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과의 만남 더 자유로워져 접촉 잦아지고 영향 커질 듯
“‘이런 것들 하지 말라’고 하는 자리에서 ‘이런 것들을 하라’는 자리로 이동한 것”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경제 사정기관 수장 자리에서 물러나 청와대 정책실장이 되자 기업들의 표정은 더욱 복잡해지는 모습이다. 공정위원장 자리에 있을 때보다 오히려 기업 경영에 미칠 영향이 훨씬 더 커질 것이라는 분석 때문이다.
김 정책실장이 공정거래위원회를 떠나게 된 것에 대해 기업들은 그나마 안도하는 모습이다. 그가 워낙 ‘재벌 저승사자’의 이미지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현재 후임으로 거론되는 인물들이 대부분 칼잡이라기보다는 관리자로서의 강점을 갖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공정위를 떠난 그를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다시 상대해야 하는 것에 대해서는 긴장감을 감추지 못한다. 한 10대 그룹 인사는 “정책실장이 된 김상조 전 위원장은 공정거래위원장이었을 때보다 기업들을 더 쉽게, 자주 만날 수 있게 됐다”며 “기업들에게 미칠 영향이 클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실제로 김 정책실장은 임명 직후 “공정거래위원장일 때보다 비공식적이겠지만 재계·노동시장과 적극 소통할 것”이라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요청이 오면 만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기업들과 더욱 활발히 의사소통할 기회가 생겼다는 점을 스스로 설명한 셈이다.
관건은 그 만남에서 어떤 이야기가 나오느냐다. 한 재계 인사는 “공정위원장은 자리의 특성상 기업들에게 ‘이런 것들을 하지 마라’는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는데, 정책실장은 ‘이런 것들을 하라’는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된다”며 “일자리 창출 등의 주제와 관련해 김상조 정책실장이 어떤 이야기들을 하게 될지 주목된다”고 전했다.
정책실장이라는 위치가 파급력을 갖는 이유는 기업들과의 만남이 비교적 자유롭고 경제정책의 기본 방향에 적잖은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청와대 내에 나름으로 ‘실세’라고 불리는 자리가 많이 있지만, 적어도 경제정책과 관련해 정책실장만큼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리는 많지 않다. 김상조 신임 정책실장도, 그 전임자인 김수현 실장도 이를 의식한 듯 하나같이 모두 “경제정책 컨트롤타워는 홍남기 부총리”라고 밝힌 바 있다.
김상조 위원장이 정책실장 자리로 옮겨 가게 되면서 앞으로 기업들과 만남이 적지 않게 이뤄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특히 직접 언급한 대로 일자리 창출과 관련한 내용이 만남의 주된 화두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 재계 인사는 “아직 일자리 창출과 관련해 뭔가 보따리를 풀지 않은 기업들로선 긴장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김상조 신임 정책실장은 앞으로 기업들과의 만남을 많이 가지려 할 것”이라며 “다만 기업과의 만남은 위에서 주문하는 하향식 만남이 아닌, 기업들이 필요한 것과 힘든 것이 무엇인지를 듣고 그것을 해결해주는 방식이 돼야 생산적일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