴리가 생기는 것 같다”며 “어느 정도의 의견차는 두 기관의 특성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볼 수 있지만 의견 충돌이 잦아지면 기업에 혼란을 초래할 수 있어 걱정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