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싸이클’ 놓고 갑론을박…업계 “점유율 확장 의도 아닌 업황 대응 목적”

삼성전자의 8GB(기가바이트) HBM2(고대역폭 메모리, High Bandwidth Memory) D램 실물. / 사진=삼성전자

반도체산업이 한국경제를 지탱하고 있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올해 반도체수출 금액은 지난해보다 53.9%나 급증했다. 국내 업체가 1, 2위를 수성 중인 D램의 경우 경이적인 영업이익률로 수익성을 한껏 뽐내고 있다. 시장에 수요가 차고 넘치는 덕이다. 이제는 시사용어로도 익숙한 그 말, 바로 ‘반도체 슈퍼싸이클’이다.

기대 이상의 성공은 때로 논쟁거리를 만든다. ‘대체 언제까지 좋은 날이 계속될까’를 둘러싼 갑론을박 말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대규모 설비투자를 이어가는 게 논쟁의 촉발점이 됐다. 투자로 공급이 늘면 지금 같은 가격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왔다. 

 

반대편에서는 수요를 따라잡기 위해서라도 투자가 필요하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가격 하락을 감수하고 점유율 늘리기에 나설 만큼 여유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대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얼마나 수익을 거둬들이기에 투자 자체가 논쟁이 될까? 가장 최근 나온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 보고서를 살펴보자.

보고서에 따르면 3분기 삼성전자 D램사업 영업이익률은 62%를 기록했다. 2분기 59%를 뛰어넘는 역대 최고치다. SK하이닉스의 같은 기간 영업이익률도 56%에 달했다. 직전분기보다 2% 오른 수치다. 지난분기 44%이던 3위 마이크론의 영업이익률도 같은 기간 50%로 껑충 뛰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3분기 시장점유율은 각각 45.8%와 28.7%다. 두 업체를 합쳐 시장의 75%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다. 마이크론 점유율은 21.6%다. D램익스체인지는 4분기에 국내 두 업체의 영업이익이 더 높아지리라 내다보고 있다.

 
호황은 투자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삼성전자는 최근 경기 화성에 있는 낸드플래시 생산라인 일부를 D램 생산을 위해 재편하고 있다고 밝혔다. 새 생산거점인 평택 공장 일부도 D램 증설을 위해 활용할 계획도 내놨다. SK하이닉스는 올해 9조 6000억원 규모 설비투자를 단행한다. 

 

글로벌 시장에서도 놀랐다. 시장조사업체 IC인사이츠를 이끄는 빅 맥클린 대표는 “37년간 반도체 산업을 분석하면서 최근처럼 설비 투자가 급격히 증가한 것을 본적이 없다”며 “올해 삼성전자 지출 규모는 반도체 산업 역사에서 전례가 없었던 수준”이라고 말했다.

바로 여기서 우려의 시각을  표하는 이들이 있다. 투자가 슈퍼싸이클 종료를 자극하리라는 논리다. 한국투자증권은 “설비투자 증가로 내년 D램 및 낸드플래시 공급부족이 완화되면서 가격하락이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IHS마킷도 “내년 수요성장세는 올해보다 낮을 것”이라면서 “수급 균형이 잘 이뤄지면 가격이 낮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SK하이닉스는 3분기에 D램 시장에서 56%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했다. 삼성전자(62%)에 이은 2위 수준의 수익성이다. / 사진=뉴스1

이런  전망을 내놓는 측에서는 공급증가 속도가 예상보다 빠르다고 의견을 모은다. D램은 낸드플래시에 비해 공급에 민감하다. 보통 D램은 공급을 늘리면 가격이 빠르게 떨어진다. 그렇다고 수요가 계속 늘어나는 것도 아니다. 반대로 낸드는 가격이 떨어지면 수요가 더 많이 생긴다. 즉 투자로 공급이 늘면 가격이 떨어진다는 예측은 합리적 추론의 영역에 자리해 있다.

문제는 최근 국내 업체들이 공개한 투자계획이 실제 가격 상승세를 꺾는 결과로 이어질지 여부다. 업계서는 아직 그 같은 판단이 섣부르다는 입장에 무게감을 두고 있다.

한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국내 업체 영업이익률이 지금 매우 높은데, 이게 반드시 좋은 건 아니다. 일부러 공급을 줄이는 것도 아니다. 수요가 너무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면서 “과거보다 공정 자체도 까다로워지는 등 메모리 반도체산업의 패러다임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내년 D램 수요/공급(Supply/Demand) 비율은 0.988로 올해와 마찬가지로 소폭의 공급부족 내지는 빠듯한 수준이 유지될 것”이라며 “비트당 평균판매단가(ASP)도 안정적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실제 삼성전자도 3분기 컨퍼런스콜을 통해 D램 설비투자 목적을 “장기적인 업황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며 “공급과잉을 일으킬 정도의 무리한 투자는 없다”고 밝혔다. D램의 경우 과거보다 공정수가 급증해 더 까다로운 생산과정을 거쳐야 하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공급탄력성이 과거보다 둔화됐다는 뜻이다. 즉 투자를 늘린다고 당장 시장 가격이 출렁일 만큼의 생산량 변동이 나타날 가능성은 적다.

일각에선 점유율 45%를 넘긴 삼성전자가 지배력을 더 키우는 게 시장에는 좋지 않을 거라는 해석도 내놓는다. 하지만 자본시장 관계자는 “점유율이 50%가 넘으면 독과점 규제 등 골치 아픈 일이 생긴다”면서 “무리한 투자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즉 삼성전자 주장대로 D램 투자가 ‘점유율 확장’보다 ‘업황 대응’에 초점이 맞춰질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설비투자 증가가 되레 이익극대화에 기여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60%가 넘은 영업이익률은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로서도 그리 달가운 현상은 아니다. 어떤 산업이건 공급이 적정수준으로 이뤄져야 공급업체의 이익도 커진다. 또 업체들로서는 모바일을 중심으로 D램 채용량이 계속 늘고 있는 국면에도 대응할 필요가 있다. 스마트폰 시장이 하이엔드 중심으로 변모하면서 개당 필요한 D램이 점점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메모리반도체 초호황이 언제 끝날지는 업계서도 궁금해 한다. 최근 업체들의 투자는 가격이 어떻게 될지를 따진 게 아니라 말 그대로 폭증하는 시장수요에 맞추기 위한 것”이라면서 “과거에 비해 투자금액이 크게 늘었지만 그럼에도 수요를 못 따라가는 수준”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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