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인 공간, 공적으로 활용할 수 있어…논란 일면 책임 회피도 가능
정치인과 페이스북.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던 이 조합이 요즘 정치권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과거 일부 정치인들의 전유물 같았던 페이스북 정치에 이제는 너도나도 뛰어들고 있다. 공식 논평보다 페이스북을 택하고 있는 정치인들의 이 같은 행보엔 계산이 숨어있다는 분석이다.
황교안 전 국무총리는 지난달 30일 국가정보원 대공수사권 폐지에 대해 쓴 소리를 내놨다. 그는 “현행 국가정보원 하에서도 ‘민족민주혁명당 간첩사건’ ‘일심회 간첩사건’ ‘왕재산 사건’ ‘황장엽 암살기도 간첩사건’ ‘이석기 내란사건’ 등 많은 대공수사 성과를 내기도 했다”며 “대공수사는 나라를 지키는 수사”라며 “대안도 없이 대공수사를 포기하면 누가 간첩을 잡느냐”고 지적했다. 이 심각한 이야기를 황 전 총리는 언론 인터뷰가 아닌 페이스북을 통해서 했다.
황 전 총리의 페이스북을 통한 입장표명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8월에도 그는 “국제사회의 경고를 무시한 무모한 북한의 도발이 계속되고 있다”며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안이하게 대처하고 있다는 지적들이 적지 않다. 참으로 안타깝다”고 페이스북에 올려 화제가 된 바 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도 페이스북 정치를 즐기는 인물 중 하나다. 그는 지난달 25일 “김관진에 이어 임관빈도 석방되고, 균형을 맞추려고 자기들 편인 전병헌도 기각하는 것을 보니 검찰의 망나니 칼춤도 끝나가는 시점이 오긴 왔나 보다”라고 글을 올려 논란을 빚었다.
정치인들이 기존에 즐겨하던 논평 대신 페이스북을 이용해 입장을 밝히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압축된다. 우선 논평보다 책임 등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페이스북은 공적 공간이 아닌, 사적인 공간”이라며 “페이스북을 활용하면 사적 공간에 글을 올려 여론의 반응을 볼 수 있고, 혹시나 발언이 문제가 되더라도 ‘개인적으로 올린 것일 뿐’이라고 책임을 피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후 이 같은 현상이 심해졌다는 것이 신 교수의 설명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SNS(Social Network Service·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공식적인 정치활동을 할 때보다 강한 발언을 내놓곤 했다. 국내 정치인들이 페이스북으로 내놓는 발언들을 보더라도 최고위원회의 등에서 내놓는 발언보다 수위가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약 정치인들이 페이스북으로 내놓는 발언들을 공식적인 논평을 통해서 했다면 발언에 책임을 지는 문제가 생겼을 소지가 다분하다.
또 한 가지 이유는 언론에서 해당 내용을 다루기 때문이다. 유명 정치인들이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면 해당 내용이 기사화 된다. 굳이 복잡하게 고민해서 논평을 내지 않아도 자신의 의견을 기사를 통해 알릴 수 있다. 다만 페이스북에 올린 글은 공식적인 정치 일정으로 분류되진 않는다.
한 일간지 4년차 정치부 기자는 “주요 정치인들의 페이스북은 가끔씩 처리하긴 하지만, 아직까지 그런 이슈는 온라인팀에서 주로 쓴다”고 전했다.
정치인들의 페이스북 활동의 숨은 피해자는 보좌진들이다. 이들은 자신도 모르게 올라간 의원들의 페이스북 글이 기사화되는 일이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 야당의원 보좌관은 “국회의원이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는 것은 순수하게 개인적으로 하는 일이기 때문에 보좌진들도 언제 무슨 내용을 올릴지 알 수가 없다”며 “논란을 예측할 수 없어 일단 일이 터지면 그때서야 수습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