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 비준 후 입법’ 압박 커져···“입법이 비준의 선결 조건 아냐. 비준부터 해야 국제적 기준 입법 가능”
정부 '선 비준 어렵다' 입장

문재인 대통령이 20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20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대통령 직속 사회적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에 대한 합의에 끝내 실패했다. ILO 핵심협약 비준에 대한 공이 정부로 넘어갔다. 이에 정부에 대한 ‘선(先) 비준, 후(後) 입법’ 압박도 커졌다.

경사노위 산하 운영위원회는 20일 제6차 회의를 열고 ‘ILO 핵심협약 비준’ 관련 의제를 논의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운영위는 그간 논의 결과를 다음 번 경사노위 본위원회에 보고하기로 했다. 더 이상 경사노위는 ILO 핵심협약 비준을 논의하지 않는다. 사실상 경사노위에서 ILO 핵심협약 비준 합의가 실패한 것이다.

이로써 ILO 핵심협약 비준 합의에 대한 공은 다시 정부로 넘어갔다. ILO 핵심협약 비준은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 사안이었다. 앞서 정부는 이 건에 대해 경사노위 합의에 맡겼다.

공이 정부로 넘어가면서 ILO 핵심협약 비준 합의에 대해 정부가 비준부터 한 후 입법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명등용 정의당 정책연구위원에 따르면 대부분의 나라는 ILO 핵심협약에 대해 비준부터 한 후 입법 과정을 거쳤다. 입법이 비준을 위해 먼저 해야 할 필수 조건이 아니라는 것이다.

명 위원은 “대통령은 ILO 핵심협약에 대해 비준부터 해야 한다. 이는 국회 입법과는 상관이 없다”며 “비준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으로 당장 내일이라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기업의 눈치를 보고 있는 상황으로 보인다”고 20일 말했다.

이어 명 위원은 “비준부터 해야 하는 이유는 국제적 기준에 맞춰 입법을 해야하기 때문이다”며 “입법부터 하면 국제적 기준에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지난 16일 민중공동행동도 기자회견을 통해 “ILO 핵심협약 비준을 통한 모든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전면 확대는 현 정부의 공약이자 시대적 과제다”며 “정부는 ILO 핵심협약 비준부터 해야 한다. 촛불항쟁의 힘으로 출범한 정부와 민의를 대변하라고 세운 국회는 본래의 역할을 다시 상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오는 6월 10일 ILO 설립 100주년 기념총회 기조연설자로 공식 초청을 받은 상황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재 정부 입장은 ILO 핵심협약에 대해 국회 입법 전에 비준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지난 13일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그동안 국회 동의를 먼저 받은 뒤 법 개정안을 처리한 ILO 협약은 법 개정이 필요하긴 하지만 사소한 사안이거나 논란이 되지 않는 것, 또는 국회에서 여야 동의가 이뤄진 것이었다”며 “ILO 핵심협약은 사회와 산업현장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 크다. 국회가 비준 동의안을 먼저 처리하고 거기에 맞춰 법을 개정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경사노위 관계자는 “정부가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정부 입법안 또는 의원 입법안 마련 등 실무적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명 위원은 “문 대통령이 초심대로 노동존중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공약이었던 ILO 핵심협약에 대해 비준부터 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국제노동기구 핵심협약 비준을 하기 위해서는 국무회의를 거쳐 비준 동의안을 국회에 보내야 한다. 이는 국회의원 과반수가 동의해야 처리가 가능하다.

한국은 그동안 국제노동기구 핵심협약 8개 가운데 4개를 비준하지 않았다. 한국이 비준하지 않은 4개 핵심협약은 결사의 자유를 위한 단결권, 단체교섭권(87호, 98호)과 강제노동금지(29호, 105호)다. 이 가운데 지금 비준을 두고 쟁점이 되는 것은 결사의 자유를 위한 단결권, 단체교섭권(87호, 98호) 부분이다.

문재인 정부는 국제노동기구 핵심협약 87호, 98호 비준을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다. 100대 국정과제에도 포함했다. 이에 정부는 경사노위를 통해 사회적 합의점을 찾으려 했다. 

현재 경영계는 핵심협약 비준을 위해 그 대가로 ▲파업 시 대체인력 허용 ▲부당노동행위 처벌금지 ▲사업장 내 쟁의행위 금지 ▲쟁의행위 찬반투표절차 보완 ▲단체협약 유효기간 연장 등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노동계는 경영계 요구안이 국제노동기구 핵심협약과 국제 기준에 어긋난다며 반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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