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급하게 한 쪽 줄서기보다 양국 사이 줄타기 하며 최대한 이득 이끌어 내는 선택 필요
“현 상황은 기업들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냐···정부가 외교라인 총동원해 문제 풀 수 있도록 도와야”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 그래픽=디자이너 조현경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 그래픽=디자이너 조현경

미국과 중국 사이에 낀 한국 기업들의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기업인들 및 통상 전문가들은 우리 정부가 성급한 판단을 내리기보다는 양국 사이에서 최대한 선택을 지연하는 전략을 취하며 실익을 얻어야 한다고 충고한다.

최근 중국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기업들을 소환해 미국의 중국 제재에 협조할 경우 비참한 결과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 사실이 알려졌다. 이는 사실상 협박에 가까운 것으로 반(反) 화웨이 연대에 동참하지 말라고 요구한 것이다.

이에 대해 지난 7일 청와대는 “기업이 자율적으로 결정할 일”이라고 밝혔지만, 경고를 받은 기업들이 사실상 한국을 먹여 살리고 있는 곳들인 만큼 업계에서는 우리 정부도 결국은 일정한 역할을 맡아 나설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다만, 외교통상 전문가들은 정부가 이 문제를 단순하게 양 국가 중에 한쪽을 성급하게 택하는 방식으로 풀려고 하면 사태를 악화시킬 수 있다고 분석한다. 그러면서 오히려 시간을 두고 양쪽에서 압박을 받는 우리의 상황을 보여주며 최대한 원하는 바를 이끌어내는 ‘외교의 묘’를 살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홍현익 세종연구소 외교전략실장은 “지금 당장 미국과 중국 중 한 국가를 선택하지 않음으로 인해 국가의 존립 자체가 위태로워질 상황이 아니라면 우리로선 최대한 버틸 만큼 버텨야 한다”며 “두 국가 중 어느 쪽에서도 최대한 우리의 이익을 이끌어 내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소원 전국경제인연합회 국제협력팀장 역시 “답을 내기 어려운 상황인 건 사실이나, 우리로선 성급하게 한 쪽이 바라는 대로 하기 보다는 가운데에서 줄타기를 잘 하며 버티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분석했다. 쉽게 말해, 양국의 위세에 눌리지 말고 우리 기업들 입장에선 쉽게 선택할 수 없다는 입장임을 분명히 나타내면 미국이나 중국에서도 오히려 함부로 나오기 힘들어질 것이란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현재 우리 기업들이 처한 상황이야말로 정부가 나서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보고 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지금 상황은 기업들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따라서 정부는 미국과 중국의 외교라인을 총동원해 현재 한국 기업들이 처한 문제를 풀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며 “가까운 이웃나라 일본이 미국을 상대로 원하는 바를 이끌어낸 사례를 참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한편, 최근 미국 백악관이 화웨이에 대한 제재안 시행 연기를 검토한 사실이 미·중 무역전쟁에 변수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러셀 보우트 백악관 예산관리국장 대행이 마이크 펜스 부통령 및 미 의회 의원 9명에게 화웨이 제재 법안 시행 연기를 검토하는 서한을 보냈다고 보도했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