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분쟁조정위, ‘2000만원 합의’ 권고에도 유족 반발…병원 측 “소송 예상돼 입장 밝힐 수 없어”
올해 1월 삼성서울병원에서 생후 75일된 신생아가 사망했다. 사망 원인은 탈장으로 인한 장 천공과 패혈증. 산모 A씨는 아기가 사망한 뒤인 지난 5월 인터넷 카페에 글을 올렸다. ‘병원 측이 장 천공을 늦게 발견해 수술을 미룬 탓에 결국 아기 상태가 악화됐다’는 게 주된 내용이었다.
A씨 가족은 앞서 4월 의료분쟁조정위원회(이하 의료분쟁조정위)에 조정 신청을 했다. 결국 일부 의료과실이 인정됐다. 의료분쟁조정위는 삼성서울병원 측에 2000만원 보상을 권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유족은 이를 거부했다. 아직 분쟁이 끝나지 않은 셈이다. 생후 75일만에 병원에서 숨진 신생아의 유족들은 의료분쟁조정위의 보상 권고를 받고도 반년 동안 왜 아기를 가슴에 묻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삼성서울병원 신생아 사망’ 그후 1년…논란은 끝나지 않아
기자가 만난 신생아의 유족은 병원 측의 보상보다 진심이 담긴 ‘사과’가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 28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서 기자와 만난 산모 A씨의 남편 오아무개(38)씨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어갔다. 오씨는 “(애기가 숨진 사건은) 단순히 보상의 문제나 최근 불거진 (삼성서울병원의) 연예인 특혜 논란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아버지 오씨의 이야기처럼 삼성서울병원은 최근 연예인 특혜 논란에 휩싸여 있다. 배우 배용준씨의 부인이자 연예인 박수진씨 특혜 논란이 그것이다. 애초 이 특혜 논란이 불붙은 것은 산모 A씨가 온라인 상에 올린 글 때문이었다. 당시 글에서 A씨는 자신의 아기가 숨질 당시 면회 과정과 달랐던 연예인 특혜 문제를 거론했다.
당시 A씨는 연예인의 구체적인 이름을 적시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삼성서울병원에 입원한 다른 산모들도 특혜가 있었다며 가세하면서 논란이 커졌다. 오씨는 하루에도 몇통씩 (연예인 특혜) 사건을 취재하겠다는 전화나 문자가 온다고 말했다. 아내가 제기한 문제의 본질은 단순히 연예인 특혜가 아니라 의료사고와 후속 대처에 대한 삼성서울병원의 ‘태도’라고 오씨는 지적했다.
삼성서울병원 신생아 사망 사건은 지난해 11월 시작됐다. A씨는 2016년 11월 9일 아기를 출산했다. 미숙아로 태어난 A씨 아기는 폐호흡 문제로 ‘니큐’(NICU, 저체중·미숙아 집중치료실)에 들어갔다. 초기 상태는 양호했다. 그런데 2주 뒤인 지난해 12월 초, 아기에게서 서혜부 탈장이 발견됐다. 병원 측은 ‘원칙대로’ 도수 정복(손으로 장을 밀어넣는 치료)을 실시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기는 급격하게 상태가 악화됐다. 아기는 단순히 서혜부 탈장이 아니라 장 천공 상태였다는 점이 더 큰 문제였다. 기자가 입수한 의료분쟁조정위 자료에 따르면 아기는 응급 수술 이전부터 심한 고통을 겪고 있었다. 당시 간호기록지(2016년12월11일)에는 아기에게 펜타닐(마약성 진통제)을 투여할 만큼 심한 통증이 발견됐다고 적혀 있다. 그 다음날인 12일과13일까지도 아기는 기저귀를 갈 때도 아파했다는 기록이 있다.
◇의료분쟁조정위, 책임 일부 인정해 병원 측에 ‘2000만원 합의금 지급’ 권고
유족들은 아기가 심한 고통을 호소하자 단순 서혜부 탈장이 아닌 다른 원인이 있는 것 아니냐면서 병원측에 수술을 요구했다고 한다. 오씨는 “아기는 응급 수술 전부터 고통을 호소해왔다. 문제가 없던 아이가 갑자기 고환이 부어있고, 몇시간씩 울었다. 도수 정복 치료만을 이어갈 때가 아니었다”며 “수술을 강력하게 요구했지만 소아외과와의 협진을 계속 미뤘다. 담당의는 만날 수도 없었고, 소아과 조교수에게 이유를 묻자 답해주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결국 같은해 12월13일 엑스레이(X-ray) 검사를 통해 아기에게 장 천공이 발견됐다. 그날 아이는 응급수술을 받았지만 상황은 더 호전되지 않았다. 결국 출산 6주 후 해를 넘긴 지난 1월 아기는 사망했다. 사인은 탈장으로 인한 장 천공과 패혈증이었다. 오씨는 소아외과와의 협진이 빨랐다면 아기가 사망에까진 이르지 않았을거라고 주장했다.
소아 서혜부 탈장은 신생아에게 0.8~4.4% 발병률을 보이는 질환이다. 조산아 경우 발생빈도가 더 높다. 일반적으로 퇴원 전 수술하지만 장 천공 등 합병증이 동반되면 조기에 응급수술을 하기도 한다.
의료분쟁조정위도 병원 측이 장 천공을 발견하지 못하고 수술을 미룬 부분에 대해서는 책임을 일부 인정했다. 의료분쟁조정위는 “장 천공이 발생한 후 수술을 시행해 패혈증, 복막염 같은 심각한 질환에 노출됐다. 극소 저체충 미숙아인 환아 상태에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며 “11일이나 12일 외과의의 빠른 개입과 중재 및 조기 수술이 시행됐다면 환아 상태가 덜 악화될 가능성이 있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의료분쟁조정위는 삼성서울병원이 수술을 빨리 진행했더라도 결과가 달라졌을 것이라는 단정은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또한 사망한 아기가 저체중 미숙아로 태어났기 때문에 수술 시기 결정이 어려웠을 것이라는 의견도 피력했다.
◇“‘니큐’ 리모델링 공사, 약속 안 지켜” 주장…연예인 특혜 논란으로 번지기도
병원 측의 의료 대응 부분뿐만 아니라 병실 환경 문제도 유족들이 중요하게 제기하는 부분이다. 유족들은 신생아가 입원해 있던 당시 중환자실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앞서 병원 측은 중환자실 리모델링 공사 동의서를 받으면서 보호자들에겐 주변 환경에 민감한 신생아들에게 위해를 끼칠 먼지나 소음은 없는 공사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하지만 유족들의 이야기는 달랐다. 오씨는 “주로 보호자가 없는 저녁에 공사를 했다. (단순 공사가 아니라) 비닐을 치고 벽을 허무는 공사라 소음과 먼지가 당연히 나오지 않나. (사망한) 우리 아기 사인으로 패혈증이 있다. 감염관리를 제대로 못한 셈”이라고 주장했다.
연예인 특혜 논란을 불러 일으킨 니큐의 출입 통제 문제도 유족들로서는 상처를 받은 부분 중 하나다. 삼성서울병원 니큐는 운영원칙 상 아기 보호자 1인만 들어갈 수 있다. 조부모는 니큐에 들어가지 못한다. 산모 A씨는 인터넷 글을 통해 연예인에게는 조부모 면회를 허용하고, 음식을 니큐에 반입했다는 사실을 함께 기재했다.
산모 A씨는 해당 글에서 연예인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았고, 글 게재 후 삭제를 했다. 하지만 뒤늦게 온라인상에서 해당 연예인이 박수진 씨라는 것이 밝혀졌다. 박씨는 SNS를 통해 ‘처음 임신이라 잘 몰랐다’며 사과했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박 씨가 거짓을 말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등 논란은 뜨거운 상황이다.
이에 대해 병원측은 지난 28일 “삼성서울병원에서 특혜는 없다. 사망한 신생아 조부모도 (중환자실에) 들어왔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유족 측의 주장은 다르다. 오씨는 “(삼성서울병원 해명은) 사실과 다르다. 사망선고를 위해 우리와 조부모를 (니큐에) 불렀다”며 “임종을 확인하러 들어갔다. 그것을 면회라고 부를 수 있나”고 반박했다. 아기가 숨지기 전 조부모와 만날 수 있는 일말의 기회마저도 잃어 버렸다는 점에서 유족들의 반발은 더욱 큰 셈이다.
◇유족 측, 정식 소송 예정… 병원측 “입장 밝히면 병원·유족 서로 피해”
유족들은 아기가 사망 후 1년 가까이 흘렀고, 의료분쟁조정위의 조정 권고까지 받아냈지만 법적 소송을 고려하고 있다. 그들은 의료분쟁조정위가 권고한 합의금 2000만원에 불복한 상태다.
오씨는 “보상이 중요한 게 아니다. 우리는 (아기 사망 직전까지) 담당 주치의의 얼굴 한번 볼 수 없었다. 마지막에 나타나 ‘죽기 전 아기 안아 볼 준비 되셨냐’고 하더라”며 “(담당 주치의는) 계속 공사 중인 중환자실만 확인할 뿐 아기 상태에 대해선 별 관심이 없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특히 의료분쟁조정위의 권고 결정에도 병원 측의 사과 한마디 없는 대응에 유족들은 더 분통을 터뜨리고 있었다. 오씨는 “병원 측 사과도 당연히 없었다. 의료분쟁조정위에서 삼성 법무팀을 만났다. 법무팀은 ‘미안할 게 없다’고 태도를 보였다. 법적 문제를 떠나서 미흡한 의료 조치로 신생아가 죽었는데 지금까지 사과 한 마디가 없다”고 말했다.
한편 삼성서울병원 측은 추가적인 공식입장을 내놓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의료과실 및 담당 의료진의 사과는 물론 연예인 특혜 논란 등에 대해서도 모두 입장을 밝힐 수 없다며 일축했다.
삼성서울병원 관계자는 “올해 초 의료분쟁조정위원회에서 조정한 후 불복해 따로 (산모 A씨가) 법적소송을 준비하는 것으로 안다. 재판과 관련된 문제라 조심스러운 부분”이라며 “지금 삼성병원 측은 이번 논란과 관련해 어떠한 말도 할 수 없다. 서로에게 피해가 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